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러졌던 <굿 윌 헌팅>과 <파인딩 포레스터>에서 번 돈을 장면 하나하나를 불필요하게 복제한 <싸이코>나 <블레어 윗치> 스타일의 <제리> 같은 실패작들에 쏟아붓는 걸 보면 구스 반 산트도 대단하다. 비록 작품들이 고르지는 않아도 터무니없이 실험적인 상업영화감독으로는 거의 스티븐 소더버그 수준이다. 그리고 극단적인 반응을 일으킨 <엘리펀트>는 그중 가장 성공적인 실험작이다.
지난 5월 칸영화제의 기대치 않은 수상작인 <HBO> 제작의 <엘리펀트>는 미국 고등학교 총기 난사를 대담하게 다루고 있는 시적인 재앙영화다. 1999년 컬럼바인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이 영화는 다른 사건들의 세부점들을 섞어 대담한 탐미주의와 다큐멘터리식의 묘미로 보여준다. 해리스 사비즈가 1.33 대 1 표준 TV비율로 세련되게 촬영한 스펙터클은 롱숏들을 통해 복잡한 음향의 다리들을 건너 미끄러지듯 흘러가게 해준다. 이야기들은 짜여졌다기보다 눈앞에서 펼쳐진다. 인물들은 학교 식당에서 어울리거나 무미건조한 복도를 지나가며 소개된다.
사실 반 산트는 많은 시간을 와트 고교의 형광등 달린 복도를 따라 스탠리 큐브릭의 귀신 나오는 산장 호텔을 보여주듯 잘 나가는 아이들, 대식증 여자아이들, 덩치들과 샌님들, 주눅 든 얼간이들, 딴따라들을 어슬렁거리고 비틀거리는 유령처럼 보여준다. 모두 배우가 아닌 십대들이고 반 산트의 넋나간 듯한 시선 속에서 미화돼 있다. 이들의 존재와 임박한 이들의 부재가 이 영화의 진정한 주제이다(컬럼바인에 대한 더 심리극적인 명상이며 주요 인물이 실제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는 벤 코치오의 저예산 독립영화 <제로 데이>처럼).
긴장이 쌓여간다. 엇갈리는 길들은 당신의 종교적 견해에 따라 신의 섭리일 수도 있고 불규칙하고 예측할 수 없는 브라운 운동일 수 있다. 약간 다른 견해에서 장면들이 되풀이되면서 와츠의 로커룸과 도서실은 큐비즘적인 중복을 보여준다. 베토벤의 <월광소나타>에 맞춰 아이들은 나른하게 풋볼을 하고 호리호리한 소녀가 그 앞을 황홀하게 슬로모션으로 지나간다. <엘리펀트>(‘방 안의 코끼리’라는 표현의 바로 그 코끼리)는 가장 비전형적인 다큐드라마다(방 안의 코끼리는 분명히 모두가 볼 수 있지만 누구도 함부로 말하지 않는 심각한 문제를 가리키는 영어 표현). 영화의 제작자들은 거의 아방가르드에 가까운 서술 구조에 그리 행복하지 않았겠지만 타임워너의 소속사인 <HBO>는 반 산트가 컬럼바인의 살인자들이 <매트릭스>를 보고 입었던 검정색 트렌치코트를 무시했다는 걸 고맙게 여겨야 할 테다.
<HBO>적인 순간은 사춘기의 비열함에 강한 불만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나온다. 놀랍게도 예술적이고 그 자체의 불가사의함이 관철돼 있는 이 영화는 한편으론 연결된 구체적인 ‘텅 빈’ 순간들을 강력하게 환기시키지만 동기를 보여주는 덴 너무 약하다. 헤비메탈의 강한 소리는 없고 몰락한 학생들의 일상이, 가끔 들려오는 불길한 전조의 천둥소리로만 알 수 있는 하늘의 구름처럼 뭉게뭉게 일어난다. 그러는 동안 두 고립된 총격자는 지하실에서 총기류를 구하기 위해 인터넷을 하고 나치 독일에 대한 TV다큐멘터리를 보며 숙제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순수하게 음란한 래리 클라크식의 마무리로 이 둘이 마지막 고별 샤워를 같이 하게 한 것은 반 산트의 가장 나쁜 아이디어다(래리 클라크는 십대의 문화, 폭력, 성, 마약 등을 거리낌없이 묘사한 작가. 성적인 암시가 가득한 소년들의 사진으로 유명하다).
<엘리펀트>는 자연스럽게 분열시키고 불안하게 하지만 또한 꽤 약아빠졌다. 너무 약지 않았나. 총격자들은 한쌍의 루시퍼가 되지만 이상하게도 악함이 결여되어 있다. 마치 감독은 컬럼바인이 <베를린 천사의 시>의 감상적인 수호천사들에게 어떻게 느껴졌을까를 상상하고 있는 듯하다. 결국 한 시간 정도 이리저리 누비다가 반 산트는 정해진 결말에 승복하고 살륙극이 일어나게 한다. 대부분의 잔인한 장면들은 스크린 밖에서 일어나지만 갑작스런 혼돈과 경고의 외침들, 광적인 파괴음들, 겨냥된 사격들은 그만큼 처절하다. 비록 그 흐름을 멈추게 하면서도 계속 흘러가게 하려는 가련한 바람을 가졌으니 반 산트는 또 다른 제목의 고등학교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겠다. <시간은 멈춰져 있다>. <엘리펀트>는 예술가가 어느 가을 아침의 표면을 모든 것이 뒤집어지고 헤아릴 수 없게 끌려들어가기 전 할 수 있는 만큼 걷어낸 일시적인 시간의 소용돌이 같다.
(2003.10.22.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
*<엘리펀트>는 하이퍼텍 나다에서 1월2일(일), 7일(금), 12일(수) 한회씩 상영됩니다(‘나다의 마지막 프로포즈’ 프로그램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