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가 번지 점프를 한다. 비명 하나 지르지 않고 몸 하나 움츠리지 않고. 하강? 아니다, 반동으로 높이 튀어 오른다. 이것은 그야말로 번지 발레. 줄에 매달려 공중곡예를 할 때 그녀의 피부를 훔친 검은 문신, 왼팔에 새겨진 테네시 윌리엄스의 시구 “새장에 갇힌, 거친 심장을 위한 기도”도 바흐의 선율을 탄다. 거대한 새장을 떠나 위험한 여정에 오를 여전사의 워밍업. 아주 드물게 실내에서 키워진 검은 독수리처럼, 그렇게 거칠고도 안전하게 저택 안을 날아다니는 이 여자가 <툼레이더>의 안젤리나 졸리다. 더이상 게이머가 조종할 수 없는 라라 크로프트. 앙코르와트에서 극지까지 누비는 라라를 조이스틱을 움켜쥐고 ‘플레이’하는 건, 이제 안젤리나 졸리 그녀 혼자다.
“그 여자 완전히 미쳤어요. 특권층의 삶을 살고 멋진 일들을 많이 하지만 제멋대로죠. 꼭 저 같다고나 할까요.” 어릴 적 꿈이 장례식 디렉터였을 만큼 죽음을 경외하고 종교적인 것, 신비로운 것을 좋아하는 그녀의 성향에 <툼레이더>는 꼭 맞아떨어지는 영화였다. 말라리아약을 복용하고 트레일러에서 모기를 피하면서도, 앙코르와트는 야생의 기질이 농후한 이 배우에게 처음 발견한 놀이터와도 같았다. 그러나 <툼레이더>가 오래 전부터 갖고 싶던 ‘게임’은 아니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졸리의 첫 번째 남편 조니 리 밀러가 곁에 있는 졸리를 나 몰라라 하고 빠져 들던 게임이 <툼레이더>였던 것이다. 하지만 라라에게 죽은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는 신비의 트라이앵글처럼, 아버지 존 보이트가 크로프트 경을 연기하는 이 영화는 그녀에겐 물리칠 수 없는 인연 같은 작품이었다. 한살 때 자신을 떠났던, 그러나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는 아버지. <본 콜렉터>에서 경찰이었던 아버지를 둔 여경찰을 연기했듯, <툼레이더>에서 그녀는 작고한 고고학자 아버지의 메시지를 실행에 옮기는 딸이 되어, 또 한번 ‘부녀’ 코드를 엮는다.
“강해라, 대담해라, 자유로워라.” 졸리를 홀로 키운 어머니 메르첼린 베르트랑의 ‘주문’은 소녀 안젤리나에게 정신적 문신으로 새겨졌다. 7살 때 아버지가 주연한 영화 <루킹 투 겟 아웃>의 단역으로 데뷔한 이후, 졸리는 어머니의 주문대로 늘 강하고 대담하고 자유로운 모습을 스크린에 남겨왔다.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소녀들의 정신병동을 해방구로 만들던 매력적인 ‘짱’ 리사, 침착하게 살인현장을 맨 처음 탐사하던 <본 콜렉터>의 여경찰. 졸리의 이미지는 언제나 원초적인 감정에 잇닿아 있는 그 무엇이었다. 거기엔 그녀의 유별난 사춘기도 한몫했다. 열네살 때, 졸리는 ‘대담하고도 자유롭게’ 남자친구와 한방에서 살던 사춘기 소녀였다. 남자친구와 “부부처럼” 함께 살며 “다행히 공원에서 나뒹굴지 않”아도 되었던 사춘기 소녀 안젤리나. 그녀는 이제 두 번째 남편 빌리 밥 손튼의 피를 작은 물병에 담아 목에 걸고 다니는 스물여섯 여자로, 또 할리우드의 가장 인상적인 여배우로 이십대의 한복판을 살고 있다.
스스로 “아무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그녀의 묘한 눈빛. 그 속엔 에이즈로 죽은 모델 ‘지아’의 혼돈이 있고(<지아>), 클레이무어 정신병동의 반항이 있고(<처음 만나는 자유>), 노련한 관제사조차 통제할 수 없는 본능적 매혹과 눈물이(<에어 컨트롤>), 또 <식스티 세컨즈>의 스릴이 있다. 거기에, 이제 앙코르와트 빛의 트라이앵글이 더해졌다. 검은 가죽이 잘 어울리는 거친 심장의 두툼한 입술. 그 입술을 건드리고 싶은 몸달은 게이머들을 위해 졸리는 앞으로도 많은 스테이지를 준비하고 있다. 8월,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연기한 그녀의 다음 영화 <오리지널 신>이 미국 극장에 걸린다.
칼 | 난 열두살 무렵부터 칼을 좋아했죠. 무기는 힘과 영예의 상징일뿐더러 아주 종교적이고 영적이에요. 저는 칼을 돌리거나 던지면서 갖고 노는 것도 좋아하죠. 폭력적인 것은, 제 섹슈얼리티이기도 해요.
문신 | 문신은, 내가 누구인가를 말하는 진술과 같아요. 내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표현하는 거죠. 사람들이 싫어해서 지운 ‘죽음’이란 문신이 있었는데, 예컨대 그건 누구나 내일이면 죽고, 그래서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예요.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끔찍한 것, 무서운 것으로 여기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