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제6회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제작발표회
2005-01-19
글 : 이혜정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필름에서 해방되어 날것처럼 찍고 싶다”

제6회 전주국제영화제의 디지털 삼인삼색 제작발표회가 지난 1월10일 오전 11시 세종호텔에서 열렸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4월28일부터 5월6일까지 지난해에 비해 하루 줄어든 9일 동안 치러지며, 총 170여편의 영화들을 상영한다. 지난해 286편에 비하면 상영작도 대폭 줄였다. 영화제쪽은 규모보다는 내실을 선택한 듯하다. 그런 점에서 1회 때부터 의욕적으로 실시해온 디지털 삼인삼색 프로젝트는 올해도 활기를 띤다. 디지털 삼인삼색은 전주국제영화제에서의 프리미어 상영을 전제로 영화제가 국내외 세명의 감독을 선정하여 작품당 5천만원의 제작비 및 촬영, 편집 장비를 지원하고 각 30분 내외의 영화를 완성하게 하는 프로젝트다. 민병록 집행위원장은 “전주국제영화제를 알리는 효자, 상징적 프로그램”이라고 디지털 삼인삼색을 소개했다.

선정기준 "감독의 인지도와 디지털로 만들었을 때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

올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세명의 감독은 한국의 송일곤, 타이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일본의 쓰카모토 신야이다. 송일곤 감독은 이미 장편 데뷔작 <꽃섬>으로 디지털영화의 가능성을 입증한 바 있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은 비디오 아트 작업과 필름 작업을 병행하면서 매체성을 넘나드는 창조적 사고를 할 줄 아는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반면 쓰카모토 신야는 필름 이외에 다른 매체로 작업한 경험이 없지만, 연출에서 편집까지 모든 제작공정을 혼자서 해결하는 독특한 방식을 감안할 때 디지털의 편의성과 맞닿아 어떤 새로운 작품이 나올지 기대를 갖게 한다.

민병록 집행위원장의 인사말로 시작한 이날의 행사는 프로젝트 취지에 관한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소개, 각 작품 선정기준 및 그동안 디지털 삼인삼색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의 배급현황 등에 대한 정수완 프로그래머의 설명으로 이어졌고, 다시 짧은 질의 응답 시간이 마련됐다. 유운성 프로그래머는 “디지털영화의 미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화의 미학 자체를 고민하는 것”으로 의미를 확장하여 볼 것을 권고했고, 뒤이어 정수완 프로그래머는 “지난해 디지털 삼인삼색의 평가가 좋아서 올해 선정하는 데 어깨가 무거웠다. 요즘 옴니버스영화가 많이 기획되는데 영화제에서 기획되는 옴니버스는 좀더 자유로운 프로젝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감독의 인지도와 디지털로 만들었을 때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점을 염두에 두었다고 선정기준을 밝혔다. 한편 그동안의 배급 성과를 설명하기도 했는데, 제5회 디지털 삼인삼색은 “작은 극장이지만 일본에서 개봉도 했으며, 내년에는 미국 내에서 DVD 출시 계획도 있다. 자체 배급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국내 및 해외 배급을 활발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디지털 삼인삼색 중 하나였던 일본 감독 이시이 소고의 <경심>은 이미 장편으로 완성되어 올해 전죽국제영화제에 상영될 예정이고, 쓰가모토 신야의 이번 작품은 영화제가 지원하는 5천만원의 제작비에 자신의 자본을 추가하여 장편으로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다.

세명의 감독은 하나같이 일단 영화제작의 기회를 제공받은 것에 만족을 표하고 있다. 송일곤 감독은 저예산 환경옴니버스영화 <깃>의 제작과정을 예로 들면서 “내 느낌대로 만들 수 있었고, 작가로서의 자유로움을 느꼈다. 어떤 감독이든 영화를 찍고 싶어한다. 때문에 이건 감사한 기회다”라고 말했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감독 역시 타이영화 시스템의 허약함과 외국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어야만 하는 현실을 토로하면서 “해방감을 표현하고 싶다. 필름일 때의 중압감에서 해방되고 싶다”고 의지를 밝혔다. 쓰카모토 신야 감독 역시 “적은 제작비와 스탭으로 날것처럼 찍고 싶다”고 표현했다.

송일곤 <마법사(들)>·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세계의 욕망>·쓰카모토 신야 <탈출 프로젝트>

송일곤 감독
쓰카모토 신야 감독

송일곤의 <마법사(들)>는 ‘마법사(들)’라는 밴드 멤버들이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전 멤버의 제사를 위해 12월31일 한자리에 모인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밤 11시30분에서 한해가 바뀌는 약 30분간을 다룰 예정이며,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벌어질 사랑의 고백도 있다. 송일곤은 그 이야기를 롱테이크 한컷에 담아 찍어낼 생각이다. 당연히 “리허설이 많이 필요”할 테고, “공간에 대해 신경쓰게 될 것”이라고 한다. “해체된 밴드의 31분 동안의 이야기, 사랑에 빠진 31분,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그런 시간들을 표현하고 싶다. 시간의 제약을 통해 오히려 시간이 확장될 수 있는 그런 영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세계의 욕망>에서 주인공은 한편으로 여전히 ‘밀림’이며, 그것과의 교감이다. 그는 연출의도에 영화촬영 중 밀림 속으로 사라진 원숭이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세계의 욕망>은 정글이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생명체일지 모른다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또 하나의 화두는 영화 만들기 자체다. 일군의 35mm 영화 촬영팀이 밀림을 배경으로 오래된 타이 장르영화의 전형적인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를 극영화 필름으로 찍는 과정이 있고, 그것을 다시 디지털로 담는 과정이 있고, 그것을 또다시 다른 팀이 디지털로 담는 과정이 있다. 그러면서 영화 만들기에 대한 겹겹의 고리들이 만들어지고, 낮과 밤의 다른 세상이 열릴 예정이다. 그의 전작 <열대병>의 나눠지고 합쳐지는 2편의 이야기처럼 낮과 밤의 부분은 마치 다른 세상처럼 꾸며질 듯하다(자세한 부연설명은 개별 인터뷰 참조).

<탈출 프로젝트>(가제)라고 제목 붙인 쓰카모토 신야의 작품은 “콘크리트로 싸인 좁은 공간에 사람이 끼어 있는, 그러면서 자신의 의식이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변해가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쓰카모토 신야는 이번 영화가 다루게 될 것은 “인간의 불확실성”이고, 또한 “육체적 감각에 관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성적인 스토리 라인보다는 파괴적인 시각 스타일로 영화를 밀고나가는 쓰카모토 신야의 첫 번째 디지털영화가 되는 셈이다. 올해 디지털 삼인삼색은 지난해와 달리 미리 구체적인 시놉시스를 받아 진행되고 있으며, 3월 말에 각 작품의 완성본 영화가 나올 예정이다.

<세계의 욕망>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인터뷰

“영화 만드는 과정의 ‘마술’을 포착하고 싶다”

-어떤 표현들을 염두에 두고 있나.

=영화를 만드는 작업의 아름다움과 고통, 상업적이건 예술적이건 하나의 이미지를 포착하기 위해서 벌이는 헌신적인 노력, 이런 과정 자체에 어떤 마술적인 부분들이 있다. 내가 갖고 있는 영화작업에 관한 기억들을 포착해서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다.

-<세계의 욕망>에 관해 부연설명을 해준다면.

=기자회견에서 영화를 찍는 두 집단이 있다고 설명했는데, 사실은 세개의 집단이 있는 셈이다. 35mm 영화를 찍는 그룹이 있고, 두개의 비디오 그룹이 있다. 35mm그룹은 낮에 각본을 갖고 작업을 한다. 밀림에서 사랑에 빠진 두 남녀 이야기를 낮 동안에 다룰 거다. 하지만, 스토리에 집중하지는 않을 거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어딘가로 도망간다든지 하는 것은 과거 타이영화에 많이 등장한 소재다. 그런 과거 타이영화에 대한 느낌들을 표현하고 싶고, 35mm로 작업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유롭게 찍으라고 할 것이다. 그걸 내가 관찰하고, 그런 내 작업을 다른 사람이 관찰한다. 그렇게 해서 35mm를 필름으로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이미지로 전환한다. 밤에는 춤추고 노래하는 신비로운 요정 등이 등장하고, 노래는 현대적인 디스코 감각의 노래가 쓰일 거다.

-필름으로 촬영하는 밀림과 디지털로 촬영하는 밀림 사이에 어떤 차이점을 염두에 두고 있나.

=흥미로운 질문이다. 자세히는 생각 못해봤는데, 필름을 인화하지 않고 비디오 이미지로 전환하기는 해도 필름이 표현해낼 수 있는 색깔의 콘트라스트 범주와 디지털이 표현할 수 있는 그 범주가 다르기 때문에, 관객이 그 질감의 차이에 대해서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 싶다. 디지털은 좀더 즉각적인 특성이 있고, 필름은 인화의 과정 때문에 기억이란 부분과 더 가까운 매체인 것 같다.

-다음 영화 계획은.

=프리프로덕션 중인데, 아마도 나의 부모를 다루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얼마 전에 고향을 갔다가 과거의 모습이 그리워졌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부모가 맺어지기도 전에, 그들이 서로 다른 남녀를 만나 사랑했던 때를 다루고 싶어졌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스토리 중심이기보다는 특정 공간과 그곳에서 사람들이 받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 점쟁이를 찾아가서 내 부모의 전생을 물어봤는데, 거기서 어떤 이야기들을 끌어내고 싶었기 때문이고…. 전생을 다룰 때는 또 다른 배우들이 그 캐릭터들을 맡게 될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섞이면서 시간상의 과정들도 파괴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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