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뻥치지’ 말라고? 산타가 없다는 건 이미 여섯 살 때 알았다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산타클로스 따위는 천박한 상업주의의 부산물일 뿐이라고? 그래. 나도 안다. 12월25일 아침 머리맡에 간절히 바라던 인형놀이 세트 대신 엉뚱한 학용품이 놓여있어 절망하던 기억. 산타 할아버지가 남긴 카드에서 아빠의 필적을 발견하곤 단숨에 세상의 비밀을 이해하게 되었던 기억. 그것을 도시 중산층 가정 출신 어린이의, 성탄절에 얽힌 보편적인 추억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그 아이는 곧 무럭무럭 자라나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눈이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경악하는 어른이 되었다. “에이 씨, 안 그래도 차 막힐 텐데 눈까지 오면 어쩌자는 거야? 동네 강아지들조차 둘씩 짝 맞춰 눈 속을 팔짝팔짝 뛰어 다닐 텐데 아주 작정하고 염장 한번 질러 보겠다는 거야? 그런 거야?” 이 냉소적인 투덜거림에 대하여 우리의 주인공 버디는 천진난만하게 대꾸할 것이다. “히힛, 누나.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
그는 서른 살. 신장 190cm의 건장한 남자다. 본래 그는 인간세상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갓난아이 시절, 고아원을 방문한 산타 할아버지의 짐 꾸러미 속에 기어 들어갔다가 그만 산타의 마을까지 딸려오고 만다. 그 동화 같은 공간에서 엘프(산타를 돕는 요정)들 손에 키워진 남자. 그는 인간일까, 요정일까? 딩동댕! 그렇다. 그는 다만 이방인이다.
북극에서도, 뉴욕에서도, 그는 홀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북극에서는 앙증맞은 몸피와 재빠른 손놀림을 가진 동료 엘프들보다 두 배나 커다란 체구와 둔한 손재주 때문에 매순간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마침내 자신처럼 ‘사람을 아버지로 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뉴욕에 왔지만 백설 공주를 수행하는 난쟁이 같은 복장으로 스파게티에 초콜릿을 부어 먹는 버디는 여전히 희한한 몰골의 ‘타자’일 뿐이다.
육체적으로는 완벽한 아저씨지만 속세의 기준에서 볼 때 그의 영혼은 미성숙한 어린아이에 가깝다. 그는 ‘착한 아이’인 이복동생에게나 ‘나쁜 어른’인 아버지에게나 골고루 친절하며 제 사랑을 아낌없이 베푼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늘 무언가를 구분해왔다. 선과 악, 어른과 아이, 성숙과 미성숙. 노란색 쫄쫄이 바지를 입은 인간요정 버디는, 남과 다른 ‘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껴안는 것이 성탄절의 작은 윤리임을 수다스럽게 전파한다. 유치하고 전형적일지라도 오늘만은 왠지 그 전언에 귀 기울이고 싶어진다. 그 정도는 용서되는, 오늘은 일년에 딱 하루,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