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니아들에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올해의 화제작 가운데 하나였다. 장애인 여성과 비장애인 남성의 사랑과 이별을 담백하게 그려낸 이 영화는 10월 말 단 5개관에서 개봉했지만 3만5천명의 관객을 모으면서 지금까지 조용하지만 꾸준하게 상영되고 있다. 작은 영화로는 분명 놀라운 흥행성적이지만 이 기록은 멜로라는 같은 범주에 속하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나 <이프 온리>와 비교하면 초라하다. 두 영화는 각각 250만과 1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늦가을 극장가에 눈물 돌풍을 몰고 왔다. 두 영화의 ‘눈물’ 계보를 잇는 <노트북>도 가볍게 50만명을 돌파했다.
둔한 질문이지만, 이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했을까? 단순히 생각해보면 작은 영화가 가질 수 밖에 없는 물량부족, 즉 홍보와 상영관 수의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프 온리>의 경우 극장 수는 <조제…>보다 많았지만 홍보나 언론, 평단의 주목도에서 <조제…>보다 나을 것이 없거나 그보다 푸대접을 받았다. 생각해보건대 이 차이를 만든 본질적인 이유는 사랑의 ‘길이’에 대한 인간의 숨길 수 없는 갈망이 아니었을까 싶다. <조제…>는 사랑의 유한성을 이야기한다. 한때 내 삶의 일부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것처럼 빛나던 사랑도 결국 쇠락한다는 주제는 쓸쓸하다. 그러나 현실이다. 반면 다른 세 영화에서 사랑을 무너뜨릴 수 있는 건 오직 죽음이라는 신의 간섭뿐이다. 숨쉬는 동안은 흔들리지도 식지도 않는 사랑이다. 연애를 해 본 사람이라면 영원한 사랑이란 불가능한 명제임을, 이 영화들이 설파하는 메시지가 뻔한 거짓말임을 알고 있다. 알면서 속는다.
누구나 사랑에 빠져들면서 영원을 맹세하는 건 아니지만 기쁨으로 충일했던 시간 안에 있을 때 이 감정이 조만간 바닥날 거라고 지레 확신하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말이다. 그러나 현실과 경험 앞에서 우리의 이성은 점점 더 단단해진다. 점점 더 멀어지기 때문에 설레임과 행복감으로 충만했던 시간은 더욱 간절한 기억이 된다. 그리고 영화는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펼쳐보이는 판타지다. 아무리 완성도 있는 작품이라도 영화에서까지 굳이 쓸쓸한 현실과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게 보통 사람들의 인지상정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조제…>는 근원적으로 ‘ 대박’이 될 수는 없는 영화인 셈이다.
절대 사랑을 주장하며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세 편의 영화는 이른바 ‘신파’다. 신파라는 말은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오히려 ‘구닥다리같다’는 뉘앙스로 쓰인다. 세 영화의 흥행성적에서 보듯이 한물간 유행가같은 폄하를 받지만 신파의 힘은 세다. 잃어버린 시간, 헛되지만 짧은 순간이라도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은 소멸될 수 없을 것이다. 사랑은 영원하지 않지만 영원한 사랑을 찬미하는 신파(노래든 영화든)는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