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법원의 부분 상영금지 결정에 영화계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영화인회의(이사장 이춘연)는 31일 오후 성명서를 발표하고 “법원의 이번 결정은 상상과 허구가 본질인 예술 창작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천박한 편견이자 지극히 정치적인 판단”이라며 “영화 상영 전에 영화의 일부를 문제삼아 상영을 제한하는 것은 어떤 논리와 명분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시대착오적이고 반문화적인 만행”이라고 규탄했다. 젊은 영화감독 모임인 디렉터스 컷(대표 이현승)도 “<그때 그 사람들>의 상영 금지 결정은 명백한 사전검열이며, 창작물의 일부분에 대해 가위질을 요구하는 것은 스스로 창작자와 관객을 대신하고자 하는 오만한 결정”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감독들의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정책위원장인 오기민 마술피리 대표는 이번 결정이 “명백한 검열이고 터무니없는 정치적 재단”이라며 “여론에 공개되기도 전에 사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은 전반적으로 예술 창작행위를 위축시키는 것이고 앞으로 창작자들이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입 다물라는 명령에 다름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평론가협회 회장인 주진숙 중앙대 교수는 “법원에서 지적한 특정 부분을 삭제함으로써 현실과 영화적 허구를 나눌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며 이처럼 현실과 영화를 뭉뚱그려 사고하게 되면 영화적 상상력이나 역사의 재해석의 가능성은 들어설 틈이 없어지고 만다”고 말했다. 박찬욱 감독은 “임상수 감독은 전작들을 통해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받아온 감독이기 때문에 <그때 그 사람들>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관객이 기다려온 영화인데 이런 판결이 나면 파장이 클 수밖에 없고 결국 한국은 표현의 자유가 없는 나라로 국제적인 낙인이 찍힐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임상수 감독 “정치적 판결”, ‘삭제뒤 개봉’ 동의못해
31일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 소식을 들은 임상수 감독은 “긴 시간을 들여서라도 영화의 훼손 없는 온전한 상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결정을 접한 소감은.
=개봉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면서 영화가 훼손당하는 사태를 맞은 것인데 나는 감독으로서 완벽한 피해자이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누가 이 결정으로 이득을 보느냐는 것이다. 과연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나 박지만씨가 이 결정으로 이득을 볼까. 그들에겐 한 영화를 훼손시켰다는 불명예가 따라다닐 텐데, 그게 과연 이득이 되는가. 손해본 사람은 많은데 이득 본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한국의 관객들일 것이다.
-다큐멘타리 부분을 문제삼은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번 판결은 명백하게 정치적인 판결로 본다. 결정 취지가 아마도 논픽션과 픽션을 섞어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모든 다큐멘타리는 진실이고 모든 픽션은 허구라는, 말이 안 되는 논리가 깔려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영화가 다큐멘타리를 삽입하고 있는데, 그 맥락은 천차만별이다. 다큐멘타리는 사실이라고 믿는 관념이야말로 예술에 대해 무지한 것 아닌가.
-어떤 대응을 하려고 하는가.
=다큐멘타리 부분을 삭제하고 개봉하겠다는 제작사의 방침에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힘들다.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영화는 개봉 시점에만 보는 게 아니고 역사적으로 남는 것이니까 긴 시간을 들여서라도 이 영화를 온전하게 복원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