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더 악랄해진 적, 피가 끓지? <공공의 적 2>
2005-01-21
글 :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검사가 주인공으로 나온 한국 영화는 드물다. 안성기가 검사역으로, 하지원이 여고생으로 나온 <진실게임> 같은 영화가 있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또 검사의 수사가 영화의 중심 줄거리가 아니었다. <넘버 3>에서 최민식, <킬러들의 수다>에서 정진영이 검사를 연기했지만 주연은 아니었다. <공공의 적 2>는 검사를 이야기의 정 중앙에 앉힌다는 점에서 우선 눈에 띈다. 검사를 주인공으로, 그가 수사하는 사건의 피의자를 상대역으로 설정하고 그 피의자를 붙잡는 과정으로 드라마를 끌고간다.

다혈질 검사, 철면피 재력가 대결

그러나 검사라는 직업을 권력과 출세의 상징으로 여기는 시선이 아직도 남아있는 풍토에서 검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건 상업영화로서 위험한 선택이기도 하다. 검사보다는 서민적인 느낌의 경찰을 내세운 <공공의 적>은 경찰의 수사를 방해하는 부당한 권위의 상징으로 검사를 그리지 않았던가. <공공의 적 2>는 검사와 피의자의 대결을, 선악의 대결로 분명하게 위치지움으로써 그런 위험부담을 줄이는 전략을 선택한다.

정경유착 해부 상식 수준 머물러

이 영화에서 ‘공공의 적’, 즉 피의자 한상우(정준호)는 뇌물로 법이 금한 일을 자행하는 재력가에 더해, 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가족을 해치기까지 한다. 앞의 것만으로도 악한인데 거기에 반인륜사범까지 덧입혀 절대악의 화신으로 만든다. 이게 악인에 대한 관객의 분노를 끌어내 극에 몰두하게 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연출의 방점이 극적 갈등의 고조에 찍힌 탓에 우리 사회 정경유착의 메카니즘에 대한 이 영화의 해부는 상식적인 수준을 넘지 못한다.

검사 강철중(설경구)은, 전편의 경찰 강철중과 달리 구악의 면모가 없다. 경찰 강철중은 정의감이 있지만 잡범들 등쳐먹고 피의자의 뒷 돈도 챙겼다. 검사 강철중은 농담 잘하고 부하직원을 잘 챙기면서도 대책없는 다혈질이다. 그에게 인간적인 면모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편의 경찰 강철중보다는 캐릭터가 평면적이다. 검사 강철중의 캐릭터가 관객의 매력을 끄는 순간은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잡으려는 불굴의 의지와 정의감을 발휘할 때이다. 그러다보니 에피소드의 찰기가 전편에 못 미친다.

에피소드 떨어지나 현실감 넘쳐

경찰 이야기에서 검사 이야기로 올라선 <공공의 적 2>는 상대편인 ‘공공의 적’도 단순한 반인륜사범에서 정경유착 사범으로 업그레이드시켰지만 그 속을 채우는 디테일은 일부만 업그레이드시켰다. 검사가 수사를 진행시켜 가는 방식, 검찰 조직 내 상층부와의 마찰 같은 건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그러나 거기서 멈춘 채 전편과 같은 권선징악의 드라마를 만들어간다. 우리 사회의 ‘거악’들이 법망을 피해가며 스스로를 유지해가는 행태를 고발하겠다는 강우석 감독의 취지가 제대로 살아나지는 못한다. 여러 장단점에도 불구하고 강우석 식의 드라마 만들기는 이 영화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감정의 고저점을 확실히 찍고 감정선을 끌어야 할 때 충분히 끌어주는 그의 방식은 2시간26분의 상영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게 한다.

검사들이 본 ‘공공의 적 2’

“힘이 절로 난다”, “왜 낯이 뜨겁지”, “통쾌하긴 한데…”


<공공의 적 2>는 이례적으로 개봉 전에 검찰청사에서 두 차례 시사회를 가졌다. 1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대강당과 19일 서울중앙지검 대회의실에서 잇따라 열린 시사회에는 검사와 검찰청 일반직원, 그들의 가족까지 각각 500명 안팎의 인원이 좌석뿐 아니라 통로까지 가득 메운 채 영화를 관람했다.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검사의 활약상을 다룬 이야기라서 그런지 영화가 2시간 이상 돌아가는 데도 자리를 뜨는 이가 없었고, 서울중앙지검 청사와 청사주변 식당이 화면에 비칠 때는 자기들끼리 낄낄대며 웃기도 했다.

“검사들의 열정을 보여주려 애쓴 것 같아 고맙다. 힘이 절로 난다.”(서울중앙지검 강력부 검사) “검찰을 그린 영화 가운데 가장 사실적이다. 예전엔 영화속 검사실에 고급 응접세트와 샹들리에가 나오곤 했는데, 검사가 고증을 해서 그런지 주위 배경이나 법률용어, 수사과정이 전혀 어색하지 않더라.”(서울고검 검사) “아빠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여줄 겸 애들과 집사람 데리고 다시 봐야겠다.”(대검 검사)

사실관계를 따져야 하는 직업적 특성 때문인지 몇몇 디테일을 문제삼는 검사들도 없지 않았다. “검사가 형사들 ‘오야붕’은 아닌데.” “검사는 권총 같은 것 아예 없고, 요즘은 피의자 안 때리는데….” 한 공안검사는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강조하느라 우리 직업이 너무 단순화된 것 아니냐”는 진중한 촌평을 하다가 “뭐, 영화가 다큐멘터리는 아니니까”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영화 속 몇몇 대목이 불편했다는 반응도 나왔다. “수사 못하면 검사직 그만두겠다고 평검사, 부장검사, 지검장이 나란히 신분증 내놓고 검찰총장한테 전화하는 장면이 나오잖아? 난 왜 낯이 뜨거웠는지 모르겠어. 영화가 검사 신분증을 대단한 걸로 강조하는 것 같아서일까?” “큰 적이 무너지는 통쾌함은 있는데, 약점 없고 무뚝뚝한 사람한테는 정이 안 가잖아. 현실에서 검찰 이미지가 딱 그런 것 처럼.”

전체적인 반응을 놓고 볼 때, 적어도 <공공의 적 2>가 지금까지 검사가 등장한 한국 영화 가운데 검찰에게 가장 환영 받는 영화가 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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