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두 남자의 대단한 도전, <공공의 적2>의 설경구+정준호
2005-02-03
글 : 이종도
글 : 김수경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공공의 적2>의 주인공은 공공의 적일까, 공공의 적을 잡는 검사일까. <역도산>을 홍보할 때부터 담배를 끊었다는 설경구의 얼굴은 해사해 보였고, 데뷔 이후 최고의 연기를 보였다는 정준호는 내내 얼굴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강우석 감독의 뚝심이 두드러지는 <공공의 적2>의 두 배우는 <공공의 적>이 아니라 <공공의 복(福)> 주연배우처럼 보였다.

전편의 공공의 적이 패륜아였다면 이번의 공공의 적은 사학비리와 정경유착으로 범죄 목록과 범위에서 훨씬 더 세고 크다. 범인을 잡는 강철중의 위력도 더 커졌다. 대한민국 검사다. 두 사람의 기싸움은 과연 누구의 승리로 끝날까. 워커힐호텔에서 찍은 결투신을 회상하며 두 사람은 잠시 영화 속에 빠져들었다. “코를 세게 맞아서 부러졌어요. 영화 보다보면 나중에 인중이 뭉개졌잖아요”라며 설경구가 아픈 표정을 짓는다. 몸이 정말 둔해서 액션신은 ‘깡’으로 찍는다며, 잔디밭에 미끄러져 인대 늘어진 사연도 들려준다. 정준호가 액션신이 배우의 생명에 위협이 갈 정도로 위험했다며 “코를 다치면 생명이 끝나잖아요”라고 너스레를 떨자 설경구는 “당신은 생명이지만 난 변신이야”라며 주위를 웃겼다. 시장에서 사온 순대와 김밥을 나누며 두 사람은 강우석 감독과의 영화현장 추억을 되새겼고, 겨울 해는 일찍 떨어졌다.



악바리 배우, 정의파 검사 되다


지고는 못 살고, 마음먹은 대로 하지 못하면 억울해하는 악바리라면 일면 칭찬이고 일면 욕이다. 그러나 칭찬이고 욕이고를 떠나 처음부터 순정의 마음으로 악바리 근성을 보이면 그 근처로는 사람의 기가 모이게 마련이다. 그런 근성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데가 있다. 설경구가 그렇다. 그저 무뚝뚝하겠지 싶은 이 사내에게서 “<역도산>에서 생각만큼 안 들어온 관객 때문에 분하고 억울하고 위로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공공의 적2>에서 “대사가 너무 도덕적이라 부담스러웠다”는 말을 들었다. 잔꾀 부리지 않고 묵묵하게 나아갈 것 같은 사람의 영화라면 믿고 싶어진다. 담배를 끊고 나서 일부러 집에 시험용으로 담배 세 보루를 갖다놓는 ‘변태’적 상상력(“이래도 안 피워? 이래도?”)이 더해지면 점점 더 알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역도산> 연기를 하며 39인치까지 늘어났던 바지 치수가 34인치까지 줄었다. 몸도 가벼워지고 니코틴의 해독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 덕인지 설경구의 표정은 지상에서 2cm 정도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공공의 적2>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표정이 2cm 정도 가라앉는다. “이번 건 버거웠어. 가장 버거웠어. 1편은 놀면서 찍었고 안하무인이었는데, 이번엔 도덕적인 대사를 해야 한다는 게….”

늘 하듯이, 대사를 외운 뒤에도 막상 현장에선 대사보다는 분위기 속에 녹아들어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공공의 적2> 대사는 외환관리법 위반 같은, 평생 한번도 발음해보지 않은 낯선 말들로 가득했고 입에 잘 붙지도 않았다. 놀 수 있는 여백도 없었다. “<역도산> 일본어 대사는 아직 다 외우고 있는데 <공공의 적 2> 대사는 아직도 못 외워요.” 예전 스타일로 촬영 초반부에 들어갔다가 진이 다 빠지고 말았다. “된통당한 거지. 처음으로 달달 외웠네.”

대사만이 적이 아니었다. 적은 도처에 있었고, 사방에서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1편의 느슨하고 헐렁한 사내 강철중 형사의 잔상이 눈에 밟혔다. “‘쌈마이’적인 시시껄렁한 게 나오려고 해. 말꼬리도 ‘그랬거덩’ 이렇게 끝나고. 다른 영화인데, 이름만 같고 다른 인물인데.”

검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안에서 일이 많고’, 형사처럼 바깥으로 출동을 하지 않는 데서 오는 평면적인 답답한 느낌도 꾹 눌러야 했다. 검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슬쩍 “형, 검사라는 직업 재미없네” 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1편이었으면 나이트클럽 장면 같으면 벌써 난리나는 거였지. 검사는 자기를 노출 안 시키지. 강철중도 자길 잘 안 보여주지.”

그러나 스스로에게 모진 이 사내에게 이런 위기는 오히려 연기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자기의 타고난 운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점을 보러갔더니 점쟁이가 낄낄거리며 웃더라고 한다. 운을 타고났다고.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있으나마나 한 아이였던 내가 이렇게 연기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에게도 힘든 게 있는데 이번 검사처럼 반듯한 캐릭터다. 어딘지 모르게 거칠고 양아치 같은 배역을 주로 하다가, 이런 고학력(“어유, 배웠는데, 고시 패스했는데”) 캐릭터를 맡자니 힘들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들어하는 것에 대해 감독이 걱정하니 더 미안하고 힘들었다. 그는 앞으로 <공공의 적> 시리즈를 다시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제 자신이 방해가 될 것 같다는 게, ‘난 적이 더 어울린다’는 게 이유다. 참 외고집이고 제멋대로이고 그래서 더 마음이 간다. “내가 ‘삐리’해서 적을 잡는 건 모르겠는데, 이번처럼 내가 너무 닭살스러운 건 싫어. 거칠고 꼬여 있는 게 좋아.” 아마 이 배우의 이런 ‘변태’ 같은 마음에 정 준 사람 여럿일 터이다.



사람좋은 배우, 독한 맘을 먹다


새로운 구질을 익히는 투수라면 공의 그립을 손가락 하나하나가 꼼꼼히 기억하도록 절대 손에서 공을 놓지 않는 일은 기본이다. 심지어 잠들 때라도. <공공의 적2>에서 전격적으로 악역 한상우를 맡은 정준호는 마치 그들처럼 시나리오를 두달 내내 몸의 일부처럼 손에 쥐고 다녔다. 촬영 막바지에는 대본이 너덜너덜해질 정도였다. 강우석 감독의 “대본을 1천번은 읽었을 것”이라는 증언이나 현장에서 다른 배우가 까먹은 대사와 설정을 기억해냈던 에피소드는 그 좋아하는 술 한잔 입에 대지 않았고 “이렇게 매일 긴장하면서 임한 작품은 처음”이라는 그의 소감을 실감하게 한다.

한상우가 되기 위한 정준호의 준비는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 영화 3편을 이미 같이 한 “기계처럼 손발이 척척 맞는” 감독, 상대배우, 스탭들 사이에 급작스럽게 합류한 이주민이라는 생각 때문에 촬영 초반에는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렸다.

“잘못 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겠다는 위기감”이 그를 독하게 준비하도록 하는 토대가 되었다. 신인이라는 마음으로 “매일 거울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내가 강하고 악하게 보일 수 있을까” 하며 이미지를 분석하고, 그걸 캠코더로 찍어서 톤을 확인하고, 설경구의 연기 스타일을 확인하기 위해 모든 작품을 모니터링하는 등 “대체로 외향에 치중하는 기존 악역 캐릭터를 좀더 내면화하기 위한 노력”에 그는 올인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파 경구 형과의 호흡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낯선 환경에서 인정받고 살아남겠다는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한상우 역이 “연기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정준호. 유난히 클로즈업이 많은 <공공의 적2>에서 활화산 같은 설경구의 눈빛에 밀리지 않는 리액션을 펼치는 그의 집중력은 그러한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김성복 촬영감독은 극적으로 대비되는 두 사람의 긴장감에 연일 즐거워했고 강 감독은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다”며 칭찬했다는 후문. 식물인간인 형을 사지로 몰아넣고 태연하게 테이블에 앉아 눈을 내리까는 모습은 한국 장르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지능적이고 미묘하게 분열적인” 냉혈한을 탄생시켰다.

“인간적 관계에서는 70∼80점이지만 개인 배우로는 50점”이라고 이제까지의 필모그래피와 작품선택에 엄격한 자평을 내리는 그는 달라지겠다고 한다. “<올드보이>의 민식이 형이나 <데드맨 워킹>의 숀 펜 같은 기가 세고 깊이있는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는 게 장기적인 정준호의 목표다. “영화 같은 영화에 목말라 있다”는 그는 앞으로는 하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달려가서 저를 써달라고 적극적으로 달려들 생각”이라는 각오를 보였다. 꼭 대본을 보내오지 않더라도 먼저 찾아가서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시켜달라고 하겠다는 적극적인 대답은 예전의 그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이것은 ‘충청도 영감’이라는 별명이나 사람관계를 중시하는 원래 기질과는 전혀 다른 배우로서의 욕심이 묻어나는 태도다. “정말 마음에 드는 조건의 영화라면 앞으로는 어떤 조건이라도 한다. 조연, 단역이라도 기꺼이 환영한다. 돈을 안 받고도라도 할 수 있다”며 이창동, 김기덕 감독처럼 “배우들을 독하게 단련시키는 감독님들과 작업하고 싶다”는 연기에 대한 공격적인 의사표시는 앞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일 것이다.

변화를 예고한 그에게는 과제가 남아 있다. “경구 형에게 <공공의 적>이 그러하듯 <두사부일체>나 <가문의 영광>의 속편은 내가 해야 할 숙제”라며 기존의 흥행시리즈물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이후에는 전술한 대로 “기가 세고 전혀 다른 작품에 본격적으로 도전할 생각”이란다. 배우 정준호의 ‘지독한’ 전력투구는 이제 시작이다.

스타일리스트 안미경·의상 설경구-송지오옴므, 도크·정준호-겐조, 송지오옴므, 아야모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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