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정이현의 해석남녀] <몽정기2> 의 오성은
2005-01-28
글 : 정이현 (소설가)
운명의 남자 기다리는 소녀 앞에는 ‘바바리맨’ 뿐. 이 얼마나 끔찍한 현실인가

소녀는 운명의 남자를 기다린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운명의 그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얼씨구, 아무래도 하이틴로맨스 소설을 너무 열심히 읽었나 보다. (하이틴로맨스 혹은 할리퀸로맨스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요약정리 해드리겠다. 어리고 착하고 예쁜 ‘처녀’ 여주인공이 멋지고 성격 나쁜 ‘바람둥이’ 남주인공을 만나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결국 운명적 상대임을 확인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그것은, 침실 장면을 적나라하되 뽀샤시하고 로맨틱하게 처리함으로써 현실에 지친 소녀들의 낭만적 사랑에의 욕구와 성적 환상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던, 10대 여성을 위한 성교육 교본이다. ‘운명적 상대’와 ‘침실 장면’과 ‘소녀들’에 밑줄 좍!)

혹자는 일찍이 이런 명언을 남겼다. “남자아이들은 포르노를 통해, 여자아이들은 로맨스 소설을 통해 성(性)의식을 내면화한다.” 그래서일까? <몽정기1>의 소년 동현과 <몽정기2>의 소녀 성은은, 서로 다른 별나라에서 온 인종들처럼 성에 대해 상이한 태도를 가진다. 교생선생과 ‘하룻밤’을 보낼 묘안을 짜내는 것이 이들 앞에 떨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것 말고는, 동현과 성은의 욕망은 닮은 데가 없다. 소년이 틈만 나면 ‘딱딱해지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온몸으로 꿈을 꾸었다면, 소녀는 남자의 ‘그것을 딱딱하게’ 만들어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애를 태우는 것이다.

<몽정기2>의 여주인공 오성은 양은 성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소녀다. 그런 성은이 밋밋한 가슴에 ‘뽕브라’를 하고, 샤워기와 오이를 도구 삼아 비장한 예행예습에 돌입하는 것은, 정말로 그것이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천진난만한 아이일 뿐이므로 성은은 제 몸이 욕망하는 쾌락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남자들이 여자의 어떤 모습에 섹시함을 느끼느냐고 또래 남학생에게 자문을 구하는 장면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소녀는, 자신이 남자의 성적 충동을 유발하는 바로 그 대상이 되기를 갈망한다. 신음 소리를 내고 치마를 걷어 올리면서 이 조그만 여자아이는 남성적 시선의 섹시한 피사체로 스스로를 내면화한다.

자, 이제 상황을 정리해보자. 초경도 시작하지 않은, 교복 입은 예쁜 소녀가 있다. 그 소녀가 심지어 자발적으로 치마를 걷어 올리기 위해 안달이다. 왜? 아저씨를 사랑하니까. 처음이니까 아프겠지만 사랑으로 꾹 참겠다는 이 아이는 대체 누구의 몽정으로 빚어낸 자동인형인가. 친절하게도 영화는 자상한 에피소드를 첨부하여 의문을 한방에 해결해준다. 그럼, 그렇지. 이토록 징글징글한 롤리타콤플렉스의 주체는 성기노출증 환자, 일명 ‘바바리 맨’ 이었다. 소녀는 운명의 남자를 기다린다. 그러나 출몰하는 것은 바바리 맨 뿐이다. 슬프고 끔찍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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