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정이현의 해석남녀] <클로저>의 댄
2005-03-04
글 : 정이현 (소설가)
‘양손의 떡’ 다 잃고서 뒤늦게 후회해봤자…연예의 예절 아셨어야지!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사랑 또한 예외가 아니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이라는 제목의 영화도 있지 않은가. 모래알처럼 많고 많은 상대방 중에 한명을 선택했다면, 그래서 이제부터 그를 애인 삼기로 결정했다면 당신은 제일 먼저 ‘포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장동건과 원빈이 뜨겁게 구애한다 해도, 전지현과 손예진이 애절하게 바라본다 해도 눈 질끈 감고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미안해요. 그렇지만 저, 사실은 애인이 있거든요.” 우리는 그것을 사랑의 기회비용이라고 부른다.

물론 원빈이나 전지현을 도저히 포기하기 어렵다면 당신은 다른 행동을 취할 수도 있다. 현재의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는 것이다. 오른 뺨을 때린다면 왼 뺨까지 내밀고, 위자료를 청구한다면 고분고분 지불하고, 진심을 담아 싹싹 두 손 모아 빌어라. 그러고 나서 새 연인에게 가는 거다. ‘잘’ 이별하는 일련의 과정이 구질구질할지라도 그것은 헌 사랑과 새 사랑에 대한 최소윤리다. 사랑에도, 아니 사랑에야말로 예의가 필요하다.

<클로저>의 댄. 신문사의 부고담당 기자이며 작가인 그 남자에게는 애인 알리스가 있다. 그리고 운명처럼 또 다른 여자 안나가 나타난다. 댄의 마음은 안나를 향해 마구 끌린다. 자, 이제 정석대로 하자면 남자는 제 앞에 놓인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 번째, 눈물을 머금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 두 번째, 과감히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길. 어느 쪽을 택하든 한 명의 여자는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는 포기란, 배추를 세는 단위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공정한 게임의 규칙에는 상관없이 그는 이른바 ‘배 째라’ 권법을 구사한다. “너에게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 나, 그 여자를 좋아한다. 오해는 말아라, 그렇다고 해서 너를 싫어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나는 그 여자도 좋아하고 너도 좋아한다. 어쩔 테냐? 차라리 배를 째라!” 아, 이 얼마나 단순명료하고 유치찬란하며 뻔뻔스런 진실의 토로인가. 이쯤 되면, 저쪽은 진즉에 정리했다고 양쪽에 똑같이 둘러대고서 위태로운 양다리를 타는 남자가 더 양심적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심술궂은 중학생처럼 좋아하는 여자 이름 사칭해서 음란 채팅하는 이 남자, “그 놈이랑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사실을 말해줘, 말해줘, 말해줘.” 제가 잘못한 일은 홀라당 까먹었는지 여자를 집요하게 의심하고 들볶아 대는 이 남자. 우유부단한 평화주의자의 사랑법이라는 면죄부로도 그 ‘찌질함’의 극한은 가려지지 않는다. 사랑 앞에 예절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남녀관계에서 진실과 거짓말은 그렇게 단순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무조건적인 솔직함은 때론 독이 되어 서로의 심장을 후벼 판다. 양 손에 쥔 떡 다 놓쳐버리고 나서야 그 남자, 연애의 기초 혹은 예의범절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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