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 앉자마자 임상수 감독은 인터뷰를 하고 싶어 연락을 한 거냐고 대뜸 물었다. 보고 싶어서 만난 거라고 눙을 쳤지만 한 일간지에 나간 기사(12월21일자)가 기본적인 사실관계에서 틀린 점이 있다고 먼저 화제를 돌렸다. “‘박 전 대통령의 여자관계와 친일성향 등을 다룬 영화’가 아니며 ‘일제 강점기 일본군 장교를 지낸 박정희가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듯한 장면’도 전혀 없다. 시나리오를 읽지 않고 누구에게 듣고 쓴 것 같다.” 혹시라도 이 영화가 불러일으킬 정치적 파장에 대해서 두려운 기색은 없어 보였다. “세상에 책을 내고 영화를 낸다는 게 뭔가. 사람들과 함께 공감하고 즐기고 나누겠다는 거 아닌가. 그럴 생각이 아니라면 산에 가야지.”
-이 작품으로 논쟁의 중심에 서고 싶은 건가.
=그건 야심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작품의 질도 갖춰져야 하는 거다. 가령 이런 비유를 할 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노무현 지지자인데 탄핵정국을 노무현이 스스로 유도한 측면이 없는 걸까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설령 유도했다고 해도 그게 야심과 노림수만으로 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많은 것들이 함께 따라줘야 한다.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어릴 적부터 구상을 했다고 들었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언젠간 10·26에 대해선 꼭 이야기해보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건이 내게 준 충격은 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인데 당시 아버지(영화평론가 임영)는 반골기질의 실직 기자였고 대학생이던 형은 매일 유신 반대 데모에 참가했다. 이런 분위기였으니 나는 정치적 의식이 웃자랐다. 대통령이 급서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는 너무 좋아하셨다. 그리고 난 당연히 아버지의 아들이었으니…. 실직 가장 집안의 어두운 분위기가 놀랍도록 밝아졌다. 하지만 대통령 장례식 때 연도에 늘어선 사람들이 그렇게 우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뒤로 10·26 관련한 모든 기사를 세심히 읽었다. <바람난 가족>을 찍기 전 프리프로덕션 도중 이은 명필름 대표에게 이 프로젝트를 얘기했다. 이은 대표는 15분쯤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자고 했다.
-이 영화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
=사실 걱정을 많이 했다. 사건과 연루된 생존자와 유가족이 계시다. 그분들이 어떻게든 상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분들을 모욕하고 상처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여기 한국인의 멘털리티, 그리고 정신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세상이 좋아지고 민주화되었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엔 역사와 정의, 진실, 양심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개인적 이익과 권력 획득에만 몰두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건 모두 다 아는 이야기지만, 이 멘털리티는 뻔뻔스럽고 폭력적으로 계속 유지되고 있다.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나? 군사정권부터 비롯된 거고 그 멘털리티는 청산되지 못하고 대물림되고 있다. 그걸 가족사적으로 얘기한 게 <바람난 가족>이라면 이번엔 더 외연을 확장한 거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과거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나.
=변호사들이 영화가 명예훼손이 되지 않으려면 사실과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고 하더라. 그런데 여기서의 사실이란 보안사 요원의 수사기록 따위를 말하는 거다. 하지만 사건 당사자의 진술과 회고록이 모두 더해져야 더 넓은 의미의 사실이 되는 거다. 회고록을 쓴 사람은 겨우 둘이고 그나마 서로의 진술을 거짓말이라고 비난한다. 아무도 진실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말을 잘못했다가 다친 그 시절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박완서의 <복원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란 단편소설을 예로 들고 싶다. 작품 속 화자는 논픽션 심사위원이다. 시골 선거판의 내막을 쓴 글을 그는 당선작으로 고른다. 쓴 사람은 시골에 있는 노인인데 스스로 두려워한 그 노인이 결국 출품 자체를 취소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 사회는 앞만 보고 간다. 과거를 먼저 복원해야지 과거 청산도 되는 건데 이 땅에 정직한 진실이 없다. 이렇게 우리가 산다는 거지.
-이 영화로 협박이나 위협을 당할 수도 있을 텐데.
=(혹시라도 잘못되어) 검찰에 끌려가는 건 정말 싫다. 기자시사회 끝나면 보디가드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혐의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검찰에 간다는 게 심리적으로 위협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돈이 보이기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거다. (웃음) 난 작가일 뿐이다. 작가는 써서 읽힐 거리를 시장에 내보내 밥을 먹는 사람이다.
-사석에서 군사정권을 원조조폭으로 비유한 적이 있었다.
=그 얘기는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역사학 전공 교수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조폭 수준의 조직이 국가를 운영했다고 하더라.
-이 작품이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게 될까.
=패를 까봐야 아는 거지. 세상과 만나서야 비로소 의미가 생겨나는 거다. 시사회도 안 했다는 거지 내 말은. 다만 행복하게 영화를 찍었다. 감독의 일이 끊임없이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이라면 그 일의 근거는 자기에 대한 믿음이다. 늘 남의 눈치를 보고 자기검열을 하게 마련인데, 이번엔 처음 떠오르는 그 감으로 그대로 가겠다고 결심했다. 꽝이면 꽝인 거다. 이 감으로 밀어붙이겠다고 했고 그대로 찍었다. 결과도 나쁘지 않더라.
-작품을 만들면서 아쉬움이 있는가.
=돈은 하나도 신경 안 쓰고 찍었다. 일류 스탭, 촬영감독, 제작진과 만들었다. 특히 진정한 예술가인 김우형 촬영감독. 캐스팅은 주연부터 단역까지 이런 식의 캐스팅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연륜 많은 연기자가 대거 나온다. 20대가 주관객층인 시대에서 이런 캐스팅은 나오기 힘들다. 그래서 너무 행복했다. 내 자신의 내공의 부족은 느꼈지만 이 작품을 찍으면서 이게 바로 내 직업이구나 하고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