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대해 “미국영화의 기적”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무법자> 시리즈와 <더티 하리> 시리즈로 유명한 젊은 날의 액션스타가 오늘날 미국에서 가장 뛰어난 감독이 됐으니, 이런 표현도 무리가 아니다. 2003년 <미스틱 리버>를 보고 난 이스트우드가 생애 최고의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선악의 싸움과 인간의 운명을 종횡으로 엮은 이 영화는 우리의 평화와 안녕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절감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이스트우드의 최고작이 무엇이냐는 건 사람마다 다른 답을 내놓겠지만 아무튼 <미스틱 리버>가 최고라는 내 판단은 빗나갔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막 보고나오며 그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한번 걸작을 만들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늙은 복싱트레이너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여자 복싱선수 힐러리 스왱크가 나누는 교감을 따라가는 영화다. 이스트우드의 다른 영화들처럼 이 영화에서도 등장인물들의 마음엔 굳건히 걸어잠근 감옥이 한채씩 들어 있다. 영화는 그 감옥 문을 조심스레 열면서 한발씩 전진하지만 스텝 하나하나엔 망설임과 회한이 들어 있다. 그건 세월이 남긴 주름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이스트우드는 의심한다. 과연 저 여자를 복싱선수로 키워낼 것인가? 사랑을 주면 내 마음의 평정이 깨질 텐데, 둘 모두가 상처받을 일이 생길 텐데, 눈에 뻔히 보이는 고통 속으로 뛰어들려는 내 딸 같은 저 아이를 내버려둬도 좋은 것인가? 영화는 모건 프리먼의 내레이션을 통해 주인공의 내면을 유영한다. 무심하게 복싱 테크닉을 설명하는 듯 보이는 내레이션. 그러나 이 내레이션이 창출하는 시적 리듬에는 <미스틱 리버>의 차가운 시선과 상반되는 따스함이 묻어난다. 어디서도 구원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는 <미스틱 리버>와 달리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구원에 대한 열망과 간절한 기도로 이뤄진 영화다.
“복싱에선 모든 것이 거꾸로다. 왼쪽으로 움직일 땐 오른쪽 엄지발가락에 힘을 줘야 하고 오른쪽으로 움직일 땐 왼쪽 엄지발가락이다. 펀치를 날리려면 한발 뒤로 물러서야 하지만 너무 많이 물러나면 때릴 수 없게 된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가르쳐주는 복싱에 대한 교훈은 정직하고 유용하다. 하지만 이스트우드는 이런 테크닉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건 “항상 자신을 보호하라”는 것이다. 그의 가르침은 옳은 것이고 오랜 세월 습관이 된 것이다. 모든 얘기를 삶에 대한 은유로 들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어떤 가르침도 항상 지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신념은 무너지고 규칙은 어긋난다. 이래도 구원을 찾을 거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참혹해진다. 그런 다음, 세계의 비참을 이기는 숭고하고 뜨거운 사랑이 다가온다. 그 사랑은 진정 대가의 영화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초월적 정서이다.
이스트우드의 나이를 찾아봤더니 1930년생, 올해 우리 나이로 76살이다. 이번호 기획기사로 나온 <클로저>의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1931년생. 지난호에 등장한 <에비에이터>의 마틴 스코시즈가 1942년생이다. 가끔 할리우드에 감탄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꼭 특수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60~70대 감독들이 그해 최고의 영화를 놓고 경쟁하는 곳, 할리우드는 그래서 놀랍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