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철없는 이모의 성장통, <레이징 헬렌>
2005-01-25
글 : 오정연
책임감 있는 엄마로 거듭나기 위한, 철없는 이모의 성장통.

당연한 말이지만, 부모 노릇은 쉽지 않다. 낳고 키우는 일련의 과정에 필요한 모든 경제적 대가를 차치하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는 터럭만큼의 미움도 받기 싫은 사람은, 자식 생각을 애당초 버리는 것이 좋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온 세상을 바쳐 사랑한 누군가로부터 온 마음을 다한 증오를 받을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모델 에이전시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커리어우먼 헬렌(케이트 허드슨)은 인기만점 이모. 그는 조카들에게 때맞춰서 입맛에 꼭 맞는 선물을 안겨주고, 엄마와는 나눌 수 없는 비밀 얘기까지 서슴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최고의 친구가 되어준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큰언니 부부는 세상을 떠나고, 헬렌은 큰언니의 유언에 따라 조카 세명의 양육을 맡게 된다. 완벽한 주부인 둘째언니 제니(조앤 쿠색)는 아직도 철부지 같기만한 헬렌이 그저 불안하기만 하고, 그 우려는 어느 정도 적중한다. 잦은 출장과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는 파티의 연속인 모델 에이전트의 나날은 세 아이의 양육과 양립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오드리를 비롯한 어린 세 조카와의 관계는 조금씩 삐걱대기 시작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했고, 세간에는 닥치면 하게 마련이라는 막 나가는(?) 믿음이 존재하지 않던가. 결정적인 순간에 조카들을 꾸짖지 못하고 제니와 옆집 여자에게 악역을 떠넘겼던 헬렌. 조카들을 위해 번듯한 직장과 아늑한 주거공간, 쿨한 스타일을 희생한 그는, 마지막으로 미움받는 엄마 역할까지 의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스스로도 성장을 경험한다. 누군가를 진짜로 책임져야 하는 ‘부모됨’이라는 사건, 그것은 그 주어와 목적어 양쪽 모두를 변화시키는 일종의 마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레이징 헬렌>은, 선량하고 유쾌한 가족영화로 이미 절반의 성공을 보장받은 영화다. 그러나 문제는 다소 길게 느껴지는 러닝타임 2시간이, 웃음과 감동을 함께 전(해야만)하는 각종 자잘한 설정들 덕분에 꽤나 산만하게 다가온다는 사실. 순진한 루터교 목사 댄 파커(존 코벳), 성격과 인생관의 차이로 인한 헬렌과의 해묵은 갈등을 끝내 터뜨리고 마는 외로운 주부 제니 등 속깊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던 캐릭터들 역시 서툴게 배치된 장식품처럼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너무 뻔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우려한 제작진의 노심초사가, 발랄한 유사가족 형성기를 뻔한 설교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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