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 영상물등급위원장 김수용
2005-01-27
글 : 김수경
사진 : 정진환
“한국영화가 잘되려면 표현의 자유밖에 없다”

헌법재판소의 두 차례의 위헌판결에 의해 공식 검열기관이던 공연윤리위원회(공륜)는 공연예술진흥협의회(공진협)를 거쳐 영상물등급위원회로 변화했다. 그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초대 수장으로 재임하면서 <죽어도 좋아> <킬 빌>의 심의파문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자리를 지켰던 김수용 전 위원장. 그가 신년 벽두에 게임 파트 심의위원의 비리를 근거로 전격 사표를 제출했다. 청와대의 사표 수리와 함께 “자연인으로 돌아온 지 딱 10일 된” 김수용 감독을 1월17일에 만났다. 그가 말하는 영등위, 영화심의 그리고 영원한 화두 ‘표현의 자유’.

-정확히 재임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5년7개월. 영등위와 집 사이 거리가 5분 정도라서 아낀 휘발유값을 모으면 차 한대 값은 될 것 같다. 그만둔 이유는 알다시피 게임쪽 사람이 구속기소되었다. 죄의 유무는 재판을 받아야 밝혀지겠지만 영등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이미 땅에 떨어졌다. 호사가들은 내 사퇴가 희생양이나 면죄부라고 비난하겠지만 한장의 사표로 영등위의 신뢰가 복구되거나 용서된다고는 추호도 생각지 않는다. 앞으로 영등위가 자기반성을 하면서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한다.

-1986년 <허튼소리>로 검열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됐다.

=13신이 잘렸다. 컷도 아니고. 그래서 영화감독 폐업선언하고 학교로 내려갔다. 공륜에서 검열하는 사람 중에 전문가가 없었다. 영화에 대한 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아예 없었다. 말 그대로 사회명사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 인민재판을 했던 시절이다.

-재임 동안 <죽어도 좋아> <킬 빌> 등이 파문을 일으켰는데 결정에 대한 후회는 없나.

=1기 3년 동안은 별 문제없이 했다. <죽어도 좋아> 신체의 특수부위가 나온 게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특수부위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처리하지 않는다. 당시에 많은 젊은 영화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받았다. 네가 하는 건 로맨스, 남이 하는 건 스캔들이냐고. 박진표 감독이랑 둘이 이야기를 했다. 더 강하고 표현이 리얼하게 갈 수 있는데 노골적인 장면을 어둡게라도 해서 가자. 결과로 보자면 영화는 참 냉정한 거다. <죽어도 좋아>가 화제가 되었지만 극장에서 냉정한 관객의 반응 때문에 그 영화는 지금 기억도 안 하잖아.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았거나 흥행이 잘되었다면 다르겠지만. <팻걸>과 <킬 빌>의 경우를 보자. 대체로 영화에서는 둘을 본다. 선정성과 폭력성. 유럽이나 미국보다 한국은 폭력에 관대하다. 그간 폭력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청소년보호위원회나 학부형쪽에서 폭력에 대해서 강력하게 주장한다. <킬 빌>은 폭력이 과하다 해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 반대로 <팻걸>은 지적이고 표현에 관해 능숙하게 찍힌 영화다. 그러한 요소들을 잘 고려한 거다. 요즘은 감독들이 등급에 대한 고려를 잘 알아서 해 영화를 찍는 것 같다.

-등급위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게 좀 모순인데. 조숙한 사람도 많은데 청보위, 학부형의 반발이 너무 컸다. 보는 연령층에 대한 고려. 영화등급은 전문가들보다는 객관적인 학부형, 청소년 전문가들이 하는 것도 일장일단이 있다. 영화만 예로 들자면, 단점으로는 영화에 9명이 배정되는데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1명밖에 없다. 영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으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사실 학부형을 좋게만 해석하기에는 너무 막연하지 않나? 어느 정도는 작품에 대해 감식안이 있는 사람이 심의에 관여하는 게 맞다.

-영화의 주관객층인 20대 초반이나 학생들의 심의 참여를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그 문제가 제기됐다. 영화를 수용하는 젊은 학생들의 생각이 중요하다. 그러나 등급을 판단하기에는 경험이 짧기 때문에 무리가 있지 않느냐. 젊은 학생들이 영화 자체는 이해를 잘 하겠지만 남에게 권할 만한 안목을 갖기에는 경험이 너무 일천하다.

-재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나는 폭력을 평생 싫어했다. 아직까지 이 나이가 되도록 남하고 한번도 안 싸웠고 심지어 <토지>를 찍을 때는 동학군 싸움장면을 조감독을 새로 고용할 정도였으니까. 그동안 제일 놀란 사건은 게임업자 한 사람이 내 앞에서 자해를 했다. 잭나이프로 배를 세번 긋고, 손을 찍고 그랬다. 자기가 내놓은 게임이 하자가 없는데 심의하는 사람들이 잘못 봤고 편견이 있다, 여기에 대한 것을 시정해주지 않으면 죽겠다, 라는 거였다. 그 순간에는 영화에서 늘 보던 건데 그러면서 태연히 있었다. 그래야 진정할 것 같아서. 그뒤 그는 자신의 몸에 시너를 뿌렸다. 잘 수습되었지만 그 사건의 이미지네이션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그 사람과 나중에 화해를 했고 지금은 나를 따르고 좋은 관계지만 사무실에 그 혈흔을 지우지 않고 남겨놓았다. 그런 기억은 쉬이 잊혀지지 않는다.

-등급위의 구성이나 미래에 관해 조언한다면.

=천사여, 고향을 돌아보지 말라는 격언도 있다. 하지만 제언을 아예 하지 않을 수 없겠지. 본심위원이 올해부터 9명으로 줄었다. 3기 때는 이런 등급위원들에 대한 추천과 검증이 철저했으면 좋겠다. 사회적으로 검증이 된 사람이 나와야 이번 사건 같은 실수가 없다. 대학교수, 변호사, 작가 등등 사회에 이름 석자를 걸고 활동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하늘의 별처럼 많은 시민단체들에서 자천타천에 의해 온 시민운동가 이런 사람들을 뽑는 건 곤란하다. 이번에 사고난 사람도 자천이다. 인적사항이 확실한 사람,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등급위원으로 선출되어야 한다. 소위원이 60∼80명 정도 된다. 박봉에 얼마 대우 못 받고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냥 누구 추천으로 여가 선용하러 오는 사람도 있다. 지금 영화 만들고 수입하거나 게임을 만들거나 전 재산을 투자해서 진검승부하는 이 판국에 여가 선용으로 심의해서야 되겠는가. 위원을 검증할 만한 시간과 능력이 있는 기구도 없다. 예술원은 원안을 통과만 시킨다. 보완이 필요하다.

-예전 부산영화제 회고전 인터뷰에서 다음에는 노출이 아주 심한 에로틱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다.

=웃으면서 이야기했지만 진심이 들어가 있었다. 창조는 사실 새로운 것은 없다. 있는 이야기를 자기 색깔로 만들어내는 거다. 같은 성애영화라도 내 색깔로 잘 만들 수 있는 거다. 남의 작품이지만. <죽어도 좋아>를 내가 만든다고 하면 기가 막히게 만들 자신이 있다. <안개> <야행> <화려한 외출> <웃음소리>도 만들었다. 자기검열이 없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기대되는 후배감독들을 꼽는다면.

=다른 사람도 다 훌륭하지만. 김기덕, 박찬욱, 강제규, 강우석, 이 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앞서 있다. 박찬욱, 김기덕은 상상력이 풍부하다. 그 사람들 영화에는 꿈이 있다. 무엇인가 현실이 아닌 인생이 희구하는 꿈 같은 것들이 굉장히 많이 담겨 있다. 두 강씨는 에너지, 영화가 이렇게 힘차게 꿈틀거릴 수 있는 건가. <실미도>나 <태극기 휘날리며>처럼 액션을 넘어선 감동으로 사람을 후려팰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60년대 한국영화 황금기 때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 현재의 중흥기를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60년대 한국영화가 질은 모르겠지만 양으로는 명실공히 황금기였다. 60년대는 영화의 절대적인 매력이 발산할 때였다. 배우들이 울고 웃는 인생들에 관객이 동조했다. 시골, 서울 격차없이 주목했다. 배우들이 감정을 잘 구사했지만 이야기와 연출력이 모자라서 60년대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곧이어 군부, TV의 등장, 검열이 발목을 잡는다. 70∼80년대 한국영화가 처참하게 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한 공륜의 원죄에서 비롯한다. 아주 혹독한 검열 아래에서 영화를 만들었으니 잘될 리가 없다. 한국영화가 앞으로도 잘되려면 표현의 자유밖에 없다. 앞으로는 등급위가 청소년 보호도 물론 해야 하지만 표현의 자유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보장되어야 한다.

-<그때 그 사람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한달 전쯤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에 대한 비디오가 제작됐다. 알고 있나? 그때 우리가 긴장하고 대응했다. 근데 내용이 완성도가 없다. 제목만 센세이셔널한 거였다. 노골적인 포르노그라피적 제목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장인에 대한 비디오는 세 번째 제목 개정을 해서 나갔다. 만든 사람은 좀 불만일지 모르지만. <그때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실과 너무 다른 것을 다루지 않는다면 왜 못 만들겠는가. 너무 자기 아버지다라고 경직돼서 볼 필요도 없는 거다. 엄연히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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