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이 글을 주의 깊게 읽는 데는 아마 한 시간쯤 걸릴 것입니다. 바로 그 한 시간 동안 14명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과 기아로 죽어가고 다른 60명은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난민이 됩니다. 이 글은 이 비극과 죽음과 기아의 이유에 대해 쓴 것입니다. 이 고통스런 이야기가 당신 개인의 행복과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되면 이 글을 읽지 마십시오.” 이란의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아프가니스탄의 비참한 현실에 관한 보고서 <칸다하르> 첫머리에 그렇게 썼다. 그리고 “왜 모두들 바미얀의 불상(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불상)이 파괴된 것에 대해서는 소리내어 슬퍼하면서 죽어가는 아프간인들을 구하는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마이클 윈터보텀의 <인 디스 월드>(2003) 또한 “이 고통스런 이야기가 당신 개인의 행복과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되면 이 영화를 보지 마십시오”라고 운을 뗀다. 무지가 편견을 낳고, 편견이 죽음을 불러온, 그래서 이제는 저주의 사막으로 변해버린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을 비추면서 영화는 우리가 저질렀으나 쉽사리 망각한 원죄의 근원으로 데려간다. 카메라는 파키스탄 난민촌에서 태어나 부모를 잃고서 소년 가장이 된 자말과 그의 사촌 에나야트의 런던행 밀입국 과정을 뒤쫒는 로드무비 형식을 취한다. 그들이 ‘실크로드’라 부르는 이 길은 그러나, 견딜 수 없는 고통의 가시밭길이다. 목숨을 담보로 내건 여정이 진행되는 동안 두 사람은 가축과 뒤섞이고, 맨몸으로 사막을 가로지르고, 심지어 냉동 컨테이너 안에서 40시간을 갇혀 지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란에서 터키로, 이탈리아로, 프랑스로, 결국엔 런던에 당도하는 두 사람. 그곳은 과연 그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내줄 것인가. 2000년 6월, 58명의 중국 난민들이 밀입국을 시도하다 컨테이너 안에서 숨막혀 죽은 사건을 계기로 난민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마이클 윈터보텀은 2001년 11월 “9·11 사태는 의심없는 미국의 자작극이라고 믿는 위험지대” 페쉬아와르 방문을 시작으로 영화의 얼개를 짜기 시작했고, 실제 아프간 난민인 자말과 에나탸툴라를 캐스팅해 다큐멘터리라고 오해할 정도로 생생한 영화를 완성했다. 험난한 생사의 노정 뒤로 광활하게 펼쳐지는 자연과 그 위에 얹혀지는 아프가니스탄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한 선율이 보는 이의 누선을 찌르고 후비는 작품. 2003년 베를린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차지했고, 그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어 국내에서도 호평을 끌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