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낮 서울 삼청동의 작은 이탈리아 식당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조승우가 털어놓은 에피소드 하나. 〈말아톤〉 촬영현장 공개 때 그는 취재온 기자 한명에게 몹시 화를 내서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자폐아처럼 한번 포즈를 취해보라”는 주문을 받고 나서였다. 그는 자폐아에 대한 기본적 상식도, 예의도 없는 요구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이 에피소드는 〈말아톤〉 배우 조승우와 인간 조승우에 대한 두가지 실마리를 제공한다. 〈말아톤〉 시사회가 끝나고 그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자폐아 연기는 어떻게 하셨나요? 힘들지 않았나요?”다. 그는 “운동복 입고 뛰느라 겨울에 땀빼는 게 힘들었어요”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듣는 이로서는 조금 당황스런 대답이다. “배형진군(영화의 실제 모델)이나 다른 자폐아 친구들을 만나면서 자폐아는 ‘자개아’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꾸밈없는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과 만난다는 점에서 그래요. 달리 어떤 패턴이나 정의로 자폐아로 묶는 건 엄청난 오해라는 걸 깨달았죠.” 그는 ‘자개아’와 ‘(정신연령) 다섯살’이라는 열쇳말만 마음에 새긴 채 연기에 임했다고 한다.
“성장하면서 배우는 자기 검열이나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 내 안의 반응만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게 오히려 편했어요. 연기하면서 이만큼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은 것도 처음이에요.” 그는 촬영 중에 대본에 없던 비행기 소음이 난데없이 끼어들면 즉각적으로 “어, 비행기”라고 중얼거리며 모든 상황에 ‘초원’이로 행동했고 이러다 보니 반복해 찍은 장면 중 같은 대사가 하나도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전체 대사 가운데 반이 ‘본의 아닌’ 애드리브가 됐다. 덕분에 죽어난 건 동시녹음 기사였다고.
자폐아가 아니라 자개아 모든 상황에 초원이가 되어 세상과 만나러 달려왔다,,,,쉬고 싶다
〈하류인생〉 촬영을 마치고 난생처음 호된 몸살을 앓으면서 〈말아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그가 ‘찌릿한’ 느낌을 받았던 건 이처럼 초원이의 ‘솔직함’과 조승우의 기질이 맞아떨어진 부분도 있어 보인다. 그는 솔직하다. 배우가, 그것도 젊은 배우가 앞의 예처럼 기자의 (어떻게 보면 대단치도 않은) 요구에 응하지 않는 건 요즘 떠도는 ‘연예인 X파일’ 식으로 말하면 ‘철없는’, ‘뜨니까 싸가지가 없어진’ 따위의 감정적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그는 “거짓말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여느 젊은 배우와 달리 여자 친구(배우 강혜정)의 존재를 숨기지 않는 것도 그런 솔직함의 발로일 터이다.
“나름대로는 천천히 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까 쉬지 않고 달려온 것 같아요. 배우생활 하면서 처음으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보여줄 것도 별로 없는 사람인데.” 그는 정말 숨가쁘게 달려왔다. 〈하류인생〉을 끝내고 바로 시작했던 지난해 뮤지컬 〈지킬과 하이드〉로 받은 뜨거운 환호는 〈말아톤〉에서도 계속 이어질 듯하다. 마라톤으로 따지면 이제 처음으로 숨이 차오르는 지점에 도착한 조승우는 올봄 오랫동안 쉬어온 학교(단국대 연극영화과)를 복학하면서 가쁜 숨을 고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