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의 황규덕(46) 감독이 두번째 영화 <우리는 지금 사랑하고 싶다>(1991년)를 내놓은 지 14년만에 <철수 ♡ 영희>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꼴찌부터…>를 90년 당시 1억원을 들여 직접 제작했던 것처럼 <철수 ♡ 영희>도 황 감독이 직접 제작했다. 제작비는 2억원. 90년 당시 상업영화 평균제작비는 3억원이었지만 지금은 24억~30억원에 이른다. 평균제작비의 12~15분의 1을 가지고 83분짜리 장편을 만들 수 있게 한 건, 필름 값이 안 드는 디지털이다.
황 감독은 “집 팔고 남은 돈, 부인이 구해온 돈” 등등 모아 2억원을 마련해선 450만원짜리 디지털카메라를 샀다.(영화 찍고 나서 300만원에 되팔았다.) 그리곤 초등학생들 이야기인 이 영화를 찍을 학교를 물색했다. 옛날 느낌의 골목길이 있는 구 도심과 신 도심이 어우러지는 경주나 전주, 대전 쪽의 학교를 뒤진 끝에 대전 대덕초등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대덕초등학교를 찾아간 뒤부턴 일이 매우 순조롭게 풀렸다. 대덕 초등학교의 학부모 중엔 대덕에 모인 여러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많았다. 문화적 욕구가 높아 황 감독의 촬영 협조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새침데기 영희, 사고뭉치 철수 순하고 담백하고 아기자기한…
이 학교 학생들을 상대로 오디션을 열어 한 학급 학생으로 연기할 30명을 뽑았다. 그중에서 “토종으로 생긴” 4학년 박태영을 주연 ‘철수’역으로 뽑고, 몇몇 조연급을 정했다. “너무 아마추어로만 가면 감당이 안 될 것같아” 여주인공 ‘영희’역은 <연애소설>에 나왔던 아역배우 전하은을 캐스팅했다. 학교 발전기금 400만원을 내기로 하고, 2003년 11월30일부터 한달 동안 촬영한 뒤 주조연 뺀 학급 학생들에겐 10만원 상당의 선물을 해줬다. 출연료 부담이 가벼워진 대신 촬영기간 중의 음식은 맛있고 풍족하게 제공했고, 그 결과 2억원에서 400만원 가량 남았다. 홍보 마케팅비(영화 주간지 광고 2회, 인터넷 배너 광고 1차례) 1천만원도 그 안에서 해결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철수 ♡ 영희>는 순하고 담백하다. 일찍 부모가 죽고 할머니와 함께 사는 영희는 영리하고 공부도 잘 하지만 좀처럼 남 앞에 자신을 열지 않는다. 옆집 레코드 가게의 점원 청년을 짝사랑하고, 좋아하는 음악 속에 묻혀지낸다. 영희의 짝 철수는 장난치길 좋아해 사고를 잘 저지른다. 몸과 생각이 굼뜨고 공부도 못한다. 그래도 시끌벅적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답게 낙천적이다. 이 철수가 영희를 좋아하고, 결국 둘이 친해지기까지를 다루는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영화다. 억지로 드라마에 굴곡을 주지 않은 영화 속의 아이들은 무척 자연스럽다.
“왜 또 학교 이야기이냐고? 내 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모두 교사이긴 했지만 사실 이번엔 다른 건 찍으려고 했다. 시골 분교를 중심으로 한 마을의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는데 비슷한 소재인 <선생 김봉두>를 보고 접었다. 그때 시나리오 작가가 습작해 놓은 게 있었는데 읽어보니 버리기 아까웠다. 그게 이 영화다. 어린이들 티격태격하는 이야기에 악인도 없고, 대립구도도 없으니 어차피 투자받기 힘들겠다, 독립영화 식으로 찍자, 그렇게 된 거다.” <철수 ♡ 영희>는 운이 좋다. 지난해 CGV극장이 주최한 독립영화제에 냈다가 평을 좋게 받아 CGV 전국 체인의 8개 스크린이 이 영화를 받았다. 그걸 포함해 7일 서울 4개, 전국 12개 스크린에서 개봉한다.
왜 또 학교이야기냐고요? 악인도 없도 대립도 없잖아요
황 감독은 93년 파리로 건너가 그곳에서 방송용 다큐멘타리를 찍다가 홍세화씨의 <파리의 택시 운전사>를 영화화하기로 하고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투자를 못 받아 엎어졌다. 98년 귀국해 한국영화아카데미 주임교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무국장 등을 맡았다가 다시 영화를 준비해온 그에게 메이저영화사의 주문도 적지 않다. 동양과 서양의 신화가 맞부딛치는 대작을 싸이더스와, 노근리 사건을 다룬 <노근리전쟁>을 명필름과 하기로 했는데 준비가 늦어지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