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봐도 도무지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것이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들이다. 검은 화면으로 시작되는 <2001년 9월11일>은 엔딩의 하얀 화면을 보기 전까진 이 영화가 9·11 사태로 죽은 영혼들을 달래는 씻김굿이었음을 모른다. 3개의 중편을 실타래처럼 편집한 듯한 장편 데뷔작 <아모레스 페로스>나 <21그램>도 마찬가지다. 가정을 돌보지 않는 20대 가장 ‘옥타비오’의 형 ‘라미로’, 전처에 이어 새 여자도 정리하려는 40대 가장 ‘다니엘’, 오래전 버린 가족에게 전화메모를 어렵게 남기는 60대 킬러 ‘엘 치보’를 다룬 <아모레스 페로스>의 중심소재는 (작가 기예르모 아리아가에 의하면) 가장의 부재다. 이 소재는 <21그램>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된다.
다른 감독들은 <2001년 9월11일>에서 9·11 사태를 미국이 당연히 받아야 할 죗값으로 표현할 때 이냐리투만이 홀로 정치색을 배제한 채 죽은 영혼을 구원하는 주문을 불러주었다. BMW의 광고영화
<21그램>에는 부록이 전무한데, 이 점은 미국에서 출시된 DVD도 마찬가지다. <아모레스 페로스>의 경우 6분 분량의 피처릿과 뮤직비디오가 담겼는데 감독 코멘터리와 3개의 피처릿과 3개의 뮤직비디오, 3개의 삭제신이 담긴 미국판과는 거리가 있다. 감독은 핸드헬드 카메라와 줄곧 거친 그레인의 필름 질감을 선호해왔는데 <21그램>은 이러한 그레인이 필름 느낌에 가깝게 잘 담겼고 <아모레스 페로스>는 다소 낮은 채도로 담겼다. <21그램>은 DTS 사운드가 지원되나 뛰어난 채널분리도를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사운드면에선 자동차 추격신과 다양한 사운드트랙이 담긴 데뷔작이 더욱 들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