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박사되는 날, 기대하세요”, 분장 이경자
2005-01-27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오계옥

“(이)나영씨 얼굴은 깔끔하고요, 강수연씨는 화장을 안 한 게 더 예쁘고요, 심은하씨는 조금만 손을 대도 얼굴이 금방 화려해지고요, 그리고….”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은데, 이경자씨가 하니 귀가 저절로 열린다. 천하의 여배우도 그녀 앞에서는 맨 얼굴을 숨길 수가 없다. 고려시대로, 1980년대로, 중국으로 사방팔방의 시공으로 빠져들어가기 직전의 그녀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앞에서 맨 얼굴을 고백해야 한다. 적어도, ‘분장’을 안 할 마음이 아니라면 말이다.

잘 다니던 사무직 회사원을 그만두고 30살이 넘어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마음먹고 서울로 무작정 와서 화장과 미용을 먼저 배웠다. 그러다가, 우연히 선생님을 따라 영화 분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장길수 감독의 <걸어서 하늘까지> 때였다. 그뒤로 많은 작품들을 했고, <비트> 때부터는 싸이더스의 영화들을 주로 했다. <플란다스의 개> <유령>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이 있고, 그중에서도 김성수 감독과 여러 차례 했다. 이곳저곳 분장 강의도 하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지구를 지켜라!> <슈퍼스타 감사용> 등의 분장을 맡았다. 지난해에는 영화하면서 만나게 된 조명 스탭 이승구씨와 결혼도 했다. 무엇보다 “후배들을 위해서 자료를 정리해보자”는 큰맘을 먹고, <무사> 때의 현장 경험을 이론과 접목시켜 ‘영상코드로 작동하는 분장의 이데올로기적 함의-영화 <무사>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석사학위 논문으로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영화영상 전공)에서 석사학위도 받았다. 이래저래 영화는 그녀의 인생 전환점을 마련해준 터전이다.

일을 하다보면, 때때로 왜 저 사람은 예쁘게 해주고, 내 얼굴에는 검댕을 묻히냐고 울고불고 매달리는 여배우도 있다. 여배우만 그런 게 아니다. 남자 조연들은 빠듯한 자기 차례를 신경써서 아침 일찍 먼저 와 기다리기 일쑤고, “절대 남에게 싫은 소리 안 하는” 점잖은 대배우 안성기도 나지막한 목소리로 “저번이 더 좋았는데…” 하면서 신경 안 쓸 것 같지만 신경 많이 쓴다. 하지만, 이경자씨에게 “목욕탕에서 나와도 빨간 입술이고, 잠잘 때도 화장을 하고 자는” 그런 얼굴은 용납이 안 된다. 영화의 컨셉을 언제나 먼저 생각한다. 제일 힘든 건 배우하고 부딪칠 때지만, 그래서 원칙으로 삼는 것이 “첫 번째가 사람관계고, 기술적인 문제는 두 번째”라는 것이다. 이경자씨는 요즘 “분장을 좀더 분석하기 위해서 프로덕션디자인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미술 공부까지 하고 있다. <중천>이라는 다음 작품에 참여하는 것도 이미 결정되었다. 그리고는, 석사도 성에 안 차서 박사 과정까지 준비 중이다. “내일 면접 있다”고 말하면서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국내 최초 박사학위 소지자 분장 스탭이 탄생할 것을 예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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