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공의 적2>의 배우 강신일
2005-02-25
글 : 문석
사진 : 정진환
“연극만 20년, 마흔에 영화 데뷔했다”

“그런데, 그 반장 누구야?” 2002년 <공공의 적>이 개봉했을 때 관객은 아마도 서로에게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강력반에 새로 부임해 수사에 힘을 불어넣고, 감찰반으로부터 부하 직원들을 보호하는 강직한 반장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만약 그중 연극 공연장을 더러 찾아온 친구가 끼어 있었다면, 답은 쉽게 튀어나왔을 터. 하지만 대학로와 거리를 두고 살아온 ‘보통 관객’으로서는 그가 1980년 연극계에 입문해 <칠수와 만수> <변방에 우짖는 새> <김치국씨 환장하다> <날 보러 와요> <진술> 등 30여편 연극무대의 주인공이었으며, 연극계의 온갖 상을 대부분 품에 안아본 배우 강신일(45)이라는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라. <공공의 적> 이후 그는 <광복절특사> <청풍명월> <천년호> <실미도> <썸> 등에 출연하면서 천천히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고, TV드라마 <오! 필승 봉순영>과 최근의 <공공의 적2>를 통해 이름을 우리 머릿속에 깊이 새기고 있다. 25년 동안의 연기활동이라는 마르지 않을 에너지를 바탕으로 영화계에서 전성기를 열고 있는 강신일을 만났다.

-요즘엔 어디 나가면 많이들 알아보지 않나.

=사실, 어제도 뮤직비디오 촬영 때문에 군산의 외딴 항구에 갔었는데, 그쪽 분들도 다 알아보더라. 촬영 중간에 모닥불 피워놓고 있는데 굴도 구워서 갖다주고 사진도 같이 찍자고 했다.

-대개 어떤 작품으로 기억해주던가.

=일단 <오! 필승 봉순영>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고, <실미도>가 설 연휴 때 TV에서 방영된 탓인지 그것으로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다.

-<공공의 적2> 이후에는 이름도 널리 알려졌을 것 같다.

=사실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내 이름을 영화 속 부장검사 이름인 김신일로 알더라. (웃음)

-이젠 마음 편히 돌아다닐 수도 없겠다.

=그래도 난 지하철 타고 다닌다. 집이 경기도 화정인데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빼놓으면 항상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긴 하는데 시내에서 운전하는 것은 답답해서 그런다.

-지하철에서 사인공세를 받지는 않나.

=아무렇게나 점퍼 걸치고 뻔뻔하게 다니니까 괜찮더라. 그리고 내가 워낙 시골스럽게 생겼잖나. (웃음) 설사 알아보더라도 내가 워낙 뻔뻔하게 앉아 있으니까 다가오지는 못하더라. (웃음) 만약 알아차리는 분위기가 보이면 눈을 감아버린다. 아니면 책을 읽거나. 아무래도 책 보고 있는 사람을 건드리긴 힘들지 않나.

-그래도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지난해 <실미도>가 처음 개봉됐을 때는 지하철 안에서 사인해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누구 하나가 오면 다 따라오니까…. 구파발에서 타고 충무로까지 가는 길이었는데 불광동에서 내려버렸다. 사인 행렬이 끝났다고 해도 앉아 있기가 민망하더라. 그래서 다음 열차를 탔다.

-남성관객에게 특히 친화력이 있는 것 같다.

=여자들에게도 친화력이 있는데…. (웃음) 사실,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내 팬카페의 90% 이상이 남자다. 전체 회원은 350명 정도 된다.

-요즘 들어 섭외가 많이 들어오지 않나.

=지금 당장은 일이 좀 있지만, 뭐 그렇게 바쁜 편은 아니다. 일단 <봄날>의 후속작인 SBS 주말드라마 <그린 로즈> 촬영을 곧 시작한다. 고수와 이다해가 주연인데, 거기서 어떤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수사관 역으로 나온다. <공공의 적2> 때의 부장검사에서 강등된 셈이다. (웃음) 영화는 5월부터 강우석 감독의 <택스>에 나오게 된다. 드라마 일정과 겹칠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사실 다른 영화 제의도 들어왔는데, <택스> 일정 때문에 안 되겠더라.

-<이재수의 난>으로 데뷔한 이후 <공공의 적2>가 여덟 번째 영화인데….

=영화가? 가만있어보자. (헤아려보더니) 여덟 번째가 맞네. 아이고, 이제 더이상 신인 영화배우가 아니네. (웃음)

-누군가 ‘버디무비’라고 말할 정도로 <공공의 적2>에서의 비중이 크다.

=여태껏 출연한 영화 중 분량은 가장 많은 것 같다. 영화상에서 이름이 불린 것도 처음인 것 같고. (웃음) <실미도>에서 이름이 한번 나오긴 한다. 대원들이 실미도를 탈출해서 버스를 탈취하기 전에 “근재 형이 살아 계셨더라면 뭐라 그랬을까요”라고 말할 때. 그러면 뭘 하나, 이미 나는 죽은 다음인데. (웃음)

-연기를 시작한 계기는.

=고등학교 때 대학로 방송통신대학 뒤쪽에 있는 동숭교회에 다녔는데, 거기에 연극을 하신 분이 계셨다. 그분을 중심으로 조그맣게 연극 모임이 만들어졌고 나도 참여했다. 처음에는 단막극을 만들어서 소외된 지역을 찾아가 공연했다. 그러다가 극단을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 생겼다. 연극을 통해서 기독문화를 다지자는 차원과 연극을 통해 선교를 하자는 취지, 또 소외된 지역을 찾아다니면서 연극을 통해 봉사를 하자는 의미 등이 중첩되면서 극단 ‘증언’을 만들었다. 그게 79년 말, 그러니까 대학 1학년 때였다. 첫 무대는 80년 4월, 이강백 희곡으로 만든 <도마의 증언>이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내가 주연인 도마 역을 맡게 됐다. 그렇게 시작해서 대학 시절 내내 연극만 하다가 졸업 뒤 군대에 갔다.

-전공은 전자공학으로 알고 있다.

=모른다. (웃음) 대학생활을 모두 연극과 함께했다. 정말로 그때는 연극만 생각하면서 살았다. 거기에는 내가 사회의 조직생활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생각도 있었고, 박정희 정권 끝자락에 대학에 들어가 군부독재의 연장선 속에서 대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연극으로 풀어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본격적인 연극활동은 연우무대에서 시작한 것으로 안다.

=당시 증언 대표에게 그런 심정을 말씀드렸더니 연우를 소개해줬다. 그게 86년이다. 연우에 들어갈 때는 10년이 걸리건 20년이 걸리건 무대 바닥만을 쓸더라도 이 시대의 고민을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들어가자마자 그런 얘기를 했는데, 덜컥 <칠수와 만수>의 만수 역을 맡게 됐다.

-주연 복을 타고난 것 아닌가.

=그런 건 아닌 듯하고, 내가 그때 그 상황에 맞았던 것 같다. <도마의 증언>을 할 때도 도마 역은 다른 사람 몫이었다. 그분이 연습을 하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빠지게 돼서 내가 맡게 됐다. <칠수와 만수> 경우도 비슷하다. 당시 연우는 만수에 적합한 연기자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상이 험악했을 때였는데, 연출자 이상우씨가 나를 보더니 “딱이네, 만수”, 그러더라. (웃음)

-연우가 남긴 유산이 있을 것 같다.

=연우가 기본적으로 추구했던 연극정신이 남아 있는 것 같고 거기서 만난 김민기, 김석만, 김광림, 문성근 등 형들에게서도 전해진 게 있는 것 같다. 내가 연극이라는 것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준 분들이다.

-그러다 영화계에 들어갔다.

=사실, 예전에도 간간이 드라마나 영화쪽의 제의가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연극이 재밌었고, 연극만으로도 내 인생에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연극쪽으로 선배뿐 아니라 한참 후배들도 대학로에 잠깐 나왔다가 바로 나가서 스타가 되더라. 이들과 나는 활동영역이 다르구나,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박탈감 같은 것도 있었다. 그때만 해도 속으로는 ‘나는 여전히 최고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셋째아이가 생기면서부터 덜컥 겁이 생기더라. 사실 내가 연극하면서 수입이란 게 있었겠나. 그전까지 애 엄마가 애 둘 키우는 와중에도 동네 꼬마들 피아노 교습하면서 생활비 보충해가며 살아왔었다. 그런데 식구가 하나 더 생긴다니. 동시에 그때가 내가 딱 마흔 되던 시점인데, 마흔이 되도록 뭘 했나 싶었다. 내가 아무리 대학로 연극판에서 존경받는 연기자, 후배들이 좋아하는 선배 연기자로 지칭받는다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식구들에게 너무너무 죄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여태껏 걸어왔던 길을 지키면서 넓혀보자, 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게 2000년인데 그때부터 주변에서 누가 영화 소개한다고 하면 나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재수의 난>은 99년작인데.

=<이재수의 난>은 그런 차원과 무관하게 출연했다. 87년 연극 <변방에 우짖는 새>에 나왔었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든다니, 연극의 연장으로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박광수 형이 연우 선배이기도 했고. 그래서 누군가 영화 데뷔작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공공의 적>이라고 말하는 거다. 내가 주체적으로, 자진해서 영화를 한 게 <공공의 적>이니까.

-<공공의 적>에는 어떻게 캐스팅됐나.

=나는 강우석 감독을 만난 적이 없었다. 2001년 무렵인데 시네마서비스에서 이런 역을 할 수 있겠냐고 연락이 왔다. 시나리오를 보는데 ‘어? 이거 너무 역할이 작은 거 아냐’, 이렇게 생각하곤 기대를 안 갖고 있었다. 그런데 2000년 겨울에 했던 <날 보러 와요> 공연 녹화 테이프를 강우석 감독이 봤다는 거다. 조연출 얘기가, 강 감독은 그 테이프를 보자마자 바로 ‘저 사람이야’라고 했다고 한다. 그뒤 별도의 미팅도 없었다. 그렇게 캐스팅됐는데, 설경구가 한양대 후배였던 조감독들을 데리고 ‘내가 좋아하는 형이야’ 하면서 우리집으로 데려왔다. 신인배우가 그런 대접을 받다니. (웃음)

-강 감독과 일을 해보니까 어떻던가.

=나는 굉장히 좋다. 스피디하고 시원시원하고 정확하고. 적어도 강우석이란 감독 본인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주저함이 없고 확신을 갖고 하니까, 결과물에 대한 비평 차원에서는 모르겠지만, 영화에 임하는 자세로는 굉장히 좋더라.

-처음 영화현장에서 거북하진 않았나.

=거북함은 <이재수의 난>을 하면서 다 겪었다. 아, 영화가 이렇게 돌아가는 거구나. 둘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했어야 하는데 연극을 기준에 놓고 생각하다보니 당연히 거북할 수밖에. 연극은 가난하고 신성하다는 생각을 나를 포함해 주변에서 다 갖고 있었는데, 영화현장도 신성했다.

-대학로의 톱스타가 조연급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는 불편하지 않았나.

=한동안 그런 불편함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것을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어디서 내세운다거나 그럴 일은 아닌 것 같더라.

-강신일이라는 존재를 다시 한번 알린 영화는 <실미도>였다. 워낙 강행군을 해서 육체적으로는 안 힘들었는지.

=사실, 영화를 시작하기 전 연출부와 제작부에서 굉장히 걱정했던 것 같더라. 나는, 사실 자신이 있었다. 찍는 동안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었다. 정말 재미있게 찍었다.

-<실미도>를 찍다가 후배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하던데.

=학창 시절에 어떻게 이 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며 굉장히 분노했지 않았나. 이런 것들이 영화화된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또 거기에 참여하게 돼 남다른 감정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중간에 죽지 않나. 내가 너무 거기에 빠져 있어서 그랬는지 그 장면을 찍을 때 정말 슬펐다. 촬영이 끝나고 하루이틀 쉴 때 서울로 와서 대학로에 가게 됐는데, 길거리에서 후배를 딱 마주치는 순간 그냥 눈물이 막 쏟아지더라. 그런 거 생전처음 경험했다.

-설경구와 세 번째 작업을 했다. 인연이 있나보다.

=설경구는 대학 1학년 때 신촌에서 내가 공연한 <칠수와 만수>를 봤다고 한다. 대학로에 나왔을 때 바로 나를 알아보더라. 경구가 학전에 있을 때 배우로서는 <이런 노래>와 <모스키토>라는 작품을 같이 작업했다.

-<공공의 적2>에 강철중이 김신일 부장의 자취방을 찾아가서 엉기는 장면이 있는데 실제 관계도 비슷할 것 같다. 설경구가 따르고 좋아하지 않나.

=좋아한다. 그런데 지금은 미워한다. 내가 너무 답답하게 사니까. ‘왜 그러고 사세요, 그렇게 살지 마세요’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그 장면과 똑같네. (웃음) 아마도 내게 답답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뭔가 하나를 결정하더라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 결정에 대해 주변에서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고 많이 생각하게 된다.

-교수 생활도 하고 있다. 스케줄이 빡빡할 것 같다.

=동서울대학에서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출강하는 건데 일이 겹치면 좀 부담스럽다. 다행히 지난 학기에 빠진 적은 없다. 그래도 배우 활동을 하는 사람이니까 아무래도 연기쪽에 집중하게 돼 학교쪽과 제자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

-연기론이 있다면.

=내가 갖는 배우로서의 철학은 탐구다. 배우 그 자신에 대한 탐구 말이다. 나는 과연 배우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일까. 내 의도와 무관하게 주변에서 만들어놓은 나에 대한 이미지가 있다. 그게 과연 나일까. 내 결론은 아니다, 란 것이다. 내 안에 무수한 성격이 있을 텐데,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무의식 속에 담겨 있는 게 무수히 많을 텐데, 그것을 끄집어내는 게 배우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것을 제대로 끄집어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다보면 스스로 성찰하게 되고, 깨닫는 것도 있지 않을까.

-꼭 도전해봤으면 하는 연기가 있는지.

=모든 작품이 다 도전해보고 싶은 것이지만, 굳이 지금 같아서는 인간의 내면을 세세하게 파고들어가는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 <햄릿>도 그런 경우인데, 연극으로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정말로 사악한 영혼도 연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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