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사람의 성격을 간편히 재단할 수 있는 기준이 많다. 성별, 띠, 별자리, 혈액형 등등. 이런 기준에 근거해 내려진 결론은 가끔씩 나도 모를 나란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적어도 재미 삼아 궁금할 때가 있다. 그중에서도 혈액형은 요즘 들어 유행처럼 불거진 기준이자 편견이다. 이 편견이 집중사격하는 혈액형은 B형, 그것도 남자의 B형이다. B형 남자는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이고 언변이 좋은데 변덕쟁이, 심술쟁이, 구두쇠, 자기중심적이란다. 여자들한테 가장 인기없는 남자 혈액형, 남자들도 가장 친구하고 싶지 않은 혈액형이다.
<B형 남자친구>는 이 편견을 기본 설정으로 끌어온 로맨틱코미디다. 젊은 벤처사업가 영빈(이동건)은 B형 남자. 그와 연애하게 될 하미(한지혜)는 A형 여자다. 하미는 배려심과 인내심이 깊지만 소심해서 자기 표현이 좀 약하다. 둘은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맞부닥친 인연으로 연애를 시작한다. 그런데 난관이 많다. 일단 혈액형-성격의 상관관계를 절대 신봉하는 재혼상담가 채영(신이)이 사촌동생 하미에게 B형 남자의 위험성을 끊임없이 경고한다. 말마따나 영빈의 제멋대로인 성격은 하미를 매번 곤혹스럽게 만든다(물론 감동적일 때도 있다). 내외적으로 말썽을 반복하던 둘의 관계는 영빈의 벤처사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게 되자 의외의 위기를 맞는다.
영화는 B형 남자와 A형 여자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아주 많은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B형은 모든 게 비정상이야”, “답답한 A형!” 같은 직접적인 대사들도 동원된다. 그러므로 사촌언니 채영이 소개받는 남자마저 B형인 건 이 영화에서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 기나긴 혈액형 강의는 캐릭터들의 매력을 쌓는 일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영빈과 하미는, B형과 A형의 성격으로 얘기되는 특성을 몇 개만 가졌다. 보여주는 표정도, 대응하는 방식도 한정돼 있다. 대상을 설명하기 위한 유형화는 종종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다지만, 이 영화는 유형화부터 부실해서 혈액형을 믿는 사람들도 동의하기 어려울 것 같다. 동의 가능한 건, 배우 신이의 경상도 사투리가 아직도 재미있을 때는 정말 재미있다는 점이다.
당연하겠지만, 영빈과 하미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사랑의 시작은 우연으로 만들고, 사랑의 결과는 진심으로 매듭지었다. 이 러브스토리에 혈액형이 끼친 영향이 있다면 ‘B형 남자는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무리하게 창조된 위기 상황이다. 지루한 끝에 도달한 클라이맥스가 당혹스럽다. 간혹 특이한 상상력을 보여줄 줄 아는 감독의 재주도 효과적인 압축과 재치있는 짜임을 모르는 연출에 가려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