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배에 머리가 벗겨져 짜증도 잘 내고 짜증스럽기도 한 폴 지아매티는 괴로워하는 모습을 인간적으로 잘 소화해내서 그만의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다. (알랑거리는 독립영화 감독으로 나온) <스토리텔링>이 있고 (그의 ‘하비 피카’가 실재 피카보다 더 실감난) <아메리칸 스플렌더>가 있는데 이제 거기에 알렉산더 페인이 탁월하게 감독한 <사이드웨이>가 더해졌다(하비 피카는 언더그라운드 만화 작가로 유명하며 일명 노동계층의 마크 트웨인으로 평가받는다. <아메리칸 스플렌더>는 본인이 출연한 독특한 자전 영화이다.-역주).
비평가들(과 아마 관객)을 즐겁게 한 페인의 이 처참한 영화에 무기력의 대명사인 지아매티는 자신을 차버린 아내에게 아직도 미련을 갖고 있는 우울한 중학교 선생이자 실패한 소설가 마일즈로 나온다. 또 이 세상에서 가장 불평 많은 포도주 애호가인 마일즈는, 곧 결혼할 바람둥이 친구 잭에게 남부 캘리포니아의 산타이네즈 계곡으로 일주일간의 포도원 순례를 베푼다. 이 뛰어난 모험을 통해 자신을 혐오하는 지아매티의 마일즈는 엄청난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는 잭과 함께 유대를 강화해가는 우습고도 마음 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 TV를 통해 조금 알려진 인물로 헝클어진 머리와 바닷가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보낸 불그스레한 피부의 잭은, 한때 TV에서 활동한 배우 토머스 헤이든 처치가 맡았는데 이 영화에서 거의 독보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이들의 모험은 아쉽게도 마일즈의 어머니 생일로 지체되며 시작된다(이내 어머니가 얼마나 수다쟁이인지가 드러난다). 마일즈의 여행에 대한 환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잭이 다른 여자들과 자고 싶어한다는 게 분명해지면서 상황은 점점 긴장을 띠게 된다. 렉스 피켓의 소설을 각색해 만든 (그리고 향상시킨) <사이드웨이>는 잘 맞지 않는 두 사람의 줄다리기와 한 현학적인 술꾼의 술잔치 중간쯤에 놓여 있다. 잭이 너털대는 별 기호없는 사람인 반면 마일즈는 맹렬한 지적 속물이다. 마일즈의 명연설 덕에 영화는 포도주 멀롯을 바겐상품으로 전락시키고 포도주 피노 누아의 주문을 솓구치게 할 판이다.
상냥한 성격의 웨이트리스 마야(버지니아 매드센)에게 들려주는 마일즈의 찬사는 비애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곳에서 느껴지는 유머는 마음에 사무치는 정도를 지나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마야와 당찬 스테파니(산드라 오)와의 더블 데이트 중에 전 부인에게 전화를 건 마일즈에게 잭이 묻는다. “너 술 먹고 전화했지?” 페인은 마일즈를 구제불능의 술주정꾼으로만 놔두지는 않지만 포도원에서 남들이 마시다 남긴 포도주를 버리는 항아리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비참하기가 그지없다.
페인의 영화는 로라 던의 루스(<시티즌 루스>), 리즈 위더스푼의 트레이시(<일렉션>), 잭 니콜슨의 슈미트(<어바웃 슈미트>)처럼 잊을 수 없는 인물들로 뚜렷이 구분된다. 마야와 스테파니는 활기있게 몰두하는 인물들이고 잭과 마일즈는 남성적 전형으로 최근 미국영화에서 가장 잘 묘사된 희극적 인물들이다.
(2004. 10. 18 짐 호버먼은 미국 영화평단에서 대안영화의 옹호자로 가장 명망이 높은 평론가로 <빌리지 보이스>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씨네21>과 <빌리지 보이스>는 기사교류 관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