사이버 공간에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고, 사랑에 빠지기까지 하는 디지털 세상의 한구석에서는 문자 그대로 무림고수가 되기 위해 땀을 흘리며 야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왠지 지금 이 시대에 한참 뒤처져 있는 것 같은 이 무술인들은 어떻게 세상과 만나면서 무림지존의 꿈을 이뤄가고 있을까?
10일 개막한 서울독립영화제의 초청작 〈거칠마루〉는 현재형으로서의 무술인과 그들의 한판 ‘맞장’을 경쾌하게, 그러나 한줌의 과장 없이 그린 극영화다. “2000년도 쯤인가? 고수를 찾아 맞장뜨러 다니는 사람들을 다룬 ‘무림일기-고수를 찾아서’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인간극장을 보다가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요? 어휴 저야 그 세계와는 거리가 멀죠.”
주변 사람들이 너무 공무원 같다는 통에 수염까지 길렀지만 여전히 ‘참한’ 눈빛을 가리지 못하는 김진성(40) 감독.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이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는 2002년 〈서프라이즈〉라는 로맨틱코미디로 충무로에 ‘입봉’한 감독이다. “〈서프라이즈〉 마치고 촬영 준비에 들어갔죠. 영화진흥공사(그는 이곳에 ‘공무원’으로 6년 동안 일했다)를 그만두면서 1년에 세편씩 꼭 찍어야지 맘먹었는데 충무로만 바라보면 2~3년에 한편 찍기도 힘들잖아요. 후배들이 십시일반해서 거둬준 3500만원 들고 그냥 달려들었죠.”
“마이너영화 자유러워 좋아”2002년 ‘서프라이즈’로 입봉인터넷상의 무술인 동호회에서 신화처럼 떠도는 아이디인 ‘거칠마루’와 한판 붙기 위해 8명의 고수들이 모이는 〈거칠마루〉는 대역도 와이어도 없는 100% 순도의 디지털 무협영화다. 주인공 격인 태식은 그가 봤던 ‘인간극장’의 실제 주인공이었고, 한명의 연극배우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우슈, 합기도, 무에타이 등 국내외의 무술경기에서 ‘챔피언’ 한번 쯤은 ‘먹어본’ 무술인들이다.
앞으로도 할리우드의 조엘 슈마허나 거스 밴 샌트처럼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가면서 영화를 찍을 생각이라는 김 감독의 창고에는 거의 완성된 시나리오 두편을 비롯해 트리트먼트만 30여편, 시놉시스까지 합하면 200여편이 수북이 쌓여 있다. “메이저건 마이너건 가장 힘든 건 돈문제인 것 같아요. 〈거칠마루〉도 막판에 쓰레기통에 넣을까 고민에 빠지기도 했죠. 그래도 충무로보다는 훨씬 자유로워서 좋아요.” 현재 청어람과 〈거칠마루〉의 개봉을 논의 중인 김 감독은 단관 개봉이나 300~400개관 개봉 사이의 영화가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 극장가에 30~40개관으로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영화들이 늘어나는 데 〈거칠마루〉가 일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