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어멋, 이 손 놓지 못해요?” <연애의 목적> 촬영현장
2005-02-25
글 : 이영진
사진 : 정진환
박해일·강혜정 주연의 <연애의 목적> 촬영현장

이게 누군가. 섬세하고 여린 청년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서울 강북의 한 고등학교에서 이뤄진 <연애의 목적> 35회차 촬영. 오후 촬영 시작을 알리는 조감독의 무전 호출을 받고 급하게 뛰어온 박해일은 패딩점퍼를 벗자마자 능글맞은 교사 유림으로 변신한다. “컨닝하지 마! 컨닝하면 만∼원.” 한손에 든 지휘봉으로 책상을 뚝뚝거리며 시험 대열로 맞춰놓은 책상 사이를 호기 가득한 팔자걸음으로 유유히 빠져나가는 그의 모습에 취재진들은 눈을 반짝인다. 좁은 교실에서 카메라 들고 뒷걸음치던 사진기자가 엉덩방아를 찧었던 것도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다. 테스트 촬영이 끝나자 박해일은 누가 뚫어져라 쳐다보기라도 하듯 쏜살같이 옆반 교실에 차려진 모니터 앞으로 몸을 피한다. 생전 처음 단 수염 분장과 양복 의상이 불편한 것일까. 이유를 추궁하자 박해일은 “아직도 못 즐기나봐요. 컷 소리만 나면 앵글에서 곧바로 빠져나가려고 하니까”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린다.

반면 교생 역을 맡은 강혜정은 말은 아끼지만 거듭되는 테이크를 곱씹으며 즐기는 표정이다. 영어 시험 감독 중에 슬쩍 손을 잡아끄는 선배 교사 유림이 치근덕거리자 어쩔 줄 모르며 손을 빼는 교생 홍을 한 화면에 담는 것이 이날 촬영분량. 한재림 감독이 이 장면의 톤과 두 사람이 벌이는 애정행각의 타이밍을 고민하느라 다소 뜸을 들이는 사이, 강혜정은 한 엑스트라의 책상 위에 놓인 시험지를 뒤에서 지그시 들여다보더니 답을 꾹 찔러준다. “25번에 답 3번이래.” “뭐라고? 몇번이라고?” 엑스트라들의 수군거림이 차디찬 교실을 데운다. 이들은 자신들이 진짜 시험을 보고 있는 학생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인가. “시험지 다시 앞으로 보내요.” 연출부의 지시가 떨어지고 카메라가 다시 윙 소리를 내면서 교실은 잠깐의 소란을 잊고 숨을 죽인다. 두 남녀의 비밀 연애를 훔쳐보기라도 할 듯이.

70% 촬영을 마친 <연애의 목적>은 교실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연하남, 연상녀의 그저 그런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지금 젖었어요?” 첫 장면부터 침실 용어를 거리낌없이 대사로 끌어들이는 이 영화는 최선중 프로듀서의 말에 따르면, “우리 세대로서는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고, 풀 수 없는 연애 방정식”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 수상작이기도 한 <연애의 목적>에 대해 한재림 감독은 “섹스가 배제된 판타지로서 접근하고 싶지 않았다”며 “고윤희 작가와 함께 리얼한 연애담을 쓰려고 노력했다”고 영화를 소개한다. “한번 자자”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선배 교사 유림과 “남자친구가 있다”며 물리치는 교생 홍. 두 남녀의 아옹다옹으로만 영화가 채워질까.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은 5월 중순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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