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지리멸렬 백지인생에도 봄날은 있다, 해외신작 <사이드웨이>
2005-01-24
글 : 김현정 (객원기자)

이제 내리막길만을 앞두고 있는 두 중년 남자가 여행을 떠난다. 나이 먹은 이들의 로드무비 <사이드웨이>는 포도밭과 와인시음장, 오래된 우정과 갑자기 찾아온 사랑의 향기를 품고 있는 영화다. LA와 뉴욕, 샌프란시스코, 보스턴비평가협회로부터 만장일치의 찬사를 얻은 이 작은 영화는 더이상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지리멸렬한 인생에서 와인 한잔 같은 여백의 순간을 찾아낸다.

<사이드웨이>는 렉스 피켓이 친구와 함께했던 와인시음 여행에 토대를 두고 쓴 소설이 원작이다. 와인애호가 마일즈(폴 지아매티)는 작가지망생이지만 지금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고단한 중년 남자다. 그는 대학친구 잭(토머스 헤이든 처치)의 결혼을 축하하는 뜻에서 산타네즈 농장으로 와인시음 여행을 계획한다. 무분별하게 살아온 잭은 실패한 배우. 와인에 중독된 마일즈와 여자에 중독된 잭 앞에 남자를 좋아하는 와인시음장 직원 스테파니(샌드라 오)와 마음 넓고 와인에 정통한 웨이트리스 마야(버지니아 매드슨)가 나타난다. 그 만남으로 인해, 결혼을 앞둔 잭은 흔들리고, 결혼에 실패한 마일즈는 용기를 얻는다.

<일렉션> <어바웃 슈미트>로 독특한 캐릭터를 다루는 솜씨를 보여주었던 감독 알렉산더 페인은 1960·70년대 영화가 가지고 있던 파스텔조를 되살리고 싶어했다. 그와 촬영감독 페든 파파마이클이 함께 본 영화들은 할 애시비와 장 뤽 고다르, 베르트랑 블리에의 영화들. 처음으로 고향 네브래스카주를 떠나 햇빛 가득한 산타네즈로 간 페인은 재고필름과 필터를 활용해 소박하고 사적인 느낌의 화면을 만들어냈다. “이 영화가 잭과 마일즈의 초상화인 동시에 와인 산지에 바치는 한장의 아름다운 러브레터가 되기를 바랐다”는 감독의 소망이 풍경화를 보는 듯한 <사이드웨이>의 근원. 스타는 아니지만 캐릭터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는 평을 얻은 네명의 배우들은 샌드라 오를 제외하고 모두 골든글로브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