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칼럼]
KBS 월화드라마 <쾌걸 춘향> 은 만화?
2005-01-28
글 : 김진철 (한겨레 기자)
만화적 구성 10대들에 인기

“꼭 만화 같다.” 드라마 <쾌걸 춘향>을 본 이들의 첫 반응이다. ‘재미있다’거나 ‘유치하다’는 뜻일 터다.

여러 차례 영화·소설·드라마 따위로 리메이크된 고전 <춘향전>에 ‘쾌걸’이 붙자 재치있고 경쾌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원전의 기본 축인 멜로에 코믹과 무협이 뒤섞이니 ‘엽기발랄’한 10대 취향한테 딱 들어맞는다. 지난 3일 가구시청률(티엔에스미디어코리아) 14.4%(닐슨미디어리서치는 13.4%)로 시작해 25일치 8회에서 25.9%(닐슨미디어리서치 26.7%)까지 급상승했다. 가수 이효리의 출연으로 눈길을 끈 <세잎 클로버>나 이명박 서울시장을 ‘영웅’으로 둔갑시킨 <영웅시대>는 ‘춘향이 치맛바람’에 지리멸렬한 지경이다.

감각적 이미지에 랩·록 버무려
청소년 성 묘사는 조심스러워야

시청층을 나이별로 보면, 역시 10대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티엔에스 조사로는 10대 남성과 여성이 각각 10.2%와 17%를 차지했고, 닐슨에서도 9.3%와 17.5%로 높게 조사됐다. 대개 드라마의 주소비층이 40대 이상 여성인 것에 견주면 놀라운 수치다. 겨울방학이라는 시기적 요인이 큰 까닭이지만, 가히 ‘인터넷과 휴대전화’에 몰두한 10대를 티브이 앞으로 불러왔다는 탄성을 들을 만하다. 반면, 50세 이상 여성들이 가장 덜 보는 것으로 나왔다. 10대에게 재미있는 것이 50대에겐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쾌걸 춘향>의 무엇이 10대의 눈을 끌었을까? 우선은 캐릭터다. 밤무대 가수의 딸로 생활력 강하고 머리도 좋고 예쁘기까지 한 성춘향(한채영)은 이른바 ‘얼짱·몸짱·공부짱’이다. 경찰서장의 아들인 이몽룡(재희)은 문제아로 나오고, 변학도(엄태웅)는 세련된 겉모습에, 돈과 능력을 갖추고 사랑까지 할 줄 아는 연예기획사 사장이다. 캐릭터 자체가 만화적일 뿐더러, 선과 악의 고전적인 이분법이 사라진 자리에 화려하고 감각적인 이미지가 부각됐다. 배우들은 만화 주인공들마냥 과장된 연기를 하고, 대사 또한 요즘 10대가 즐겨쓰는 속어나 은어를 적극 반영했다. 음악도 랩과 록 등 10대 취향으로 버무렸다. 화면 구성도 만화와 흡사하다. 톡톡 끊어지는 컷과 다양하게 사용되는 이모티콘, 강한 원색의 옷 따위에 티브이 화면이 만화의 네모칸처럼 보인다.

<쾌걸 춘향>은 만화가 지난 몇몇 문제점을 함께 가지고 있다. 먼저 ‘성과 결혼’ 묘사 부분이다. 두 고등학생이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계약결혼을 하는 것이나, 양가 부모가 동침을 유도하고 속옷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부분 등은 다소 조심스러운 연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남녀 차이가 은연 중 부각되는 것도 지적된다. 몽룡과 학도의 대결은 뭔가 비장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이뤄지며 선악의 구분이 따로 있지 않지만, 춘향과 채린의 대립은 치졸하고 비열한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지금껏 흔히 보아온 선악 이분법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해 진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물에 있어서도 ‘신데렐라와 재벌’만 나오지 않았을 뿐, 집안이나 능력 따위에서 잘 난 두 남성과 ‘외강내유’의 한 여성, 모두 갖춘 악녀라는 4각 구도는 어디서든 흔히 보아온 짜임새다.

재미는 없고 교훈만 가득한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 주류를 이룬 터라 <쾌걸 춘향>의 등장이 10대들을 열광케 하고 있지만, 이미지 중심의 자극적인 감성이 아닌 각양각색의 다양한 정서와 상상력이 아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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