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눈물의 의미를 아는 희극지왕, <쿵푸허슬>의 주성치
2005-01-13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사진 : 이혜정
영화평론가 김봉석이 <쿵푸 허슬>로 귀환한 ‘주성치월드’를 사랑하는 이유

주성치가 쿵후영화를 들고 한국을 찾아왔다. 2002년 <소림축구>로 처음, 폭이 넓은 한국 관객과 만났던 주성치는, 다시 한번 쿵후의 부흥을 꿈꾸는 그만의 소망을 스크린 위에 비급처럼 펼쳐 보이고 있다. 주성치가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쿵푸 허슬>은 갱이 되고 싶은 청년 싱이 희생과 정의와 생명의 가치를 깨닫고 전설로만 전해지던 무공 여래신장을 터득하는 영화. 중국 상하이에서 극비리에 촬영된 <쿵푸 허슬>은 이소룡을 숭배해서 무도인이 되고자 했던, 그리고 결국엔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던, 주성치의 오랜 꿈이 결정으로 맺힌 영화다. “진지한 쿵후액션영화” <쿵푸 허슬>에 홍콩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부어넣은 그는 지금 또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소림축구>의 사형사제들과 칠소복의 일원이었던 원추를 거느리고 한국에 도착한 주성치를 만났다. 편집자

나는 주성치 마니아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주성치를 좋아한다, 믿는다. 그의 영화가 나온다면, 장르가 무엇이건 본다. 어떤 이야기이건 무조건 본다. 주성치가 출연한다면, 일정 정도의 즐거움은 확보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건 성룡이나 이연걸의 영화도 마찬가지이지만, 조금 차이가 있다. 성룡이나 이연걸에게 기대하는 것은 액션이다. 지나친 특수효과만 쓰지 않는다면, 영화가 엉망이어도 그들의 액션만 많이 볼 수 있다면 대체로 만족한다. 주성치는 액션배우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쿵푸 허슬> 이전까지는 아니었다. 주성치는 말장난과 슬랩스틱으로 관객을 즐겁게 한다. 광둥어로 구사되는 고유한 개그도 희한하게 즐겁지만, 짐 캐리 이상의 표정연기와 패럴리 형제 이상의 엽기적인 상황으로 연속되는 주성치의 영화는 끊임없이 웃음을 안겨준다. 액션이 아니라 언제나 코미디로 타국의 관객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성치는 그 어려운 일을, 10년이 넘도록 꾸준히 해왔다. 주성치가 홍콩 최고의 스타를 넘어서, 전세계에 열광적인 마니아를 거느리는 배우가 된 것은 충분히 타당한 일이다.

<쿵푸 허슬>은 누구나 반기는 오락영화

하지만 주성치가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을까? 성룡과 주윤발, 이연걸처럼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전 세계인을 사로잡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만국공통의 액션이 아니라 각 나라, 민족에 고유한 웃음으로 승부하는 주성치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많을 때는 1년에 1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던 시절의 주성치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룡이 <프로젝트 A>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처럼, 주성치 역시 착실하게 자신의 왕국을 건설해왔다. 아니 이미 이루어졌다. <도성> <도학위룡> <무장원소걸아> 등 히트작을 양산하던 주성치는, 마침내 1994년 <007 북경특급>에서 이력지와 공동연출을 하게 된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직접 만들게 된 주성치는, 언제나 꿈꾸어왔던 ‘쿵후’를 <소림 축구>와 <쿵푸 허슬>에서 주요한 소재로 사용하게 된다. 아니 쿵후의 정신을 그대로 영화에 담게 된다.

주성치 특유의 웃음에, 고난도의 액션이 더해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쿵푸 허슬>에서 어린 싱이 거리에서 비급책을 사서 연습하는 장면은, 주성치의 어린 시절 그대로다. 주성치의 꿈은, 이소룡 같은 액션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어린이 쇼의 사회자를 맡으면서 천부적인 유머감각을 선보이고 최고의 코미디 배우가 되었지만, 결코 꿈은 버리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쿵후 영화’를 만들 날을 기다렸다. 주성치는 이미 최고였지만, 너무나도 신중하고 철저했다. <쿵푸 허슬> 전까지는, 단지 ‘자신감이 없어서’ 쿵후 영화에 도전하지 않았다니까. 그 먼 길을 돌아올 정도로 주성치는, 섬세한 완벽주의자다.

주성치를 만나면, 그가 얼마나 유머가 넘치는 한편 철저한 인간인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다. 한때 은인이었던 이수현을 비롯하여 이력지, 오맹달과도 헤어진 주성치는 ‘인간관계가 서툴다’라는 말을 듣는다. ‘고독노인’이란 별명처럼, 그는 모든 것을 생각한다. 인터뷰에서도 절대 빗나가지 않는다. 신중하게 자신이 할말을 고르고, 어떤 선까지만 이야기를 한다. 타인을 웃기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다. 생각이 없거나, 너무 많거나. 주성치는 명백한 후자이고, 지나칠 정도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배우이며 감독이다. 자신만의 성을 소유하고, 그 성에서 만들어낸 무엇으로 세계를 정복해가는 대중 예술가다.

컬럼비아의 자본으로, 세계시장을 목표로 만들어진 <쿵푸 허슬>은 오락영화의 걸작이다. 이소룡과 찰리 채플린을 존경한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다. <쿵푸 허슬>은 웃음과 액션, 그리고 감동까지 모든 즐거움을 안겨준다. 엽기적인 웃음의 코드를 약간 줄이고, 액션의 강도를 높인 것은 주성치의 취향만이 아니라, 일반 관객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변화다. 그동안 주성치의 영화에 대한 반응은 극단적이었다. 너무 좋아하거나, 썰렁하거나.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주성치 영화는, 한국에서는 열광적인 마니아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소림축구>가 그런 선입견을 깼고, 마침내 <쿵푸 허슬>은 누구나가 반기는 오락영화가 되었다.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좋은 의미로 할리우드적이 된 것이다. 할리우드영화의 패러디를 넣은 것이 단지 ‘보편적인 커넥션’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쿵푸 허슬>은 누구나가 알고 있고, 누구나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과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다. 무협지의 전통적인 플롯으로, 한때 길을 잘못 들었지만 회개하면서 최고수가 되는 남자의 역경이 그려진다.

우리의 꿈, 아픔을 웃음으로 뒤집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이 승리한다. 혹은 ‘사랑’이 승리한다. 권선징악은 너무나 뻔한 것이지만,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초현대적인 영웅이라면, 일면적인 선과는 약간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악인지, 선인지 구분하기 힘든 주인공들은, 세기말부터 꾸준하게 영역을 넓혀왔다. 그런 복합적인 영웅이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도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모두 죽어버리면 좋을 텐데’라는 대사, 단지 사랑을 위하여 대의를 저버리는 <연인>의 인물들에게 끌린다. 하지만 자신의 욕망이나 사랑을 위하여 헌신짝처럼 세상을 버릴 수 있는,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영웅도 이제는 너무나 흔하다. 그게 옳다고 우길 생각도 없다. 그보다는 <쿵푸 허슬>의 싱처럼, 폼나게 살고 싶었지만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생명, 사랑을 어느 순간 깨닫는 영웅이 더욱 가슴을 울린다는 것을 안다. 결국은 돌아와야만 하고, 결국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진리, 혹은 사랑이 있음을 깨닫는 영웅이, 21세기에는 필요하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주성치가 말하는 ‘쿵후’의 정신이다. 선이 악을 물리치고,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것.

주성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이야기를 해왔다. 언뜻 보기에는 너무 특별한 이야기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장 전통적인 이야기들을. 주성치 영화에 나오는 인물은 소시민 혹은 빈민층이거나 정상의 자리에서 순식간에 구렁텅이로 떨어져내린다. 그 바닥에서 절치부심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꾸어가며 다시 시작한다. <쿵푸 허슬>에서 독사에게 입술을 물리거나, 야수에게 두들겨맞는 것 정도는 이전 주성치 영화의 고난과 비교해본다면, 정말 사소한 걸림돌 정도다. ‘나는 코미디를 엄숙한 제재를 사용하여 연기한다’는 말처럼, 주성치는 가장 아프고, 힘든 이야기를 코미디로 바꾸어버린다. 그 깊고도 섬세한 내면으로 들어가도 좋고, 아니어도 그냥 웃을 수 있다. 주성치 영화의 ‘가장 큰 감동은 소인물의 감정과 소시민의 마음의 소리’라는 말처럼, 그의 영화에는 작고 약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한껏 담겨 있다. 그것이 바로 주성치를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고, 이국에서도 마니아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으며, 지금 <쿵푸 허슬>이란 걸작을 만들어낸 힘이다.

지금 주성치는 또 한 단계를 넘어서,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고 있다. 이제 원하는 것은, 매년 주성치의 영화를 보는 것뿐이다. <소림축구>에서 <쿵푸 허슬>까지, 3년이란 세월은 너무 길었다. 주성치의 진지한, 혹은 진지하지 않은 ‘쿵후 영화’를 다시 만나고 싶다.

편집 심은하·디자인 노형수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