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우스꽝스런 도발, 얼꽝 배우의 매력, <엘프>의 윌 페렐 Will Ferrell
2004-12-23
글 : 송혜진 (객원기자)

솔직히 말하자. <엘프> 포스터 속 윌 페렐의 모습은 사실 재난에 가깝다. 까무잡잡한 피부, 무섭게 부릅뜬 눈,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듯한 부담스러운 미소에 노란 타이츠까지. 시대의 꽃미남이 맡아줘도 모자랄 것 같은 ‘요정’ 역을 아니, 어쩌다가 나팔바지가 어울릴 법한 삭은 아저씨가 맡은 것일까. 그러나 이렇게 이 70년대풍 외모에 강력한 반감을 가지고 극장에 들어섰다면, <엘프>가 끝난 뒤 윌 페렐이 귀엽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흠칫 놀라게 될 것이 틀림없다. 도저히 이성적으로 인정할 수 없어 고개를 절레절레 돌린다 해도, 이미 그렇게 우리는 <엘프>의 윌 페렐에게 참을 수 없는 매력을 발견해버린 것이다.

우리가 윌 페렐을 스크린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스타스키와 허치>에서 허치에게 “뒤돌아서서 날 야수처럼 쳐다봐줘”라고 말하던 변태 죄수를 기억하는지. 여기에 <올드 스쿨>의 철없는 천방지축 유부남 ‘프랭크’, <쥬랜더>의 괴상망측한 디자이너까지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윌 페렐은 스크린 속에서 ‘뒤통수를 치는’ 놀라운 역할들을 연기해왔다. 저 일련의 역할들을 모두 한 사람이 연기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작정하고 영화를 봐도, 한참 만에 “저 사람이 윌 페렐이야?” 하고 놀랄 수도 있다. 그만큼 이 배우는 늘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지우고 온갖 괴상한 분장을 뻔뻔하게 소화시키면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이런 윌 페렐의 영화인생을 뒷받침해준 건 NBC의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스포츠캐스터를 그만두고 스탠드업 코미디에 뛰어든 윌 페렐은 부시 대통령 흉내를 내는 등의 연기로 2001년 에미상 개인연기와 작가영역 부문의 상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이렇게 ‘라이브’로 단련된 그의 슬랩스틱코미디는 다양한 분장과 표정연기를 넘어 이제 <엘프>에 다다른다. 36살의 이 남자가 콜라를 ‘원샷’하고 길게 트림할 때, 엉덩이의 반도 못 커버할 작은 변기 위에 앉아 한숨을 내쉴 때, 회전문을 빠르게 돌다가 휴지통에 토를 할 때, 관객은 배꼽을 내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윌 페렐의 <엘프> 속 연기를 두고 동료 배우 루크 윌슨이 “너무 웃겨서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을 때가 종종 있었다. 안 그랬으면 (웃느라) 목이 맛이 가버렸을 것이다”라고 했던 말은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 천진한 연기를 보면서 주름이 자글자글한 윌 페렐의 연기에 감정이입을 하는 동안 우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 30대 후반 아저씨의 깜찍한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윌 페렐의 연기에 힘입어 <엘프>는 2003년 겨울, <매트릭스>를 이기고 박스오피스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노란 타이츠를 입으면 반드시 성공하던데요”라며 윌 페렐은 자신의 성공 앞에 익살을 떨 뿐이지만 덕분에 우리는 앞으로도 그를 더 자주 만날 수 있다. 우디 앨런 감독의 <멜린다와 멜린다> 같은 영화는 물론이고, 현재 제작을 시작하는 영화만 해도 이미 열개 남짓. 그 작은 눈으로 강력한 ‘포스’를 뿜는 윌 페렐이 또다시 어떤 ‘못 알아볼’ 법한 모습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머리로는 인정하기 싫어도, 우리는 이미 이렇게 이 첫인상과 끝인상이 달라도 너무 다른 ‘얼꽝’ 배우의 ‘매력의 늪’에 깊이 빠져버린 것이다. 그 경련을 일으킬 듯한 흰 치아의 미소가 시럽처럼 달콤하게 꿈에서 아른거릴지도 모를 일이다.

사진제공 REX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