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당신이 <쿵푸 허슬>을 보고 실망했다면 저우싱츠(주성치)의 열혈 팬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저우싱츠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세련되고, 우아하며, 진지하고, 무엇보다 어마어마하게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게다가 오맹달도 나오지 않는다. 이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우싱츠는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뻔뻔한 ‘구라’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무대는 1940년대 상하이. 난세를 틈타 악당들이 춘추전국을 이룰 때 도끼파가 암흑가를 장악한다. 도끼파의 ‘똘마니’인 싱(저우싱츠)와 물삼겹은 돼지촌에 찾아가 자릿세를 받으려 하는데, 단 한 가지 그들이 몰랐던 것은 이 동네에 강호의 고수들께서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도끼파는 악당 고수들을 차례로 초대하여 이들과 맞서고, 마침내 적수가 없어서 스스로 정신병원에 간 전설적인 고수 ‘야수’를 끌어내기까지 한다, 라고 거창하게 쓰긴 했지만 뭐, 이런 스포일러를 아나마나한 건 결국 저우싱츠가 절대고수라는 이야기이다. 당연하지!
우선 첫 10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시작하자마자 펼쳐 보이는 상해 스튜디오의 고색창연함과 1930년대 풍 빅 밴드 스윙 재즈, 여기에 더해서 MGM 뮤지컬 스타일의 집단 군무는 기선을 제압한다. 아아, 이 허장성세라니! 그런 다음에야 ‘루저’ 저우싱츠가 두 명의 무술감독 원화평, 홍금보와 함께 1970년대에 활동했던 홍콩영화의 거물 액션조연들을 이끌고 할리우드 콜럼비아 영화사의 자본으로 세운 야외 세트 돼지촌에 등장한다. 이야기는 간결하고, 넘쳐나는 에피소드는 정말 재미있다. 이를테면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 선율에 맞춰 만화처럼 전속력으로 질주하는 싱과 ‘사자후’ 아줌마의 추격전.
그럴 줄 알았다고? 그러나 저우싱츠는 그보다 훨씬 더 밀고 나간다. 그가 여기서 하려는 것은 홍콩 무술-액션 영화의 계보학이다. 악당들이 쳐들어오고 (쇼 브라더즈의 ‘폐쇄적’ 세트 전통) 그들과 맞서 싸우는 세 명의 고수, 발차기의 명인 십이로담퇴, 무쇠 주먹의 홍가철선권, 그리고 봉술의 달인 오랑팔괘곤이 보여주는 의협과 육체적 무술은 절대적으로 장철의 세계에 빚진 것이다. 그 앞에 나타나 그들을 차례로 처치하는 ‘심금을 울리는 가락’ 이인조 살인청부업자가 심야에 펼치는 음공권은 강시 선생의 변주이다. 그리고 그들을 무릎꿇게 만드는 태극권의 허허실실 기기묘묘의 액션은 성룡의 ‘취권’이 보여준 코믹 무술이다. 그러나 이 모두를 끝장내는 야수의 액션은 플로 모 기법을 동원한 (이미 <매트릭스>에서 넋을 잃으면서 본) 디지털 무술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을 보면서 홍콩영화는 거의 절망했을 것이다. 그에 맞서는 저우싱츠의 제스처는 물론(!) 브루스 리의 절권도 흉내이다.(흉내 맞다!) 그러나 저우싱츠도 쩔쩔 맨다.
이제 여래신장(如來神掌)이 등장할 차례이다. 저 전설의 무술 부처님 손바닥. 물론 이것은 호금전의 부처님의 손길(‘A touch of Zen’, <협녀>의 영어제목>)이다. 그 순간, 홍콩영화의 열렬한 팬인 나는 숭고한 감흥을 느꼈다. 저우싱츠는 홍콩영화에 위대한 오마주를 바친 셈이다. 또한 그것은 바닥에서 시작해서 (영화 속의 싱처럼) 누에가 고치에서 나와 나비가 되어 날아가듯이 환골탈태한 그 자신의 자수성가에 보내는 자화자찬이다. 이보다 더 뻔뻔하고, 진지하며, 심금을 울리는 (그 자신과 그 자신의 전통에 바치는) 숭배를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저우싱츠 팬들이여, 부디 그를 용서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