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현상과 이면, 밝음과 어둠에 대한 인식론적 물음이다. 이 이항대립들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 개체 내의 양면들이다. 카메라는 오페라 무대의 겉과 속, 아래와 위를 계속해서 함께 보여준다. 영화의 주인공인 크리스틴 다에와 오페라의 유령은 이 양면성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이다. 유령은 기형적 얼굴로 인해 세상에서 버림받고 극장에 숨어 지내는 음악가이면서, 끊임없이 명랑하고 화려한 오페라를 내놓는다. 유령은 어둠 속에서 살면서도 크리스틴의 출세를 통해 자신의 밝은 면을 실현하려 한다. 그는 ‘음지에 살면서 양지를 지향한다’. 크리스틴 역시 음악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음악으로 자신을 구속하는 유령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유령의 밝고 아름다운 오페라 음악 뒤에 숨겨진 세상에 대한 증오와 익숙한 어둠, 크리스틴의 순진한 면모 뒤에 숨은 어두운 욕망에의 동경은 동전의 양면이다.
크리스틴이 유령과 첫 대면을 하게 되는 계기는 그녀가 거울을 보고 있을 때이다. 거울은 정체성을 상징하는 낯익은 도구다. 크리스틴의 얼굴에 겹쳐 나타나는 유령은 그녀가 가진 어두운 욕망을 의미한다. 유령을 따라 크리스틴은 거울을 열고 아래로 내려가는데, 이것은 명백히 성적인 함의를 지닌다. 그곳은 아래이고, 음습하고, 축축이 젖어 있으며, 그곳에는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이 있다. 마지막 오페라 장면에서 가수로 출현한 유령을 거부하지 않고 그를 따라 다시 ‘구멍’으로 ‘들어가는’ 크리스틴의 모습 역시 어둠을 향한 욕망의 힘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아버지가 보낸 ‘밤의 천사’ 유령은 아버지의 대체물로서, 크리스틴은 결코 어머니를 찾지 않으며(가장 힘들 때 그녀는 아버지의 묘로 간다), 아버지를 대신하는 유령의 지배를 받아들인다.
어둠 속에서 평생 살아온 그는 자신을 따르는 밝음의 현현인 크리스틴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크리스틴과 유령의 결정적 차이가 발견된다. 크리스틴은 밝음과 어둠을 맘대로 경험할 수 있지만(즉, 노래를 하거나 밤에 유령이 이끄는 대로 가면 된다), 유령은 어둠에 대한 권한은 있어도 크리스틴이 없이는 밝음을 맘대로 경험할 수는 없다. 유령이 극장 운영과 캐스팅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는 이유는 외모의 기형을 권력의 행사로 벌충하려는 것뿐 아니라 그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크리스틴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녀간의 관계역학에서 더 많이 사랑하는 자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 유령은 집착하고, 크리스틴은 벗어나려 한다. 결국, 크리스틴-유령의 동일축에서 크리스틴이 라울을 선택하는 순간 유령은 몰락한다. 이 내러티브의 클라이맥스는 이 부분, 즉 유령의 몰락이 공멸로 끝나지 않고 크리스틴을 보내주는 것으로 끝난다는 데 있다.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대상을 그 대상이 원하는 대로 놓아주면서 자신은 한없이 허물어지는 존재, 유령은 그런 사람이고, 비극성과 슬픔은 여기서 극대화된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풍부한 음악들은 곳곳에서 이 내러티브의 비극성을 자극한다. 크리스틴과 라울의 사랑고백인 <All I Ask of You>를 몰래 듣는 유령의 슬픔은 노래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극대화한다. 마지막 오페라 <돈 후안>(여자 한번 꼬셔보지 못한 유령이 쓴 <돈 후안>이라!)에서 유령은 가수로 등장해서 <The Point of No Return>을 부르는데, 이 노래에도 역시 마지막으로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넘어버린 유령의 슬픔이 담겨 있다.
<오페라의 유령>은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영화의 인상적인 첫 장면에서 잘 드러나듯이, 유령의 존재 때문에 화려한 파리 오페라 극장은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어둠을 도닥거리지 못하면 밝음은 언제든 어둠이 될 수 있다. 존재하되 또 존재하지 않는, 그래서 ‘유령’일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안의 수많은 소수자들의 어둠을 밝혀주지 못한다면, 이 사회는 곳곳에서 유령의 출몰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햄릿>과 <공산당선언>에서의 유령이 그랬듯, 유령은 현실의 감춰진 모순을 드러내는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텍스트가 아닌 현실에서의 유령의 출몰은, 그러나,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아름다운 음악을 동반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