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에가 돌아왔다. 깜찍한 표정과 기이한 행동, 때묻지 않은 발칙함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오드리 토투가 이번에는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면서도 전쟁 중에 실종된 약혼자를 찾기 위해 프랑스 전역을 헤매는 순정파 소녀 마틸드로 돌아왔다. 장 피에르 주네의 신작 <인게이지먼트>에서 다시 주연을 맡음으로써 주네의 뮤즈임을 확인시킨 그녀를 몽마르트르가 아닌 베벌리힐스에서 만났다. 프랑스 스탭과 배우들로 완성됐음에도 워너브러더스의 투자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프랑스영화인지 미국영화인지 논쟁에 휩쓸려 있는 영화이니만큼 전세계의 영화 홍보를 위해 미국에 불려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전 영화들과는 사뭇 다른 정통 순정멜로에 도전한 주네의 주문에 맞춰 오드리 토투는 아멜리에의 짓궂은 표정을 깨끗이 지우고, 지고지순한 사랑에 목숨을 거는 고전적이면서도 강인한 여인상을 연기했다.
실제로 만난 그녀는 아멜리에와 마틸드의 중간쯤이랄까. 할리우드 여배우였다면 당연히 고치고도 남았을 깜찍한 덧니와 유머감각은 아멜리에를 닮은 듯하고, 잘록한 허리에 어울리는 우아한 옷차림과 부드럽지만 단호한 말투는 마틸드를 닮았다. 최근 <더티 프리티 싱즈>(Dirty Pretty Things)에 출연하는 등 영어권 영화에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그녀이지만, 아직은 영어가 서툰지 통역자의 도움을 받아 영어와 프랑스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인터뷰하는 기자들과 늘 사진을 함께 찍는다며 우리에게도 카메라를 들이댄 점. 늘 찍히는 자신의 입장을 재치있게 반전시키는 그녀에게서 프랑스인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느껴졌다면 과장일까.
=<아멜리에> 이후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장 피에르 주네와 다시 영화를 찍고 싶었다. 처음에는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도 몰랐다. 이번에도 다르고 재미난 것을 기대했고 주네가 영화를 실패한 적이 없기 때문에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다 원작소설을 읽었는데 내가 연기한 마틸드 캐릭터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희망, 사랑에 감동받았다. 그녀는 강하고, 의지가 굳으며, 호기심이 가득찬 캐릭터다. 약혼자를 찾기 위한 그녀의 긴긴 여정이 매혹적이다.
=<아멜리에>를 찍었을 때와 같은 감독, 스탭, 배우들과 작업했는데 아멜리에 캐릭터를 벗어나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기가 힘들지는 않았나.
-한 영화를 끝내면 난 그 캐릭터에서 벗어난다. 나를 따라다니게 두지 않는다. 이 영화는 전혀 새로운 영화이고 새로운 자세로 임했다. 마틸드는 깊은 깊이를 가진 캐릭터다. 이 영화의 진정한 히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조디 포스터와의 작업은 어땠나.
-같이 촬영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흥분했다. 그녀는 아주 친절하고 관대한 사람이다. 늦게 나타난다든지 전혀 스타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프로페셔널 의식이 아주 강한 사람이다. 그녀와의 작업은 정말 만족스러웠다. 그녀의 프랑스어는 나보다 낫다. 악센트가 전혀 없다. 놀라운 배우다.
=<더티 프리티 싱즈>에서 영어로 연기했는데 앞으로 영어권 영화에 더 출연할 의사가 있는가.
-굳이 안 할 이유가 없다. 나에게는 어느 언어로 연기하느냐보다 감독이 누구냐가 더 중요하다. <더티 프리티 싱즈> 찍을 때 영어가 훨씬 엉망이었는데. (통역자를 바라보며) 기억나죠? (통역자 왈, 영어 정말 많이 늘었어요.) 힘든 작업이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스티븐 프리어즈가 다시 영화 찍자고 하면 뭐든 할거다.
=<아멜리에>는 한국에서도 아주 인기였다. 실제 자신은 어느 캐릭터에 더 가깝나? 아멜리에 아니면 마틸드.
-나는 그 누구하고도 가깝지 않다. 나는 나와 가깝지 않은 캐릭터를 연기하는 걸 좋아한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웃음)
=새로운 오드리 헵번이라는 칭호를 듣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불과 몇년 전에 부모님이 그녀 이름을 따서 내 이름을 지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꿈에도 생각지 않았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당연히 기분 좋다. 그녀를 존경하니까. 아마도 우리가 둘 다 검은 눈동자를 가졌고 이름이 같고 우아해서 사람들이 그러는 거 아닐까?
=이 영화에서 악기를 연주하는데 실제로 연주할 줄 아는 악기가 있나.
-어렸을 때 음악을 많이 배웠다. 오보에와 피아노를 연주할 줄 안다. 지금은 피아노를 다시 연습하는 정도다.
=사랑을 믿는가.
-물론 사랑을 믿는다. 누가 아닐까?
=마틸드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지구 끝까지 찾아가는 그런 사랑을 본인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휴… 글쎄… 사랑이 꿈꾸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열정적이게 만들고. 인간 본성을 초월하는 게 사랑이다. 정말 사랑한다면 목숨까지 내걸 수 있을 거다.
=혹시 지금 사랑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
-그 질문에는 대답 안 하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