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1월30일(일) 밤 11시50분
1970년대 한국 영화계는 침체기였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흑백이긴 하지만 안방극장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한국영화의 침체는 더 심각해졌다. 주말마다 TV에선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을 통해 인디언, 기병대, 총잡이들이 등장하는 서부영화들, 그리고 다양한 할리우드영화들을 방영했고, 그 재미가 쏠쏠했던 때라 딱히 볼 만한 영화도 없는 극장을 찾을 이유는 드물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한달에 한번 정도는 극장을 찾아 문화생활을 즐길(?) 기회는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매달 학교에서 정해준 영화를 정해진 날짜에 가서 보면 대폭 할인해주는 이른바 ‘문화영화’ 관람행사였고, 다른 하나는 정말로 보고 싶어 없는 용돈 쪼개 극장으로 달려가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었다. 후자의 대표적인 영화가 하이틴영화였다.
1970년대 한국 하이틴영화는 가물었던 당시 한국 영화계에 단비 같은 존재였고, 지금은 중견배우가 된 하이틴 스타들을 대거 배출했다. 이덕화, 임예진, 이승현, 김정훈, 강주희, 김보연 등으로 대표되는 스타들은 하이틴영화 연출 트리오였던 김응천, 석래명, 문여송 감독의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1975년 김응천 감독이 연출한 <여고졸업반>에서 주연을 맡은 임예진은 그해 대종상 신인장려상을 받으며 최고의 고교생 스타로 각광받았고, 1976년 문여송 감독은 <진짜진짜 잊지마>를 시작으로 이덕화-임예진 커플의 ‘진짜진짜… 시리즈’를 제작해간다. 또 1977년엔 석래명 연출의 <고교얄개>가 개봉하며 하이틴영화의 정점을 이룬다. <진짜진짜 잊지마>는 1970년대 성인관객에게 감동을 준 영화 <러브스토리>나 <라스트 콘서트>의 기본 설정- 불치병에 걸린 여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헌신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애틋하게 그려낸- 을 청소년세계로 가져와 당시 학생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았던 작품이다.
“빨리 어른이 되어 함께 결혼하고 싶다”는 이덕화-임예진의 갈구는 이성교제도 교칙위반 건이었던 거짓말 같은 시대를 살던 청소년들에게 시원한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을 전해주었다. 김보연의 데뷔작이기도 한 이 작품에선 검정 교복, 통학열차, 교련 검열, 소지품 검사, 체벌, 하이네의 시구 등등 잊혀진 70, 80년대의 시대적 아이콘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