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극장전>에 캐스팅 된 이기우
2005-01-11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홍상수 감독, 왜 날 불렀을까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극장전〉의 캐스팅이 끝나갈 무렵 배우 이기우(24)는 영화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생각했다. ‘왜 날 불렀을까?’ 언제나 의외의 제목을 선택하고 예측 불가능한 캐스팅을 해 왔던 홍 감독이지만 신인배우 이기우의 선택은 ‘생뚱맞아’ 보인다.

<

<돌려차기> ·<그놈은 멋있었다> 조역, 홍감독 세계와는 ‘생뚱맞은’ 선택

2003년 〈클래식〉에서 삐쭉 키만 커서 툭하면 쓰러지던 태수로 스크린에 데뷔한 이기우는 〈돌려차기〉와 〈그놈은 멋있었다〉에서 조역으로 출연했다. 세 영화 어디를 봐도 홍상수 감독의 작품세계와는 도무지 엮을 만한 구석이 없고, 이기우가 연기한 캐릭터들 역시 세상의 너저분함에 찌들어 있거나 꼬인 데가 있는 홍 감독 영화의 인물들과는 거리가 있다. 키 크면 싱겁다는 통념을 온몸으로 웅변하는 듯한 이기우를 실제로 만나 보면 더욱 갸우뚱해진다. “전에 우연히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강원도의 힘〉을 본 적이 있어요. 감독님 만나보고 나서 몇 편 더 봤는데, 음 …, 되게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기우가 연기하는 〈극장전〉의 열아홉 살의 상원은 그의 표현대로라면 “소년과 남자 사이에 놓여 있는, 그러니까 아직은 좀 덜 자란” 학생이다.

1부와 2부로 나눠서 진행되는 이 영화의 1부에 해당하는 영화 속 영화에 등장하는 그는 중학교 때 좋아했던 여학생(엄지원)을 우연히 만나게 돼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처음에는 잠도 못 잘 정도로 겁을 많이 먹었는데 3~4회차 지나면서 그날그날 대본받는 게 오히려 집중하는 데 편해졌어요. 그리고 인물로 따지면 〈그놈은 멋있었다〉의 한성보다 훨씬 과장도 없고 현실적이잖아요. 그러니까 공감도 되고, 무엇보다 감독님이 모니터 보고 ‘귀여워 귀여워’하면서 예뻐해주시니까 좋고, 하하하.” 천상 착한 둘째아들 같은 얼굴로 속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초등학교 때 테니스를 시작해 스키, 농구 등 운동하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극장전〉 촬영을 시작하면서 전면 중단했다. 감독의 지시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고. 유독 ‘고된’ 술자리에 대한 소문이 많은 홍 감독의 촬영현장에서 술은 많이 마셨는가 물었더니 “시트콤(〈혼자가 아니야〉) 촬영이 겹쳐서 많이는 못 마시고요, 장이 길어서인지 많이 마셔도 술살은 안 찌는데 피부가 좀 거칠어졌어요. 라끄베르와 상의해야 할까봐. 하하.” 대화가 이어질수록 〈극장전〉이 홍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른 영화가 될 거라는 데 내기를 걸고 싶어진다.

고등학교 때 부쩍 자라 190㎝나 되는 키로 집에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북적대는 강남역에서 사람들이 쳐다볼까봐 걸음마저 빨라졌을 정도로 숫기 없었던 청년 이기우는 대학 1학년 말 패션모델로 연예계에 첫발을 디뎠다. “키 때문에 아는 형이 추천해서 패션쇼 모델 일을 시작했어요. 그때만 해도 그냥 아르바이트라고만 생각했는데 입대 한 달 남겨놓고 〈클래식〉에 캐스팅되면서 여기까지 온 거죠. 배우는 어떨까 막연히 생각해본 적은 있지만 모든 계획은 군대 갔다 와서 결정하려고 했거든요.” 고등학교 때 〈초록물고기〉를 보면서 처음 ‘저런 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기우는 〈그놈은 멋있었다〉의 로맨틱 가이 한성이 몸에 안 맞는 옷처럼 영 불편했듯 ‘아이돌 스타’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아직은 멋있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싱겁고, 유약한 이미지에 갇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년쯤 군대에 갈 생각인데 지금 인기를 끌기보다는 갔다 와서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멋있어지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제 키만큼 길게, 아주 길게 연기하고 싶어요.”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