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유쾌한 크리스마스 가족용 코미디, <엘프>
2004-12-14
글 : 박은영
엘프도 인간도 아닌, 어른도 아이도 아닌 사고뭉치, 얼떨결에 크리스마스를 구하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으십니까?’ 하는 질문이 무색해진 지 오래다. 속세의 때가 묻은 어른들은 물론 영악해진 아이들에게도 산타클로스는 상징 그 이상은 아니다. 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만약에, 만에 하나, 북극 어딘가에 산타와 요정들의 마을이 있다면, 믿음이 사라진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어떻게 입증하려 할까. <엘프>는 이런 엉뚱한 가정에서 출발해, 유쾌하게 ’크리스마스 정신’을 설파하는 가족용 코미디다.

산타의 선물 자루에 기어들어간 아기가 산타와 엘프들의 북극 마을로 간다. 500살 넘는 노총각 엘프에게 맡겨져 성장한 버디(윌 페럴)는 몸집이 서너배는 크고 바리톤의 음성을 지닌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에 충격받고, 생부가 살고 있는 뉴욕으로 찾아간다. 출판계의 거물인 아버지 월터(제임스 칸)는 ‘나쁜 어른’ 명단에 올라 있는 일중독자로, 버디가 친자임을 확인한 뒤에도, 그를 처치곤란한 사이코로 치부한다. 아버지와 그의 새 가족, 첫눈에 반한 소녀의 마음이 열릴 때쯤 버디는 ‘믿음 연료’가 떨어져 센트럴파크에 추락한 산타와 그의 썰매를 발견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2억달러를 벌어들인 <엘프>는 실체를 드러내기 전까지 못 미더운 구석이 많은 영화였다. 크리스마스용 가족영화가 더이상 새로울 게 없는데다, 자신을 엘프로 착각하는 순진무구한 주인공이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등 성인용 코미디를 주로 하던 윌 페럴이라니, 미국도 아닌 한국 관객에게 무슨 매력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느끼한 얼굴에 키가 껑충한 이 코미디언은 ‘제대로’다. 지하철 난간에 붙은 껌을 떼어먹고, 오바이트 나올 때까지 회전문을 돌고, 에스컬레이터에서 다리를 찢으며, 몸으로 웃기는 것은 물론, 정체성 혼란에 괴로워하는 모습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윌 페럴의 동선과 감정을 따라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산타를 쫓는 센트럴파크의 순찰대(<반지의 제왕>의 흑기사 나즈굴)와 믿음으로 하늘을 나는 썰매(<피터팬>) 등 다른 영화의 패러디를 찾는 잔재미도 있다. <러브 앤 섹스> 등의 배우로 친숙한 존 파브로가 연출을 맡아 뻔뻔한 상상력을 깔끔하게 풀어간 <엘프>는 <나홀로 집에> 이후 가장 유쾌하고 훈훈한 크리스마스 가족영화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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