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에 우디 앨런은 ‘상황’ 코미디를 많이 사용했다. 어설픈 갱단으로 분한 그가 비누로 깎은 권총을 들이밀고 협박할 때는 비가 내려 총이 거품이 됐고(<돈을 갖고 튀어라>), 하얀 쫄쫄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쓰고는 자신이 이제 막 바깥으로 튀어나갈 정자라고 우겨대기도 했다(<당신이 섹스에 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그러나 차마 묻지 못했던 것들)>). 그러다가 그의 영화에서 뉴욕의 삶이 철학과 예술을 양옆에 끼고 등장한 것은 ‘말’이 영화의 중심적 양식을 차지한 시기와 일치한다.
특히, 우디 앨런은 뉴욕의 일상을 다룰 때 대화의 영화, 말의 영화를 고집한다. 스스로를 비롯하여 인물들은 많은 말을 한다. 레스토랑이 등장할 때 그곳은 메뉴가 중요한 곳이 아니라 잡담과 수다의 화제가 중요한 곳이다. 맨해튼의 거리와 센트럴 공원의 벤치가 존재하는 이유는 설전과 논쟁과 설교의 장소가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가 주로 벌이는 정신상담은 말로서 문제 해결을 보려는 최후책이지만, 머리맡에 앉아 초침을 바라보며 ‘시간 다 됐습니다’를 연발하는 상담의를 보여주는 것은 그 말들이 어쩌면 상습의 일환이라는 고백이기도 하다. 그러고도 모자라 흘러나오는 독백은 대화들 속에서 미처 주장하지 못한, 또는 차마 상대방에게 하지 못한 나머지 대화를 표현하는 양식이다. 인물들은 독백조차도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며 관객에게 한다. <애니씽 엘스>도 그렇다. 내면화하는 것 없이 모든 심리적 요소를 말로 끌어내 외면화한다.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는 침대에서의 섹스도 거리에서의 담화 대상이며, 사람의 변심도 말꼬리의 변주로서 눈치챌 수 있는 것이다. 숨겨진 심리에서가 아니라 까발려진 말들에서 코미디가 발생한다. 때때로, 코미디가 먼저가 아니라, 말이 먼저인 것이다. 그 말들이 웃긴 것은 대체로 궤변이기 때문이고, 억견이기 때문인데, 뒤집어 생각하면 심각한 진실일 때가 많다. <애니씽 엘스>는 이 두 가지 말의 양면을 모두 보여주는 코미디영화이다.
제리(제이슨 빅스)는 상승길에 접어든 코미디 감독이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 아만다(크리스티나 리치)가 있다. 그런데 제리와 그녀 사이에는 문제가 많다. 그녀의 철없는 어머니가 집으로 쳐들어와 동거를 시작하는 것은 참아줄 만하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아내가 6개월째 그와의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은 견디기 힘든 괴로움이다. 그 즈음 제리는 우연히 알게 된 괴짜 코미디 작가 도벨(우디 앨런)과 친해지고, 집에까지 초대한다. 그런데 제리의 아내를 본 도벨은 그녀가 바람을 피운다고 단정한다. 그것은 곧 사실로 밝혀진다. 제리는 낙심하지만, 아내는 당당하게 말한다. 사랑하는데 왜 섹스가 안 되는지 걱정이었고, 그래서 불감증인지 알아보기 위해 다른 남자와 잠을 잤고, 너무 좋아서 손톱으로 벽까지 긁었으니 불감증은 아닌 것 같다고. 다른 남자와 여행을 갔다 와서도, 섹스는 했지만 그 순간 생각한 건 당신이었으니 정말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 아니겠냐고. <애니씽 엘스>에서 문제를 어지럽혀 웃음을 유발하는 것은 그녀 말의 억견이다. 그러나, 문제를 정리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도벨의 억견이 담긴 말들이다. 유대인은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총을 가져야 한다에서 시작하여 온갖 조언에 이르기까지 수상한 점이 많지만, 끝내 제리의 결단력을 추진시키는 것은 ‘사이코’ 도벨의 ‘가르침’ 덕택이다.
우디 앨런이 유대인인 자신을 유머의 소재로 삼은 것은 오래되고 흔한 일이다. 이제 <애니씽 엘스>에서는 젊은 주인공까지도 유대인으로 등장시킨다. 게다가 두 사람 모두 코미디 작가로 설정한다. 자신이 늙은 코미디 작가를 하고, 제이슨 빅스를 젊은 코미디 작가로 설정한 것은 종전에 자신이 했던 역할을 제이슨 빅스에게 투영하려 한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함으로써 질문과 대답의 방식이 바뀐다는 것이다. 문장화하자면 이런 것인데,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지?’, ‘도대체 일이 왜 이렇게 돼가는 거야?’. 우디 앨런은 영화 속 인물들(특히 뉴욕 거주자들)을 통해 항상 이렇게 물어왔다. 수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난 다음, 어렵게 답을 찾고는 다시 다음 영화에서 같은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애니씽 엘스>에서 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우디 앨런이 아니라 제이슨 빅스이다. <애니씽 엘스>의 주인공은 제이슨 빅스지만, 이 영화의 문제에 대답하는 사람은 우디 앨런이다. 대신 우디 앨런은 어떻게든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대답을 해주는 사람의 위치를 맡는다. 우디 앨런은 젊고, 늙은 유대인 코미디 작가의 대화를 통해 코미디의 ‘토라’(Torah)를 쓰듯이 <애니씽 엘스>를 만들었다.
슬랩스틱부터 삶에 대한 성찰 담은 코미디까지
우디 앨런의 코미디영화들
우디 앨런의 영화에 대해 투박한 몇개의 범주화를 시도할 수가 있다. 우선 그의 초창기 영화들은 철학과는 거리가 먼 편이었고, 상황 발생적인 코미디들이 많았고, 풍자적인 성격이 강했고, 슬랩스틱의 전통을 이어가려는 시도들도 있었다. 우디 앨런이 허약한 갱으로 출연했던 <돈을 갖고 튀어라>는 영화보다 코미디 작가로 먼저 성공했던 그의 일면을 확인시키는 데뷔작이다. 뒤이어 만들어진 <바나나>는 풍자코미디고, <당신이 섹스에 관해 알고 싶었던 모든 것(그러나 차마 묻지 못했던 것들)>은 성에 관한 단막식 실험극이다. 우스꽝스런 인물을 통한 가상 시대극은 우디 앨런의 또 다른 장기이기도 하다.
<사랑과 죽음>은 19세기 러시아를 배경으로 나폴레옹 암살 작전이 펼쳐지는 영화이고, 우디 앨런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젤리그>는 젤리그라는 가상 인물의 가짜 다큐멘터리 역사극이다. 한편으로는 영화에 관한 자기 반영적인 영화들도 많다. 우디 앨런이 영화 속 영화감독을 맡아,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의 장면을 흉내내면서 시작하는 <스타더스트 메모리>가 그 대표작이지만, 영화 속 영화배우와 사랑에 빠지는 여자를 주인공으로 한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영화사적으로도 몇 안 되는 유쾌한 자기반영적 영화에 속한다.
우디 앨런은 그가 좋아한 영화작가 잉마르 베리만의 영향 아래서 영화를 완성하기도 했다. 베리만과 작업을 같이한 스벤 닉비스트가 촬영을 맡았던 <또다른 여인>이 있고, 베리만의 존재론적인 주제관과 좀더 잘 이어져 있는 <범죄와 비행>이 있다. 90년대를 넘어서서 우디 앨런이 새롭게 시도한 것 중에는 뮤지컬영화가 있다.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가 대표적이다. 무엇보다도, 우디 앨런의 영화는 곧 대도시 뉴욕의 정조와 등치되어 이야기된다. 그의 영화 상당수가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그중에서도 뉴요커들의 일상을 다룬 첫 번째 영화는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큰 호평을 받았던 <애니홀>이다. <애니홀>에서 우디 앨런은 다이앤 키튼과 함께 앞으로 그의 영화 속에서 만들어질 뉴요커들의 전형을 담아낸다. 흑백 시네마스코프로 찍어낸 <맨하탄>에서는 나이 차 많은 연하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첫 번째 사례를 만들고, <한나와 그 자매들>에서는 세 자매와 남자들의 복잡한 관계가 중심이 되고, 이혼과 이별에 대한 성찰이 담긴 <부부일기> 등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틴 스코시즈,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함께 만든 옴니버스영화 <뉴욕 스토리>도 있다. 이렇게 보면, 우디 앨런의 코미디영화도 꽤 여러 가지 범주가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