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로봇>을 보던 윌 스미스의 네살배기 딸이 불쑥 던진 한마디. “아빠, 이제 지구는 그만 지켜.” 툭하면 외계인이나 로봇과 드잡이를 벌이며, 달리고 넘어지고 치고받는 아빠가 안타깝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했을 것이다. 어린 딸의 조언은 시의적절했다. 베벌리힐스를 누비던 힙합 키드는 어느덧 중후함이 어울리는 나이 서른여섯이 되었고, 전환점을 찾고 있었다. 너무 거창하거나 생뚱맞아 보이지 않을 자연스러운 변신이 필요한 시점. <Mr. 히치: 당신을 위한 데이트 코치>는 그때 그를 찾아왔다.
“히치는 카리스마가 있고 여자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도시의 완벽남으로, 여자들을 사로잡는 법을 지도한다. 세련되고, 현대적이고, 남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로맨틱코미디라는 점에서, 그에게 어울린다.” 윌 스미스의 오랜 동료이자 <Mr. 히치…>의 프로듀서인 제임스 라시터의 증언이다. 하긴 연애의 노하우를 일러주는 윌 스미스에게 ‘너나 잘하셔’라고 응수할 남자가 어디에 있을까. 여자 앞에 자신있어 보이는 유들유들한 스미스에게 데이트 코치는 적역이다. 실제로 그는 시나리오 첫 페이지의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상대를 매혹할 기회는 있다. 다만 작은 힌트가 필요할 뿐”이라는 대사에 ‘필’이 꽂혔다고 했다. 세상 남자들에게 한수 가르쳐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영화 속의 그가 로맨틱해졌다는 사실이 미덥거나 반갑지 않을 수도 있다. 윌 스미스는 그런 저항을 예상한 듯 “로맨스보다 코미디가 강한 영화”로 배합에 공을 들였다. 영화 속에서 그는 연애에 숙맥인 남자들이 사랑하는 여자들에게 “마지막 첫 키스”를 받아내게 하는 데이트 코치가 되었지만, 정작 자신의 연애에선 어리석은 실수와 오해를 되풀이하는 등 헤매기 일쑤다. “마치 전세계가 그의 연애를 방해하려고 음모를 꾸민 것 같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음식 알레르기로 얼굴이 팅팅 부어오르는 등 한없이 망가지지만, 아픈 과거가 언급되면서 멋지게 균형을 이뤄낸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연애의 법칙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그가 영화 안팎에서 전하는 아이로니컬한 조언.
윌 스미스 출연작의 개봉 주말 평균 수익은 3420만달러로, 할리우드 배우 중 최고다. <Mr. 히치…> 또한 4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여, 평균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흑인 문화의 미덕과 백인 중산층의 가치를 수용한 새로운 흑인 청년상으로 스타덤에 오르고, <인디펜던스 데이> <맨 인 블랙>을 통해 미국 극장가 대목인 ‘독립기념일 주간의 승자’로 등극한 것도 아득한 옛일이 됐다. 흥행배우의 타이틀이 지겹다거나, 오스카 트로피가 탐난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라 마이클 만과 함께 일하고 싶어서 선택했다는 <알리>로 ‘가짜 흑인’이라는 일각의 비난을 잠재우는 데도 성공했다. 최근 들어서는 SF액션 <아이, 로봇>과 애니메이션 <샤크>, 로맨틱코미디 <Mr. 히치…> 등으로 부쩍 다양한 장르를 오가고 있다. 어느 작품에서든 그는 영웅적이고 신화적인 인물이지만, 그보다 의미심장한 건 ‘인종 초월적인 캐릭터’를 체현한다는 사실이다. 다음 영화 <투나잇 히 컴스>에서는 욕구불만으로 술과 담배와 여자에 빠지는 슈퍼히어로를 연기한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그 다음은? 그가 털어놓은 첫 데이트의 교훈이 작은 힌트가 될 것 같다. “유머가 돈이나 근육보다 낫다는 걸 깨달았다. 돈과 근육은 빨리 어필하지만, 유머처럼 오래가지는 않더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