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홍상수 감독 <극장전> 촬영현장
2005-01-21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밝아졌다, 줌과 통했다

연극 공연이 끝난 극장 앞에서 19살 남녀가 만난다. 3일 동안 종로에서 남산 밑까지 동선이 이어지는 사이에 둘은 어떤 사연을 만든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다. 영화의 제목은 <극장전>. 서울 종로 씨네코아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한 남자가 극장을 나온다. 영화 감독 지망생이지만 7~8년 넘도록 데뷔를 못하고 있는 동수. <극장전>의 감독 이형수의 후배이기도 하다. 여러 상념이 겹치는 듯 착잡한 표정의 동수 앞으로 <극장전>에 출연한 여배우 최영실이 걸어 나온다. 동수는 뒤에서 힐끗 힐끗 보기만 한다. 그뒤 그날 하룻 동안 동수는 평소 가지 않던 연극영화과 동창회에도 가고 그러면서 최영실을 세차례 만나게 된다.

감독지망생과 여배우의 만남 ‘영화속 영화’ 가 3분의 1 차지

홍상수 감독의 여섯번째 영화 <극장전>의 얼개다. 무엇보다 영화라는 매체를 영화 속에 적극적으로 등장시킨다는 점이 눈에 띈다. 편집에서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현재 예상대로라면 영화의 전반 3분의 1가량이 영화 속 영화 <극장전>으로 채워진다. 이 영화가 어떤 식으로든 관객 동수의 이후 행동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영화 속 인물의 언행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할지도 모르고, 자신의 19살 때 기억이 살아나 평소와 조금 다른 행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망을 갖출지 아직 알기 힘들지만 홍 감독이 말하는 이 영화의 키워드는 ‘극장 안과 극장 밖’이다.

“어렸을 때 마초 영화를 보고 나면 길거리에서 담배를 인상쓰고 피면서 걷곤 했다. 그때 스스로가 약간 수치스러우면서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게 반복되면서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곱씹어보고 싶은 재료랄까. 영화를 본다는 게 아주 일상적인 것 아닌가.” 일상, 욕망, 우연. 홍 감독이 좋아하는 이 말들은 이번 영화에서도 유용할 것 같은데, 우울한 분위기의 전작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와 달리 홍 감독은 이번 영화가 ‘긍정적’일 것이라고 했다. “영화 속의 영화는 조금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인 만큼 내 영화의 비판적이고 비아냥거리는 느낌이 덜할 거다. 좀 더 밝고 시작과 끝이 분명한 영화다. 이 영화 자체도 그런 영화 속 영화와 봉합이 되니까 좀 더 긍정적일 것 같다.”

지난 17일 공개된 <극장전> 촬영 장면은 동수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최영실과 마주치게 되는 부분. <생활의 발견>에서 홍 감독과 많이 닮아 보인다는 말을 들었던, 동수 역의 김상경은 이번엔 아예 홍 감독이 오래도록 입고 다니던 낡은 푸른색 점퍼를 입고 출연했다. 뒤에서 보면 영락없는 홍상수다. 최영실 역의 엄지원 뒤로 김상경이 극장을 따라나오는 이 신은 줌인, 줌아웃 촬영을 했다. 홍 감독 영화에서 줌을 쓰는 건 이 영화가 처음이다. “줌이 감정을 증폭시키고 강조하고 그런 기능도 일부 있지만 대다수는 큰 화면에서 컷을 대신하는 기능이다. 써보니까 좋다. 시원하다 그럴까.”

김상경 “어렵지만 배울게 많다”
엄지원 “꺼리다가 만났는데 좋다”

촬영이 끝난 뒤 마련된 간담회 자리에서 김상경에게 물었다. 홍상수 영화에 출연하길 꺼리는 배우들이 적지 않은데 어떻게 두번씩 출연하게 됐냐고. “홍 감독 영화의 연기가 어렵다. 당일 대본을 그날 아침에 주니까 미리 준비할 수도 없고. <살인의 추억>보다 <생활의 발견>이 훨씬 어려웠다. 그래서 배울 게 많다.” 출연 계기를 묻는 질문에 대한 엄지원의 말. “홍 감독 영화만 봤지 실제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왠지 막연하게 홍 감독 만나면 그의 영화에 출연하게 될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안 돼, 만나지 말아야지. 왜냐면 여자를 예쁘게 찍지 않으니까. 누드신에서도 보기 싫게 찍고. 그래서 꺼리다가 만났는데 결국 예감대로 마음이 움직였다. 이 영화는 가장 즐겁게 찍고 있다. 일하면서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씨네와이즈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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