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연기에 올인할래요”, 정려원
2005-02-17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B형 남자친구> 기자시사회가 끝난 시각. 주·조연 배우들이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는 사이, 정려원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찾는다”는 헬스장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러닝머신에 올라 “아무 생각 않고” 한 시간 넘게 뛰었다. 촬영했던 장면들이 편집과정에서 대거 제외됐음을 알고서 서운했던 것일까. 게다가 첫 출연작인데. “숨은그림찾기죠. 저도 제 얼굴 찾느라 진땀 뺐어요”라면서도 본인은, 그게 전부는 아니란다. “그랬으면 처음에도 역할 비중을 보고 출연을 결정했겠죠.”

제작진이 애초 정려원에게 제의한 역할은 오만방자한 B형 남자 영빈에게 추근대는 은영. 그러나 샤크라 시절 자신을 옥죄었던 섹시한 이미지의 그물망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상대적으로 덜 돋보이는 어리숙하고 엉뚱한 보영을 선택했다. “만약 은영 역을 했다면 가수하는 려원이 연기도 하네, 그랬을 거예요. 사실 3분이면 노래는 끝나요. 그 안에서 나를 보여주기란 쉽지 않은데 어쨌든 사람들은 그 3분으로 나를 파악했고 그게 싫어서 노래를 접었어요. 이번 영화에선 저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해서 아쉽지만 또 기회가 있겠죠.”

소득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도대체 B형 남자가 어떻기에”라는 호기심으로 시나리오를 접했고, “소재가 특이하다”는 판단에 따라 출연을 결정했다는 정려원은 첫 촬영날 “보영이 옷치곤 너무 화려하다”는 타박을 들어야 했고, 촬영 도중 “못 마시는 당근 주스”를 수차례 마셔야 하는 고문도 당했지만, 촬영이 끝날 무렵엔 “NG나면 다시 한번 찍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즐기는 수준”이 됐다. “방송은 시간에 쫓길 경우엔 시선이 잘못 됐어도 넘어갈 때가 많아요. 근데 영화는 안 그러니까. 한 테이크 찍고 났을 때마다 배우들이랑 스탭들이 나란히 모니터를 바라보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겸업하는 가수들도 많은데 “앞으로 연기만 하겠다”고 못 박을 필요가 있을까. “저 뭐든 올인하는 스타일이에요. 심지어 식성도 그래요. 초콜릿이 좋으면 밥 안 먹고 그거만 몇달 먹어요.” 배우의 길에 들어선 것이 갑작스런 충동은 아니다. 2002년부터 한 방송사의 아침 드라마에 출연했고, 이후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와 단막극 등에 간간이 출연하면서 연기하는 재미를 맛봤다. “주현 선생님이랑 한혜숙 선생님이랑 어른들께서 ‘넌 연기하는 게 더 좋겠다’라고 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준비하면서 힘이 됐죠”,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성에 갇혀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바깥은 맹수들이 으르렁거리는데. 연기를 택한 건 좀 자유롭고 싶었서죠”라고 말하는 그는 요즘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심혜진과 함께 뱀파이어 가족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첫발을 들여놓은 터라 욕심도 많다.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몰입만 가능하다면 누구나 연기는 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쳐 보이는 그는 “언젠가 다중인격 장애를 겪는 인물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연출도 해보고 싶어요. 호주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중국, 베트남 친구랑 같이 연출한 것이긴 하지만 단편 액션영화 만들어서 1등하고 그랬거든요” 유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상처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그림일기를 책으로 펴낼 생각도 갖고 있다는 그는 연기하는 틈틈이 공부해 나중에 시각디자인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 볼 참이다. 그러면서 “기자 일 재밌어요? 먹고살려고 한다고요? 하고 싶은 거 하고 사세요. 늙으면 후회해요”라며 충고까지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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