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병든 무의식을 그려낸 <스파이더>
2005-03-08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 해부학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이번에는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병든 무의식을 그려낸다.

<스파이더>(2002)는 SF 및 공포영화 장르 안에서 기괴한 육체성과 초월적 신세계를 다뤄온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전작들과 달리 정적이지만 좀더 정교한 심리의 망을 소재로 하고 있다.

열차에서 내린 ‘미스터 클레그’(랠프 파인즈)는 윌킨슨 부인(린 레드그레이브)이 운영하는 사회 복귀 시설로 찾아든다. 한눈에도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그는 정신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클레그가 이곳을 찾은 뒤부터 영화는 그의 어린 시절 장면들과 병렬로 진행된다. 그 시절은 불운했다. 아버지(가브리엘 번)는 순박한 어머니(미란다 리처드슨)를 두고, 동네 술집에서 알게 된 매춘부(미란다 리처드슨)와 바람을 피운다. 게다가 어린 미스터 클레그는 어머니가 그들 손에 살해당하는 것을 봤다고 믿거나 실제 봤다. 이 장면들이 벌어지는 어린 시절의 시간과 장소를 성인이 된 클레그는 망령처럼 돌아다니며 다시 목격한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만 나오면 습관적으로 프로이트와 오이디푸스를 연상하는 관객을 위한 독법 장치가 <스파이더>에 없는 건 아니다. 또한 카프카, 베케트는 크로넨버그의 영화적 영감을 말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들을 투사하여 <스파이더> 보기를 권하고 싶지 않다.

<스파이더>는 데칼코마니 기법의 작품이다. 이것을 말하지 않거나, 부주의하게 말하고 지나간다면 <스파이더>에 대해 한 말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수상한 수사학이 아니다. 오프닝 크레딧을 유심히 볼 것을 권한다. 거기서 크로넨버그는 정확히 무엇인지 그 내용을 알기는 힘들어도, 그 대칭구조만큼은 명확히 가려낼 만한 이미지들의 연쇄를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히 그저 오프닝 크레딧이 아니라 이 영화의 전체 기법을 설명하는 중요한 표지다. 엄마와 매춘부(나중에는 계모가 되는)를 한명의 배우가 1인2역으로 연기한다든지, 어린 클레그와 성인 클레그가 같은 행위를 되풀이하거나 같은 처지에 놓인다든지(예컨대 줍는 행위와 살인의 시도), 더 크게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사회 복귀 시설에서의 이야기가 병렬로 놓인다든지 하는 점은 반복이 아니라 데칼코마니의 대칭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미스터 클레그의 어린 시절 장면을 무턱대고 그의 ‘기억’이라고 여기면서 퍼즐 맞추듯이 이 영화를 쫓아가지 말자. 그건 통념의 지루함에 빠지는 지름길이다. 그렇다면 기억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무엇도 아닐 수 있다. 어린 시절 불운한 가족사로 상처를 받아 그 충격으로 정신병을 얻어 치료를 받은 뒤 사회 복귀 시설까지 오게 된 한 남자의 실제 과거사인지 아니면 어떤 정신병을 얻어 그 질병의 기운으로 망상 속에서 짜내고 있는 그의 허구적 이야기인지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복귀 시설에서 클레그는 항상 뭔가 열심히 수첩에 적어 내려가는데, 그것이 그의 과거를 떠올려 기록하는 것인지, 바로 그 순간 없는 과거를 지어내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완성된 데칼코마니 작품의 왼편과 오른편 중 어느 쪽이 먼저 있던 것이라고 우리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크로넨버그가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실마리가 있다면, 그의 어린 시절 장면에서 다른 사람들 모두가 그를 ‘데니스’라고 부르는데, 오직 그의 친어머니만이 그를 별명삼아 ‘스파이더’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거미집은 거미 외에는 짓지 못한다).

크로넨버그가 <스파이더>를 대칭의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그려내는 이유는 그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 그 기법으로 담아낼 수 있는 내용의 성격이 ‘무질서’하다는 데 있다. 겹쳤다가 다시 펼쳐지면서 우연과 가능성으로 다시 생겨날 수 있는 이중의 무질서에 대한 매혹이 <스파이더>에는 있다. <스파이더>는 무질서의 매혹에 빠져 있는 영화이고, 그걸로 재현해보고 싶은 소재는 바로 무의식이다. 일례로, 아버지 이름인 ‘빌’이 어떻게 어머니와 매춘부 사이에서 불리는지, 성인 클레그가 보는 사진 속 이미지가 어떻게 변하는지, 사회 복귀 시설의 여주인 윌킨슨 부인의 모습이 어떻게 잠시 바뀌는지, 아버지와 클레그가 어떻게 한몸이 되었다가 분리되는지, 눈여겨보아야 한다. <스파이더>에 질서란 없다. 배열이 있을 뿐이다. 무의식의 세계를 영화적 재현의 장 안에서 배열해보려는 시도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일종의 데칼코마니 기법으로 추구해보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데칼코마니 자체도 초현실주의의 장 안에서 탄생한 것이다.

<스파이더>는 영화를 뜯어보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하지만 영화적 귀기(鬼氣)가 흐린 것이 단점이다. 피가 튀고, 살이 널리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니라 정련된 도식들이 직관의 균열을 누른 흔적들 때문이다. 변화하는 영화적 표현의 교량쯤 되는 작품이라서 그럴 것이다.

<스파이더> 배우들의 열연

여성 버전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어머니
창부

<스파이더>는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미스터 클레그 역을 맡은 랠프 파인즈를 위시하여 아버지 역의 가브리엘 번, 어머니와 매춘부를 1인2역으로 소화해낸 미란다 리처드슨(짧은 순간 윌킨슨 부인 역을 하기도 한다), 사회 복귀 시설의 운영자 윌킨슨 부인을 연기한 린 레드그레이브가 그들이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가 2000년에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게 된 것은 랠프 파인즈가 주인공을 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라고 한다. 그는 랠프 파인즈를 주인공 미스터 클레그에 딱 맞는 배우라고 판단했다. “특정한 배우를 염두에 두지 않고 시나리오를 읽는 보통의 경우와는 정반대”였다고 한다. 주인공 랠프 파인즈가 <스파이더>에 기여한 바는 그 정도로 컸다. 그 역시 <스파이더>의 각본을 받자마자 작품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정도로 주인공에게 몰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신분열에 시달리는 역을 소화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지만, 랠프 파인즈는 예전에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언제나 무언가에 홀려 있는 듯한 망연자실 불안정한 병적 표정과 무엇이 진실인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시종일관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도시와 과거를 휘적휘적 돌아다닌다. 그의 연기는 <스파이더>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정숙한 어머니와 음탕한 매춘부라는 극단의 양날을 맡은 미란다 리처드슨의 연기도 볼 만하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면, 그녀가 맡은 두 역은 마치 각기 다른 두 배우가 연기하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다. 이 영화의 1인2역에서 의미를 찾고자 했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하다. 아버지 역을 맡은 가브리엘 번 역시 한몫을 한다. 그는 자신의 연기 생활 중 <스파이더>에서의 역할이 가장 어려웠다고도 말한다. “어린아이 눈에 비친 나쁜 인물과 실제의 빌 사이에서 선을 잘 잡고 있어야 했다. 굉장히 균형잡기가 어려웠다. 내 연기 인생 중 가장 힘든 역할이 아니었나 싶다”고. 이 밖에도 사회 복귀 시설의 운영자 역을 맡은 린 레드그레이브는 깐깐한 지배자와도 같은, 한편으론 뭔가 다른 무엇과 끈이 닿아 있는 듯한 미스터리한 인물을 잘 소화해냈다. <스파이더>는 캐릭터의 묘사가 분명치 않으면 안 되는 영화다. 몇 되지 않는 인물들을 통해 교묘히 돌려 짜내는 이야기인 이 영화에서 배우들의 역할은 그만큼 기여도가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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