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폴라 익스프레스> & <월드 오브 투모로우> [2] - <폴라 익스프레스>
2005-01-18
글 : 김혜리

A. 기획

환상과 리얼리티의 봉합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폴라 익스프레스>를 자녀의 크리스마스 선물로 만들었다고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있을까. <백 투 더 퓨처> <포레스트 검프>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 <죽어야 사는 여자>를 만든 그는 오래전부터 환상과 리얼리티를 매끈하게 봉합할 영화적 묘안에 줄기차게 몰두해온 발명광이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가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병치라면 <폴라 익스프레스>는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화학적으로 섞어버린 한발 더 나아간 실험이다. 게다가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값비싸고도 안전한 실험이었다. ‘톰 행크스 주연의 크리스마스 영화’라는 막강한 보험에 가입한.

B. 연기

이제 아역배우는 필요없다?

‘고스트 인 더 셸’(Ghost in the Shell) <공각기동대>의 영문 제목은, 안면근육과 동작의 ‘주형’을 떠서 CG로 그린 캐릭터에 주입하는 <폴라 익스프레스>의 기법을 표현하는 말로 제격이다. 한 배우의 연기가 디스크에 저장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배우들은 톰 행크스처럼 여러 역을 연기하며 디지털 마네킹이 되는 것을 과연 기꺼워할까? 적어도 이 영화의 제작 파트너 톰 행크스는, 퍼포먼스 캡처가 배우들 삶의 질도 향상시킬 거라는 입장이다. “연기를 데이터로 만듦으로써 미래에는 외모, 신장, 인종, 심지어 성별의 제약도 받지 않는 캐스팅이 가능하다. 메릴 스트립이 링컨으로 분할 수 있다. 또 촬영준비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나는 38일 동안 다섯역을 촬영했다. 모든 앵글에서 연기가 기록되니까 총체적으로 리액팅하게 된다.” 행크스의 불만은 단 하나. 배우의 연기에 중요한 감각을 제공하는 의상을 갖춰 입지 못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온몸에 마커를 붙인 <폴라 익스프레스> 배우들의 현장 모습은 전부 <헬레이저>의 핀헤드 몰골이다. 한편, 감독은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블루 스크린에 대한 퍼포먼스 캡처의 우위를 강조했다. “<콘택트>나 <포레스트 검프>에서 블루 스크린 특수효과 작업을 할 때 분장이나 위치표식을 의식하느라 에너지가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퍼포먼스 캡처는 그런 제약이 없고 여러 명이 동시에(현재 기술로는 5인까지 가능) 상호작용하면서 연기할 수도 있다.” 그는 나아가 아역배우들의 실업(?)을 예고한다. 법규상 노동시간이 짧고 미숙한 아역배우를 어렵게 찾을 것 없이 오스카 수상자의 고급 연기를 원하는 역에 쓸 수 있으니 바랄 나위가 없다는 것이다. 톰 행크스의 일인다역이, <폴라 익스프레스>를 단조롭게 만들었다고 느낀 관객이라면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C. 대차대조표

첫주 흥행 실패했지만 북미흥행 1억5천만달러

<폴라 익스프레스>는 20개월에 걸려 1억7천만달러를 써서 97분을 만들었다. 배급·광고 비용까지 합치면 2억8천만달러가 든 것으로 추산된다. 픽사의 평균제작비가 분당 100만달러,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실사영화가 평균 6380만달러로 1년 안에 제작되는 점을 고려하면 사치다. 게다가 보도에 의하면 톰 행크스와 로버트 저메키스는 도합 4천만달러 개런티에 35%의 흥행지분까지 받는다. 결국 공동 제작사 유니버설이 도중에 손을 떼고 부동산 재벌 스티브 빙이 8500만달러를 투자해서 완성된 <폴라 익스프레스>의 개봉 첫 5일간 흥행은 고작 3060만달러. 는 워너가 사옥에 만장이라도 걸어야 하지 않느냐고 애도했으나, <폴라 익스프레스>는 놀라운 지구력을 보이며 5주차에 첫주 수익의 4배를 넘는 반격에 성공했다. <버라이어티>는 <폴라 익스프레스>가 북미흥행 1억5천만달러, 해외흥행 1억5천만달러, 내년 크리스마스에 출시될 DVD, VHS 판매로 1억8천만달러, 국내외 TV 판권료 1억달러를 거둬들일 것으로 재빨리 점쳤다.

<폴라 익스프레스>는 메이저 스튜디오 영화로서는 최초로 3D 아이맥스 포맷으로 동시 개봉된 영화이기도 하다. 현재 로버트 저메키스는 역시 퍼포먼스 캡처 기법을 이용하는 길 케넌 감독의 스릴러 <몬스터 하우스>를 제작 중이다. <폴라 익스프레스>가 가져다준 해방감에 푹 빠져 다시 보통 실사영화로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극적인 속도로 늙어가는 인물에 관한 영화를 다음 연출작으로 구상 중이다. 물론, 주연이 누구든 두꺼운 특수분장을 요구받지는 않을 것 같다.

D. 이슈

우리는 완전한 영화를 원하는가?

퍼포먼스 캡처 기법을 열렬히 홍보하는 저메키스의 논지는 단순명쾌하다. 그것은 감독이 보기에 완전한 영화를 가능케 한다. 배우와 싸울 필요없이 나중에 한번 더 눈을 깜박이게 할 수 있고, 기막힌 장면의 포커스가 흔들린 것을 나중에 보고 땅을 칠 일도 없다. 촬영은 조감독을 보내고 나중에 수정하면 된다. “연기의 미세한 변화, 색깔의 변화, 구름과 나무의 추가 같은 이미지의 변용이 영화의 일상적인 후반작업이 될 것이다.” 과연 기술의 도움으로 어떤 작가주의 비평가도 꿈꾼 적이 없을 만큼 감독의 주도권은 커질 것인가?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반문은 더 거세다. 그같은 감독의 주도권은 개성의 표현과 예술의 목적에 반드시 봉사할까? 공동 작업 가운데 문득 고개를 드는 자발적 아름다움을 봉쇄하지는 않을까? 무엇보다 우리는 정녕 ‘완전한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는 것일까?

<폴라 익스프레스>의 제작과정

"모든 장면을 감독 의도대로 찍을 수 있다"

<폴라 익스프레스>는 실사, 블루 스크린, 퍼포먼스 캡처의 세 가지 세트 실험을 거쳐 퍼포먼스 캡처를 골랐다. ‘퍼포먼스 캡처’는 원작 삽화의 환상성을 보존하는 동시에 현실감을 살리겠다는 저메키스 감독의 확고한 목포에 부합했고 통상적 애니메이션에 반대한 원작자 크리스 반 알스버그의 뜻에도 맞는 선택이었다. 널리 홍보된 대로 퍼포먼스 캡처는 모션 캡처의 기술을 표정까지 확장한 기술이다. 배우는 ‘더 볼륨’이라고 불리는 10제곱피트의 돔에서 72대의 바이콘 모션 분석 카메라에 포위돼 연기한다(돔이 너무 넓으면 데이터가 커져 과부하가 걸린다). <매트릭스> 속편의 액션 시퀀스에 쓰인 이 카메라들이 쏘는 적외선은, 배우의 전신(얼굴에만 150개 이상)에 부착된 반짝이 마커에 반사되고, 카메라는 초당 120번 셔터를 클릭하며 모든 앵글에서 잡힌 수백개 마커의 위치를 데이터로 저장한다. 이 ‘정보’는 따로 그린 캐릭터의 가상 골격과 근육에 입혀져 연기가 된다. <폴라 익스프레스>의 아킬레스건은 캐릭터의 눈. 안구에 마커를 붙일 수 없기에 눈꺼풀 데이터로 눈의 움직임을 유추하는 데 그쳤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촬영은 연기가 기록된 다음부터 진행된다. CGI로 컴퓨터 안에 디자인된 세트 안에서 감독은 마음대로 앵글과 동작을 선택해 찍는다. 상상할 수 있는 어떤 장면, 어떤 카메라워크도 설계대로 실행할 수 있다. 철로를 벗어나 빙판에서 몸부림치는 특급열차도 오케이. 물리법칙과 무관하게 운동하는 버추얼 카메라는 폭포에서 낙하하고 열쇠구멍을 통과하며 책의 양피지 뒷면에 숨어드는 묘기를 과시한다. 여기서 솟는 아이맥스 영화적 쾌감은 비디오 게임과 같지만 게임보다 디테일이 한결 풍부하고 위치선정에 제한이 없으며 핸드헬드와 각종 렌즈의 효과, 실제 이상의 딥포커스 효과도 가능하다. 저메키스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현실적인 인간 캐릭터를 보여주면서도 모든 장면이 뜻대로 가능한” 판타스틱한 영화를 찍는다는 의식을 갖고 있었다. <폴라 익스프레스>의 시각효과 감독 켄 랄스턴, 프로덕션디자이너 릭 카터, 의상디자이너 조안나 존스턴은 저메키스의 전작 실사영화들을 함께한 동료들이다.

편집 박초로미·디자인 문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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