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독자에게]
<마이 제너레이션>
2004-12-17
글 :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언제부터 그랬을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옥탑방 풍경을 자주 보게 됐다. 주인집 옥상이지만 내 집 마당처럼 쓸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있고 탁 트인 전망이 펼쳐지는 옥탑방.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나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그곳은 사랑과 낭만이 숨쉬는 아늑한 공간이었다. 옥탑방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나도 저런 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얼마 전 <마이 제너레이션>을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건 남자주인공이 사는 방이었다. 좁고 칙칙한 그 방을 보면서 어, 이건 못 보던 풍경인데, 싶었다. 현실에선 너무 익숙한 단칸방의 모습이건만 화면으론 처음 접하는 공간으로 느껴진 탓이다. 익히 봤던 옥탑방의 화사함이 현실엔 없는 것임을 불현듯 깨닫게 됐다. <마이 제너레이션>의 미덕은 무엇보다 바로 그 정직함에 있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 현실 공간을 찾아간 것처럼 등장인물들도 어딘가 꾸민 흔적이 없다. 출생의 비밀도, 의외의 반전도, 지워지지 않는 정신적 트라우마도 없는, 화장기 하나 없는 맨 얼굴, 그것 또한 꽤나 낯선 경험이었다. 지아장커의 영화에 대해 장이모가 했던 표현을 빌리면 노동석 감독은 분명 “서울을 아름답지 않게 찍는 방법을 아는 것”처럼 보인다.

<마이 제너레이션>에서 카드빚에 시달리는 젊은 남녀를 보다가 문득 주변 사람들이 떠올랐다. <씨네21> 기자라는 번듯한 직업을 갖고도 카드빚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한 사람은 월말만 되면 카드 돌리는 데 하루를 소요했고 또 한 사람은 “대출하게 도와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매달 급여를 받아도 이런 일이 생기는데 영화 한다고 1년에 500만원도 못 받고 일하는 초보 스탭은 말해 뭐하겠는가. 독립영화감독이라면 사정은 더 딱하다. 아르바이트로 지하철역에서 도넛을 팔기도 하고 공사장 막일을 해서 제작비를 마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마이 제너레이션>의 주인공처럼 결혼식 비디오 아르바이트를 하는 감독 지망생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은 가난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꿈을 차압당하는 삶에 힘들어했다. 그래서 생긴 의문 하나. 다르지 않은 현실인데 어째서 <마이 제너레이션>은 지금에야 만들어졌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디지털의 도움으로 값싸게 찍을 수 있었다는 것, 제작비를 각종 제작지원제도에서 받을 수 있었다는 것, 지아장커의 <소무>로 대표되는 중국 지하전영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 등.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발상의 전환이고 젊은 감독다운 용기라는 생각이 든다. <마이 제너레이션>은 가난을 정면으로 보는 영화다. 겪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가난을 남에게 내보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못사는 자기 집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친구들 초대하기가 겁났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반대로 그런 집에 초대받는 일도 유쾌한 경험은 아니다. 솔직히 <마이 제너레이션>을 볼 때 느낌도 마냥 즐거운 쪽은 아니었다. 현실도 우울한데 이렇게 우중충한 얘기를 봐야 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마이 제너레이션>의 잔상은 오래 남았다. 돌이켜볼수록 영화 속 주인공들이 걱정되고 안타깝고 사랑스러워졌다. 감독이 그랬던 것만큼이나 배우들도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기 때문일 것이다. “착하게 살자”는 그들의 말이, 한심하긴 하지만,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솔직한 고백은 마음에 오래 남는 법이다.

이번호에는 이창동 감독이 문화관광부 장관을 그만두고 처음 가진 인터뷰를 실었다. 지금은 소설가가 된 조선희 전 <씨네21> 편집장이 인터뷰어로 나서 이창동 감독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더불어 <씨네21>에서 만드는 새로운 영화정보 격주간지 <ME>의 편집장인 김봉석 영화평론가가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와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현장을 방문한 기록이 이번호의 더블 특집으로 마련됐다. 한때 열혈 문학 청년이었다가 소설가와 감독이 되어 재회한 자리, 영화광 대 영화광으로 차기작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눈 자리, 두개의 특별한 만남을 얼른 만나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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