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적2> 정의없는 사회에 메스 ‘강우석의 승부수’
‘승부사’ 강우석에겐 승부를 낼 때마다 위기가 찾아온다. <실미도>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그가 이끄는 시네마서비스의 자금사정 등 제반 여건이 안 좋아졌다. <공공의 적 2>에 다시 승부를 걸면서 그가 준비한 비장의 무기는 ‘사회적 메시지’이다. 1편의 ‘경찰 대 반인륜사범’의 대결구도를 ‘검사 대 재벌’로 바꿔 정경유착 관행에 메스를 들이대려 한다. 강 감독은 “영화 만들면서 사회를 향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정수를 담았다”고 말했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등 그가 이전에 정치·사회 문제를 다룬 영화는 그다지 반응이 좋지 못했다. 이 영화는 소재에서, 강 감독의 필모그라피에서, 강우석의 충무로 파워 면에서 여러모로 관심을 끈다. 2월3일 개봉 예정.
시놉시스 강력부 검사 강철중(설경구)은 다혈질에 현장 중시형이다. 잠복근무가 체질이고 현장 검거에 직접 나서며 총기류 사용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날 명선재단 이사장의 큰 아들이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는 곧 재단을 물려받기로 돼 있었다. 강 검사는 이 사고에서 범죄의 냄새를 맡고 조사에 나선다. 명선고교는 그의 모교이며, 큰 아들이 죽은 뒤 차기 이사장으로 급부상한 둘째 아들 한상우(정준호)는 그의 고교 동창생이다. 강 검사의 조사는 큰 파문을 일으키면서 한상우와의 정면 대결로 치닫는다.
감독의 말 “우리 사회는 정의감이 상실돼 있다. 어떤 게 정의인지, 뭘 잘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헷갈리기조차 한다. 나는 영화가 엔터테인먼트 기능만 갖는 게 아니라 시대를 보는 깊은 맛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에게 얼마나 와 닿을지 모르겠다. 머리를 너무 써서인지, 쥐가 날 정도로 고생을 했다. 개인적으로 위험한 시도라는 생각도 든다. 비장하다 그럴까. 뉴스에서 봐 왔던 지금 시대의 부정적인 부분을 보는 건데. 의도가 맞아 떨어지는 관객에겐 뭉클하고 속 시원함을 줄 수 있을 텐데. <공공의 적> 1편은 엽기적인 살인 행각, 잡범들의 행태를 보여주면서 웃음을 동반하자는 것이었는데 2편은 웃음을 바닥에 깔면서도 갑작스런 상황 반전에 울 수도 있고, 가슴이 저밀 수도 있는, 그런 시도를 해봤다. 1편처럼 웃기자는 강박 없이 자연스런 웃음을 주려 했고, 그러면서 드라마의 굴곡과 반전이 훨씬 세다. <한겨레>같은 신문이 엄청 좋아할 영화라고 할까?”
<그때 그사람(들)> 도발적 블랙코미디로 폴어낸 ‘10·26의 진실’
한국에선 정치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26 사건을 다룬 <그때 그사람(들)>은 용감하고 도발적인 프로젝트이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이후 계속 성을 가지고 도발해온 임상수 감독은 이 영화에서 도발의 외연을 정치와 역사로 넓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에 맞아 숨진 1979년 10월 26일 하루 동안의 일을, 가상인물을 내세우거나 회상 형식을 빌지 않고 그대로 재현하며 직격탄을 날린다. 계획과 우발이 반쯤 뒤섞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사건에서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 채 허둥대고, 그러면서 죽어가고, 사건의 원인과 배경이 된 권력중심부는 좌충우돌하는 행태를 고스란히 블랙코미디 풍으로 담아낸다는 의도다. 2월3일 개봉 예정.
시놉시스 궁정동 안가에서 연회 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날 중앙정보부 주 과장(한석규)은 연회에 동석시킬 여자들을 준비시키느라 바쁘다. 같은 시간 주치의의 진료를 받고 있던 중앙정보부 박 부장(백윤식)의 표정은 뭔가를 마음먹은 듯 심상치 않다.
감독의 말 “죽은 지 25년 된 박 전 대통령을 불러내 모욕을 주기 위한 게 아니다. 박정희라는 인간으로 상징되는 가치관과 한국인의 멘털리티가 2005년의 지금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 블랙코미디라고도 하고 인물을 희화화한다고도 하는데 나는 그런 의도를 한번도 가진 적이 없다. 어떻게 더 사실적으로 그릴까였다. 다만 대통령, 중앙정보부장이라고 해서 보통 사람과 다를 것 같지 않다고 봤고, 총격전이 오가는 상황에서 당황해서 벌어지는 일들이 웃기게 보일 수는 있겠지. 벌써부터 뉴스를 타는 게 박근혜씨가 현실정치에 파워가 생겨서 그런 것이지 우리는 현실 정치에 발언하고 싶은 의도가 없다. 한나라당이나 심수봉씨 말이, 사실과 다르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건데 그때 사실은 재판기록이고 이건 보안사 수사내용이다. 보안사 수사관이 강압적으로 가둬놓고 한 내용을 지금 사실이라고 받들어야 하는가. 그러나 나도 그걸 기초로 시나리오를 썼다. 그래서 10·26의 진짜 사실은 이 영화에서 출발하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고 진짜 사실과 다르면 아우성이 나올 거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죽었으면 그만이지 하면서 어떻게 죽었는지에 관심이 없는 건, 그걸 파면 더 끔찍한 게 나올 것 같아서 아닌가. 그 끔찍한 걸 다 꺼내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닌가.”
<주먹이 운다> 처절한 사각의 링, 두 복서의 엇갈린 삶
류승완 감독의 신작 <주먹이 운다>는 실화의 주인공 두 사람을 하나의 링 위에 올려놓는 영화다. 젊은 시절 전도유망한 권투선수였으나 은튀 뒤 일본 신주쿠 광장에서 매맞으며 돈을 버는 일본인 하레루야 아키라와 소년 교도소에서 권투를 배워 전국체전에서 2년 연속 은메달을 딴 한국인 서철이 그 주인공들이다. 또한 <주먹이 운다>는 진짜같은 가짜들로 채워졌던 충무로 스크린에 진짜 거리를 담는 영화다. 30살이 넘은 나이에 링에서 내려와 거리를 떠도는 전직 복서, 그리고 부랑아처럼 거리를 떠돌다가 사각의 링에서 삶의 목표를 찾게 된 젊은 복서, 영화는 이들의 신산한 삶이 펼쳐지는 거리를 날 것 그대로 카메라에 담았다. 두 사람의 삶이 계속 교차편집되면서 둘이 만나는 장면은 딱 하나. 마지막의 신인왕 결승전이다. 대역도 분장도 없이 ‘한번’에 갈 이 하이라이트 장면 촬영만을 남겨두고 있으며 4월 중 개봉 예정이다.
시놉시스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로 한때 유망주였으나 은퇴 뒤 사업 실패로 돈과 가족을 모두 잃게 된 태식(최민식)은 생계를 위해 거리의 복서로 나선다. 패싸움과 ‘삥뜯기’로 시간을 때우다 강도 사건에 휘말리면서 소년원에 수감된 상환(류승범)은 권투부에 가입하면서 생전 처음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배운다. 일면식도 없던 두 사람은 각자 버려진 가족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신인왕전에 출전하면서 링 위에서 처음이자 유일한 만남을 가지게 된다.
감독의 말 “두 가지 면에서 전작들과 달라졌음을 느낀다. 일단 영화에 접근하는 태도다. 전에는 내가 만든 콘티 안에서 모든 걸 계획대로 진행했으나 <주먹이 운다>에서는 많은 부분이 즉흥적인 상황에서 즉흥 연출로 메워졌다. 장르의 관습이나 유희에 집중하기보다 두 캐릭터를 철저하게 따라가는 식으로 연출을 했고, 세트를 벗어나 ‘생짜’ 냄새나는 거리를 담으려하다 보니 일관성보다는 그때그때의 상황과 감정에 충실하는 게 중요했다. 태도가 바뀌니 핸드헬드나 점프컷이 많아졌다거나 하는 기술적인 부분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따라온 셈이다. 처음으로 장르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것인 만큼 두 사람의 승부는 중요하지 않다. 도저히 한 편을 응원할 수 없게끔 각자의 처절한 사연을 가지고 링 위에 오른 두 사람의 감정이 잘 살아나는 것이 관건이다. 매끈한 영화적 기교를 피해 거칠고 가쁜 호흡 속에서 두 남자의 ‘진심’을 보여주고 싶다.”
<친절한 금자씨 > 주연 이영애·조연 최민식 ‘박찬욱 복수 완결편’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로 이어지는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마지막 편이다. 앞의 두 편에서의 복수가, 악당을 응징하는 데서 오는 카타르시스와 거리가 있었던 것과 관련해 박 감독은 “<친절한 금자씨>는 그런 카타르시스가 훨씬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혼의 구원을 갈망하는 여성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약간의 폭력 장면에도 불구하고 대체로 투명하고 깨끗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올드 보이>의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으로 차기작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급증한 시점에서 처음 알려진 건 캐스팅이었다. 누아르에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영애씨를 주연으로 정해 화제를 낳더니, 톱스타 최민식을 조연으로 캐스팅해 또 한번 관심을 끌었다. 박 감독은 “금자는 여러 차례 변화를 겪는 캐릭터”라며 “이영애는 (지금까지 촬영 동안) 기대보다 너무 좋아서, 앞으로 이보다 못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할 정도”라고 전했다. 최민식에 대해선 “등장 시간이 길지 않지만 작은 설명만 가지고도 어떤 사람인지 상상의 나래를 자극해야 하고 그러려면 연기력이 있는 배우여야 하기 때문에 캐스팅했다”고 말했다. 3월말 촬영을 마치고 6월초 개봉할 예정이다.
시놉시스 아무 생각 없이 철없는 소녀 시절을 보내며 미혼모가 된 금자(이영애)가 어떤 범죄사건에 연루돼 사람을 죽이는 일에까지 가담하게 된다. 죄의식이 전혀 없는 금자는 감옥생활을 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13년 뒤 출소해 자기를 범죄에 끌어들인 백 선생(최민식)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를 찾아간다.
감독의 말 “앞의 두 편에 비해 난폭하지 않고 여성적인 면이 강하다. 좀 더 유머러스하고. 잔인한 묘사는 적고 폭력 장면보다 폭력 전후의 분위기를 길게 가져간다. 마지막 4분의 1정도에 무겁고 폭력적인 느낌이 많을 거고 앞의 4분의 3정도는 유머러스하고 가볍게 가려 한다. 금자는 감옥 생활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죄를 저질렀는지 알게 된다. 복수라는 것이 속죄의 한 방법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있을 것 같고. 기교가 별로 없고 시각적으로 소박하게 간다. 플롯도 단순하다. 사람들이 지은 죄에도 불구하고 속죄하려는 노력이 진실하다면 가상히 여기자는…. 색은 금자 캐릭터를 둘러싼 부분에서 레드를 많이 쓰지만 로케이션 촬영이 많아서 <올드 보이>처럼 작은 것까지 다 시각적으로 통제하는 영화는 아니다.”
<달콤한 인생 > 파국으로 치닫는 순간의 선택 ‘감성 누아르’
<장화, 홍련>에서 원색의 꽃무늬 벽지로 서늘한 습기를 머금은 소녀의 감성을 표현했던 김지운 감독은 새 영화에서 흑백의 짙은 음영을 드리운 건조한 남자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충무로에서는 아직 익숙치 않은 장르인 ‘누아르’를 표방한 <달콤한 인생>은 “한 남자가 모호한 감정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일들을 겪게 되면서 겉잡을 수 없이 폭력적으로 파멸해가는 이야기”다. 경기도 양수리 1세트에서만 23명이 죽어나갔다고 농담을 할 만큼 핏빛 선연한 폭력이 난무하지만 자르고 찌르는 따위의 잔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인물들의 묘한 감정 충돌이나 김 감독 특유의 유머감각을 툭툭 드러내면서 ‘감성적인’ 누아르로 완성한다는 게 김지운 감독의 계획이다. 중견 탤런트 김영철씨의 주연급 캐스팅과 함께 청춘 스타 에릭의 스크린 깜짝 데뷔로 화제를 낳았다. 1월4일 촬영을 모두 마쳤으며 4월1일 개봉 예정이다.
시놉시스 7년 동안 과묵한 의리와 빈틈없는 일처리로 조직의 보스인 강 사장(김영철)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선우(이병헌). 강 사장은 다른 남자가 생긴 것 같은 자신의 애인 희수(신민아)를 감시하라는 지시를 선우에게 내린다. 얼마 뒤 선우는 희수가 남자와 함께 있는 현장을 급습하지만 망설임 끝에 그들을 놓아준다. 그러나 이 짧은 선택은 조직과 그를 돌이킬 수 없는 대결로 몰아간다.
감독의 말 “누아르는 비극적인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어느 순간 어두운 열정에 사로잡힌 한 인간을 통해 삶의 부조리함과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장르다. 형식적으로도 감각적인 공간 연출을 통해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내적으로 리얼리티를 창조하면서 시청각적인 즐거움을 준다는 데 매력이 있다. 선우 역시 자신의 감정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거나 계속 부정하면서 파국이 예상된 끝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이다. 선우와 주변 인물을 통해 비정하고 어둡지만 멋이 드러나는 남자들의 세계를 그려보고 싶었다. 촬영기간이 4개월 넘어 지금까지 찍은 작품 중 가장 많은 시간이 들어갔다. 빛과 카메라 위치 등을 유별나게 신경써야 하는 누아르 장르의 특성상 노동 강도가 셀 수밖에 없다. 아쉬운 점은 서울 근교의 공터 등을 주요 배경으로 찍으면서 도시의 밤을 많이 잡고 싶었는데 불경기가 심해 휘황한 불빛을 도무지 잡을 수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스탭들끼리 농담으로 <달콤한 인생>을 ‘불경기 누아르’라고 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