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정이현의 해석남녀] <여선생vs여제자>의 여미옥
2005-03-11
글 : 정이현 (소설가)
아이들에겐 마녀 남자 앞에선 내숭원단 그저 만만한게 노처녀?
<여선생 vs 여제자>의 여미옥

영화 속 주인공을 보면서 ‘아, 쟤랑 친구 먹고 싶다’ 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한국영화의 여주인공들을 한 줄로 쭉 늘어놓고 보자면 더욱 그렇다. 그들은 대개 지나치게 청순하고 해맑아서 내숭으로 느껴지거나, 속세의 때가 하나도 안 묻은 듯 대책 없이 명랑발랄순수해서 가까이하기에 왠지 부담스럽다. <여선생vs여제자>의 여선생 미옥은, 친구 삼으면 딱 좋을 듯한 여자다. 소주 한 병만 시켜놓으면 몇 시간이고 쿵짝을 맞추어 신나게 떠들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인생이 이렇게 재미없을 줄 몰랐다고 한탄하면 미옥은 좔좔좔 수다 보따리를 풀어놓을 것이다. “야, 말도 마라. 나만큼 재미없겠냐. 요즘 애들은 얼마나 싸가지가 없는지 아주 어른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서 갖고 논다. 우리 반에 고미남이라는 애는 내가 몇 번 야단쳤더니 제 딴에는 복수하겠다고, 글쎄, 노처녀라는 시를 써서 수업시간에 읊어대더라니까. 밤마다 허벅지를 바늘로 찌른다, 그 이름은 노처녀! 담임선생님! 그것도 장학사가 참관 나왔는데. 아 진짜 돌아버려. 내 인생 왜 이렇게 꼬이는 거니.”

미옥을 위로해 줄 말은 많다. 일단 여교사는 대외적으로 호감 일순위의 신부감이라는 것. 게다가 그는 키 크고 날씬하며 썩 괜찮은 외모를 가졌다. 접촉사고를 당한 경찰관이 전화번호를 궁금해하고 천하의 ‘선생 김봉두’ 씨도 첫눈에 혹해 관심을 보일 정도이니 뭐 그만하면 객관적으로 검증된 미모라고 본다. 안정된 직업에, 멀쩡한 인물. 마음만 먹으면 지역사회의 노총각들을 팬클럽으로 거느릴 수 있을 만한 조건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다. 영화 속에서 여미옥, 즉 여교사는 ‘남자에 목숨 건 별 볼일 없는 노처녀’로 묘사된다. 비단 미옥뿐 아니다. <어린 신부>를 필두로 <몽정기2>와 <여선생vs여제자>까지, 소녀들 눈높이에서 바라본 비혼(非婚)의 여교사는 모두 비슷비슷하다. 예민하고 신경질적이며 연하의 남자교사 앞에 맥을 못 추는 노처녀. 그들은 아이들 앞에서는 마녀이지만 남자 앞에서는 내숭 원단으로 돌변하고, 소녀와 멋진 총각선생님과의 로맨스에 방해꾼 노릇을 한다. 그리고 ‘노처녀 히스테리’라는 오래된 ‘병명’으로 정의된다.

이른바 결혼적령기가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는 보나마나 성격에 문제가 있을 거라는 발상이나, 결혼에 대한 강박으로 점점 심성이 삐뚤어져가고 있을 거라는 추측은 시대착오적이고 폭력적이다. 왜 영화는 학생들의 시선을 빌려 그들을 어수룩한 마녀로 재현하는가? ‘올드미스 여교사’는 가족주의라는 울트라초강력 지배이데올로기와, 10대 소녀의 로맨스라는 또 하나의 뉴파워 이데올로기 양쪽 모두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전 사회적으로, 놀려먹기 만만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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