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음반을 만들어 파는 대규(임창정)는 철없는 사고뭉치다. 임신한 여자친구에게 “먹여살릴 돈 없다”며 나몰라라 작별을 선언한 날에도 술집에서 발견한 잘 빠진 여자와 하룻밤 보낼 궁리를 한다. 쥐꼬리만한 월급받고 창고 같은 사무실에 처박혀 정품 음반을 복사하는 인생도 그 맛에 산다. 그나마의 재미마저 박살나게 만든 이는 아홉살 소년 인권(이인성). 아이는 구질한 방 한칸짜리 대규의 집에 쳐들어와 스물여섯살의 대규를 대뜸 “아빠”라고 부른다. 짚이는 과거가 있으나, 무책임한 대규로선 아이를 내쫓고 싶다. 인권은 남해 땅끝마을에서 시작하는 국토종단여행에만 동행해주면 떠나겠다고 어른스러운 제안을 던진다. 대규는 이에 응한다.
<파송송 계란탁>의 초반부는 흥미롭다. 답답한 공기로 메워진 짝퉁 음반 제작실과 대규의 방은 디테일이 보이는 세트다. 대규와 대규의 동료들이 주고받는 3류들간의 좀스러운 대화도 거북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달라붙는 인권과 떼내려는 대규에게서 웃을 만한 대목이 몇번 지나고 나면, 둘의 여행과 함께 영화는 강행군을 시작한다. 인권은 애답지 않은 말을 길게 쏟아내는 드센 아이다. 대규는 좀처럼 철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한심한 인간이다. 이기적인 둘은 절명의 사건도 없이 지루하기만 한 도보여행길 위에서 툭하면 다툰다. 처음부터 인권에겐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결핍이 없었으므로, 한쪽이 토라지고 다른 한쪽이 승복하는 이 반복적인 모습은 연인의 애정행각을 더 닮았다. 그러다 두 사람은 미연(인권의 엄마, 대규의 9년 전 애인)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면서 성급히 부자관계의 꼴을 갖춰나간다. 기다렸다는 듯 인권의 불행은 악화되고, 엔딩은 신파에 몸을 기댄다.
<파송송 계란탁>이 가진 비장의 무기는 결국 임창정이란 배우다. 눈물연기에 강한 그는 자신이 ‘보통 사람들의 것’이라고 바꿔 말하는 우리 주변의 비루한 모습을 연기로 탈바꿈해내는 재주를 가졌다. 드문드문 뿌려진 그만의 코미디연기도 폭소를 자아낼 만하다. 이 정도만으로 영화를 받아들일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사실 임창정과 이인성 두 배우만 보면서 종단여행 러닝타임 90분을 견뎌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어른과 아이의 로드무비란 점만 같지, <파송송 계란탁>의 여행은 마사오와 기쿠지로 아저씨의 여행과 전혀 다르다. 일단 마을축제, 괴짜 청년무리들과의 만남, 물놀이 같은 귀엽고 신나는 이벤트는 없다. 철없는 아빠가 여자들과 벌이는 술판, 그리고 라면은 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