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스릴러’ 코트로 어깨를 가린 멜로드라마, <클리어링>
2005-01-04
글 : 이영진
‘스릴러’ 코트로 어깨를 가린 주름진 노부부의 멜로드라마.

교외의 커다란 저택에 사는 50대 후반의 웨인 헤인즈(로버트 레드퍼드)는 부족할 것 없는 중산층 가장. 젊은 시절 번듯한 직장을 때려치우고 렌트카 사업에 뛰어들어 돈을 번 그는 업계에선 입지전적 인물. 슬하의 자녀들을 모두 독립시킨 뒤 부인 에일린(헬렌 미렌)과 한가롭고 여유로운 일상을 영위하던 어느 날. 웨인은 출근길에 해고된 다음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장인 집에 얹혀 사는 옛 직장 동료 아놀드(윌렘 데포)에게 납치된다. 원한을 품은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 납치를 하게 됐다면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아놀드에게 웨인은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떻게든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고 애쓴다. 한편, 남편의 승용차가 외진 곳에 방치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에일린은 실종 신고를 하게 되고, FBI가 수사에 나서지만 사건은 뾰족한 단서를 찾지 못한 채 미궁에 빠진다.

<클리어링>은 납치극이라는 거죽을 뒤집어썼지만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이 따르는 궤적을 떠올렸다간 낭패보기 십상이다. 흔히 예상하는 FBI와 납치범 사이의 숨막히는 지능 싸움은 없기 때문. 인질을 두고 벌이는 몸값 협상도 없고, 단서를 따라 납치범을 추적하는 과정도 없다. “인물들의 심리에 초점을 두려 했다”는 제작진은 납치당한 웨인의 하루와 남편의 종적을 찾는 에일린의 몇달의 시간을 동등하게 뒤섞는 형식을 취하는데 이는 쫓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 연출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영화는 웨인이 자신을 납치한 실패한 가장 아놀드의 탄식을 통해 아내와 가정의 소중함을 확인하고, 최근까지도 웨인이 정부(情婦)를 만났지만 가정을 파탄으로 밀어넣는 행위가 아니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에일린이 남편에 대한 의구심을 떨구어내는 심리극의 꼴을 띤다.

남편의 실종 뒤 웨인의 아내 에일린은 FBI에 실종사실을 신고하고, 그 와중에 웨인이 외도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웨인은 평소와 다름없던 출근길에 느닷없이 납치를 당한다. 납치범은 옛 직장 동료인 아놀드 맥으로, 웨인에 대한 동경과 질시를 한몸에 가진 인물이다.

영화가 중턱을 넘어서면 오해와 무관심에 의해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던 부부의 갈등 해소를 그린 멜로드라마임이 분명해진다. 단, 막바지에 “예나 지금이나 내 사랑은 변함없어”라는 글귀를 머금은 남편의 러브레터가 에일린에게 뒤늦게 전달되는 장면이 영화의 의도대로 관객의 심금을 울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인물들의 심리가 보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기보다 그 다음 장면의 대사에 의해 뒤늦게, 또 불충분하게 설명되기 때문인 듯. 미국에서 개봉 당시 “배우들의 호연은 돋보인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긴 했지만, 장면마다 스릴러 장치들과 멜로의 감성들이 충돌하는 탓에 매끄러운 모양새를 지녔다고 보긴 어렵다. 1987년 <디먼 러버>를 시작으로 <영광의 깃발> <펠리칸 브리프> <히트> <인사이드>를 제작한 피터 얀 브루게가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로 네덜란드에서 실제 있었던 납치사건을 소재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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