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말부터 2000년까지 할리우드에는 오랜만에 틴 무비 열풍이 몰아쳤다. 공포영화부터 코미디, 멜로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10대들은 스크린 위를 점령했다(<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아메리칸 파이> 등). 겉으로는 미성숙하고 여린 그들의 육체 속에는 성인들보다 한술 더 뜨는 노숙한 영혼이 깃들어 있었고,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사춘기 모습을 대변한다기보다는 세기말의 혼란스러운 미국사회를 반영하는 은유적인 존재들이었다(그때 쏟아져나왔던 화장실 유머들은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지퍼 게이트’ 사건과 맞닿는 미국 전체의 트렌드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올 한해 한국에서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한 틴 무비 시장은 어떤 식으로 볼 수 있을까? 사실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하이틴물이라면 <얄개전>부터 <돌려차기>에 이르는 명랑하고 건전한 청소년들의 성장기거나, 부모님과의 갈등 혹은 성적 때문에 고민하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발레교습소> 카테고리의 영화들이었다. 하지만 21세기의 틴 영화들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중요한 건 오로지 연애! 청소년들의 동일시 효과부터 성인들의 응큼한 관음증까지 자극했던 <어린 신부>와 <늑대의 유혹>에서 이어져온 트렌드를 <여고생 시집가기>는 그대로 받아안는다. 대신 강도는 훨씬 세졌는데, 이를테면 고구려 시대의 울보 평강 공주와 바보 온달 이야기를 현대의 십대들에게 옮겨온 이 영화는 평강이 16살 이전까지 온달을 만나 무사히 ‘합방’하여 임신까지 해야 한다는 설정을 대담하게 들이댄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단순히 하이틴로맨스 영화라기보다 거의 섹스코미디에 가까운 분위기를 창출한다. 여기서 교복 입은 여자애들은 알 것 다 알고 심지어 ‘합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성적 유혹을 시도한다. 이런 ‘낯선’ 풍경이 만약 리얼리티라면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영화 속에 옮겨올 용기가 아직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에, 아니면 이것이 그야말로 철없는 여고생들의 백일몽이기 때문에 <여고생 시집가기>가 다양한 종류의 꿈이나 상상 시퀀스로 줄곧 이어진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다(그리고 달 속의 방아 찧는 토끼로 은유된 둘의 합방장면이 가장 재치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현실 시퀀스에서 끊임없이 고함을 치고 화를 내는 인물들의 오버하는 모습을 영화 내내 견뎌야 하는 것은 사실 고문에 가깝다. 왜 우리나라의 ‘명랑만화’ 컨셉은 언제나 과장과 오버로 점철되어야만 하는 걸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