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아바지, 통일 된 다음에 가시라요!” <간큰가족> 촬영현장
2005-02-07
글 : 김도훈
사진 : 정진환
신구·감우성·김수로 주연의 <간큰가족> 촬영현장

여기 간이 배 밖에 나온 가족이 있다. 수십년을 함께 살아온 마누라 앞에서도 북한에 남겨둔 마누라 타령을 하는 김 노인(신구). 길어야 6개월밖에 남지 않은 간암 말기의 그를 위해 가족들은 ‘통일’을 마지막 선물로 선사하고자 한다. 3류 에로영화 감독인 작은아들 명규(김수로), 사려 깊은 큰아들 부부(감우성, 이칸희)는 엄마(김수미)와 작당하고 마치 통일이 된 것처럼 김 노인을 속일 속셈인 것이다. 물론, 간큰 가족의 간큰 계획이 제대로 흘러갈 리가 없다.

지난 1월21일 남양주 종합촬영소 제5 스튜디오에서는 간큰 가족이 한판 소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닌 밤중에 북한에 가겠다고 나서는 김 노인과 그를 말리기 위해 나선 가족들이 벌이는 난리법석이다. 냉기가 단단히 서린 산자락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 내부는 배우들과 스탭들로 들어차 후끈 달아올랐다. 전형적인 한국 중산층 가옥을 그대로 옮겨놓은 세트는 발디딜 틈도 없다. 좁은 거실 세트 속에서 나가려는 아버지와 말리는 가족들의 밀고 당기는 승강이가 한창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촬영, 조명, 분장과 연출부 스탭들이 카메라 동선을 피해 숨을 죽이고 있고, 불시에 찾아온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조심스럽다. 협소한 세트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취재기자들은 스탭들의 다리 사이로 벌어지는 일들을 지켜보느라 바쁘다.

“호흡이 너무 잘 맞아서 대본 연습이 필요없을 정도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이 모두 지혜로운 사람들인 것 같다”는 김수로의 이야기처럼, 오버하지 않고 자기 역할을 해내는 배우들의 앙상블은 더딘 촬영을 허락지 않는다. 지난 한해 <알포인트>와 <거미숲>으로 진지한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었던 감우성은 보글보글 아줌마 파마를 하고서는 연신 웃고 있다. 촬영장에서 깐깐한 배우라는 선입견을 순식간에 지워버리는 순간이다. “지난해에는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었는데, 그게 다 욕심 때문이었던 거 같다. 성에 차지 않으니까 머리칼도 빠지고.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앞으로도 할 일이 많은데 지나치게 조급해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더라. <간큰가족>을 촬영하면서는 욕심 안 부리고, 덜 연구하고, 아침에 와서 대본 보고. 그렇게 마음을 비우면서 편하게 가고 있다”는 감우성의 말에서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감독이 직접 쓴 <간큰가족>의 시나리오는 97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우리의 소원은>이라는 제목으로 당선된 작품. “감독이 애드리브를 좋아하지 않는 분이어서 절제하고 있다”는 김수로의 귀띔에서 짐작할 수 있듯, 조명남 감독은 <간큰가족>을 배우의 개인기보다는 드라마의 호흡을 제대로 따라가는 코미디로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지니고 있다. 3월 말 크랭크업, 5월6일 개봉이라는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인 <간큰가족>은, 2월21일부터 6일간 있을 한국영화 최초의 북한 로케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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