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거만한 고전기 할리우드의 심장 박동, <에비에이터>
2005-02-15
글 : 김혜리
마틴 스코시즈가 그리는 ‘젊은 자본가의 초상-시민 휴스’

“Q-U-A-R-A-N-T-I-N-E.”

젊은 어머니는 발가벗은 아들의 몸을 씻어주며 ‘검역’이라는 단어의 철자를 소년의 뇌리에 한자한 자 박아 넣는다. ”기억하렴. 너는 결코 안전하지 않단다.” 격리와 단절의 뜻을 포함하는 이 단어는, 18살에 고아가 된 하워드 휴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엄청난 돈과 함께 유산으로 남겨져 평생을 따라다닌다. 유년의 기억으로부터 끝없이 호출당하는 백만장자라면,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이 이미 오래전 소개한 바 있다. 그러나 <시민 케인>의 언론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이 중얼거리는 ‘로즈버드’가 잃어버린 순수의 암호였다면 <에비에이터>의 하워드 휴스가 되뇌는 ‘쿼런틴’은 깊게 할퀴는 저주다. 그것은 휴스를 어디에도 데려다주지 못한다. 밀폐된 방 안에 더러운 공중화장실에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가둘 뿐이다. 실제로 하워드 휴스는 악명 높은 은둔생활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끝내 밀실로 돌아가 틀어박히기까지 하워드 휴스가 밟은 여정은 웅장했다. 가히 바로크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비행기를 직접 설계해 조종간을 잡았고, 가장 빠르게 날아 세계를 일주했으며 당대 가장 비싼 영화를 찍고 가장 눈부신 여배우들과 지면을 장식했다. 마틴 스코시즈는 <에비에이터>에 허락된 169분을, 약물 중독과 CIA 정치공작 가담혐의가 휴스의 생애에 퀴퀴한 그늘을 드리우기 전인 1927년부터 1947년까지 찬란한 청년기에 온통 쏟아넣었다. 스코시즈가 원했던 작업은 하워드 휴스의 비판적 결산도 그를 통해 본 시대의 해석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그리는 휴스의 초상은 현대 자본주의가 낳은 이카루스다. 타고난 재능과 조건 덕에 현대사회의 범용함을 넘어 환락도 성취도 파괴도 모두 끝장을 볼 수 있었던 부러운 사나이. 무모하게 높이 날았다가 날개가 녹아내린 비극적 영웅. 게다가 그는 도발적인 영화를 제작해 할리우드의 노친네들을 한방 먹이기까지 했으니 스코시즈가 매료당할 만도 하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캐스팅도 ‘이카루스’의 이미지를 대입할 때 비로소 딱 들어맞는다. 디카프리오의 양미간에 팬 주름은 뭔가에 집중하려는 소년의 안간힘을 드러낸다. 여성의 젖가슴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우유를 즐겨 들이켜는 휴스는, 몹시 비싸고 요란한 방식으로 사춘기를 치르는 아이다.

<에비에이터>가 객관적 평전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점은, 휴스가 연인 캐서린 헵번의 집에 초대된 장면에서 분명해진다. 세련된 자유주의자답게 대화하는 헵번 가족에게 휴스는 쏘아붙인다. “당신들은 돈이 원래 있으니, 돈에 관심이 없겠죠!” 순간 휴스는 부유층의 위선을 비웃는 맨주먹 사내처럼 보이지만 휴스야말로 상속재벌의 대표다. ‘세계 사회주의자 웹사이트’가 비판한 대로, 휴스가 팬암사의 국제선 독점에 저항하는 <에비에이터>의 클라이맥스도 휴스 왕국의 기초가 채굴 드릴의 독점권에 있었다는 점에 비추면 다소 허무하다. 휴스의 이같은 ‘반항’은 오직 자기혐오로 볼 때 납득이 가능하다. 그래서 <에비에이터>는 일화들의 덜컹거리는 연쇄로 이루어진 영화의 일관성을 하워드 휴스의 내면-결벽증과 상승욕구에서 찾는다. 존 로건(<글래디에이터> <라스트 사무라이>)의 각본은 재즈와 스윙으로 채워진 사운드트랙의 반주에 맞춰 흥청거리며 휴스의 외적인 승승장구와 내적인 괴멸을 오간다. 로맨스, 세균공포증, 영화, 비행으로 간추릴 수 있는 네 가닥의 서브플롯 중 앞의 둘은 휴스의 병든 내면을 뒤쪽의 둘은 영화적 장관을 보여주는 용도로 주로 쓰였다.

<에비에이터>는 여성 편력이 화려했던 하워드 휴스의 유명한 애인 중에서도 캐서린 헵번에게 ‘평생의 사랑’이라는 특권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휴스의 영혼과 영화에 온기 비슷한 것을 불어넣는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선언조의 어투, 말끝을 걷어올리는 부가의문문, 쉼표 찍듯 끄덕이는 고갯짓까지 우리가 기억하는 영화 속 헵번과 (지나치게) 똑같다. 그러나 세상 누구보다 휴스를 이해하면서도 곁에 머물 수 없는 성숙한 여인의 감정 묘사는 헵번이 아닌 블란쳇의 것이다. 물론 스코시즈는 카메라를 갖고 인물의 피부 밑으로 들어가 그가 보고 느끼는 세계를 재현하는 장기를 장쾌한 스케일로 과시한다.

<에비에이터>에서 그가 전하는 것은 기인 하워드 휴스의 맥박일 뿐 아니라, 창공을 나는 비행기의 흥분한 엔진이며 거만한 고전기 할리우드의 심장 박동이다. 마치 하워드 휴스 영화의 공중장면에 경의를 표하듯, 치밀하고 박진감 넘치는 편집에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효과를 봉합해 넣은 비행 시퀀스들의 아름다움은 특별한 공을 들인 티가 나고, 고전기 할리우드의 ‘명승지’ 풍경을 재현한 테크니컬러의 색감은 소재와 형식을 일치시키려는 스코시즈의 욕심을 내비친다. 그러고보면 <에비에이터>는 영화사의 열렬한 탐험자인 스코시즈가 극장용으로는 처음 시도하는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패닉 상태에 빠진 1947년의 휴스를 내버려두고 <에비에이터>는 (끝난다기보다) 그냥 멈추어선다. 여기에는 <갱스 오브 뉴욕> 이전 스코시즈 영화를 지배했던, 고난을 통한 종교적 구원과 대속의 약속이 없다. 스코시즈의 어떤 영화보다 폭력과 충동을 정돈한 <에비에이터>는 단정하다. 위트있는 존 로건의 각본은 3시간 가까이 관객의 주의를 잡고, 스코시즈는 우리가 들었던 휴스를 둘러싼 소문을 훌륭하게 재현한다. 부족한 것은 “우리가 왜 그를 알아야 하는가? 그와 우리는 어디서 연결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설득이다. 그 답을 얻지 못한 관객의 기억 속에서 <에비에이터>는 흠집 난 레코드가 바늘을 튕기듯 제자리걸음을 할 것이다. 같은 단어를 닳도록 중얼대던 마지막 휴스의 목소리와 함께.

<에비에이터> 바깥의 하워드 휴스(1905∼76)

영화와 비행기에 미친 억만장자

하워드 로바드 휴스 주니어는 190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텍사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하워드 휴스는 아들이 네살 때 석유 채굴 드릴의 특허를 얻어 백만장자가 됐다. 수학과 기계에만 관심있는 학생이었던 하워드는 1922년 어머니 알린이 죽자 캘리포니아로 가 MGM 작가로 일하던 숙부와 지냈다. 아버지는 고교를 중퇴한 아들을 위해 캘리포니아공과대학에 기부금을 내고 수업을 듣게 했다. 1924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18살에 공구회사를 상속한 하워드는 이듬해 아내 엘라와 할리우드로 이주했다. 캘리포니아를 일으킨 두 비즈니스, 영화와 항공업에 운을 건 것이다.

영화 속에서 딱 한번 비행하는 매머드급 비행선 H-4는 이후 롱비치의 격납고에 틀어박혀 휴스 생전에는 대중에게 다시 공개되지 않아 그 소유자와 똑같은 길을 걸었다. <에비에이터>가 재현한 시기 직후인 1940년대 말 휴스는 스튜디오 대표로서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라는 기획을 감독에게 제안해 거부자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반면, 급진주의자 니콜라스 레이를 비호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1950년대 휴스의 거대한 제국은 조직범죄, CIA의 은밀한 업무와 뒤엉켜 돌아갔다. 휴스가 만드는 상품 중에는 첩보위성도 포함됐다. 리처드 닉슨은 1960년 선거에서 휴스에 대한 20만달러 채무관계 스캔들이 불거져 표를 잃었다. 휴스는 그로서는 매우 드문 자선사업으로 휴스의학연구소를 델라웨어에 설립했는데 나중에 항공사 주식을 이 기관에 넘겨 면세를 받기도 했다. 정치에 엮이는 문제를 놓고 휴스와 마찰을 빚던 오랜 동료 노아 디트리히는 1957년 해고됐다. 같은 해 하워드 휴스는 여배우 진 피터스와 재혼했다.

여러 소송에 휘말린 1966년 하워드 휴스는 5억4600만달러의 주식을 매각하고 라스베이거스로 이주했다. 그리고 말년에는 바하마, 멕시코 등지를 전전해 “마약을 쉽게 구하려고”라는 소문도 부추겼다. 미국 대중에게 비친 그의 이미지는 크리넥스 상자를 신발처럼 신고 스테이크와 콩만 먹으며 봉인된 펜트하우스에서 사는 광인이었다. 휴스를 진찰한 한 의사는 그의 건강상태를 2차대전 중 일본 포로수용소의 죄수들에 비교하기도 했다. 전 FBI 요원 로버트 메휴를 고용해 사생활을 엄중 보호한 휴스는 1976년 아카풀코에서 휴스턴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사망했다. 20년간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휴스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재무성은 지문채취까지 했다. 부검된 그의 몸에서는 부러진 피하주사 바늘들이 나왔다고 전해진다. 20억달러에 달하는 유산은 22명의 조카에게 돌아갔고 텍사스, 네바다, 캘리포니아 세개주가 상속세를 놓고 분쟁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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