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스왱크가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소년은 울지 않는다>(1999)에 이어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자 미국 언론은 그녀가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고 말했다. 배우가 되자고 결심하고 엄마와 단 둘이 LA행을 감행했던 열여섯살 때, 스왱크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소녀였다. 주머니에는 75달러와 주유카드만 들어 있었다. 그녀가 등을 돌린 고향집은 땅에 뿌리를 내린 주택이 아니라 바퀴달린 트레일러였고, 그녀가 가진 것은 우악스런 턱선과 돌출형의 구강구조, 허스키한 목소리와 튼튼한 몸이었다. 외동딸로 자란 아이의 보글보글하고 고운 인상이 아니라.
그러니 그것은 신데렐라 스토리가 아니다. 신데렐라는 얼굴이 재투성이어도 예뻤으니까. 왕자님은 요정이 바꿔놓은 신데렐라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했던 것이니까. 스왱크는 <소년은 울지 않는다>에 대한 호평과 오스카 수상으로 3천달러 받던 개런티를 300만달러까지 받게 됐지만, 그로부터 2년 뒤(시상식으로부터는 1년 뒤) <어페어 오브 더 넥클리스>에서 18세기 프랑스 왕실을 들락이던 야심만만한 귀족 부인으로 출연했을 때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그건 연기력과는 별개의 문제다. 스왱크가 어깨 위로 고수머리를 드리우고 프릴 달린 실크드레스를 입고 건장한 남자에게 유혹적인 눈길을 보내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얼굴이 곱지 않으면 성격파 배우로 성공해야 한다는 이 업계의 믿음은 틀린 것이 아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힐러리 스왱크가 뛰어난 운동신경을 타고난 배우라고 칭찬했다. 그녀는 십대 시절 수영선수로 활동했고, 주니어 올림픽과 워싱턴주 챔피언십에 출전한 경력을 갖고 있다. 워싱턴주 챔피언십에서는 전체 5위의 순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석달간 하루 네 시간 반씩 일주일 중 6일의 복싱 훈련을 견디는 일도, 9kg에 달하는 탄탄한 근육을 불리는 계획도 그런 뛰어난 운동신경과 타고난 체력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단지 자신의 육체를 영화 속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굴릴 수 있는지만 아는 사람이었다면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남장소녀 브랜든 티나와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서른두살짜리 복서 매기 피츠제럴드가 그렇게 사랑스럽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자는 받지 않아”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코치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저 강해요”라고 말할 때, 웨이트리스를 하며 모은 팁 동전들을 싸갖고 자기 글러브를 사게 됐을 때, 고집스럽게 타이틀전을 반대하던 프랭키가 상대선수의 경기장면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왔을 때, 매기의 얼굴에는 하염없이 천진한 미소가 번진다. 그 천진함은 아무에게도 지지받지 못할 꿈에 자기 인생을 던지는 순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남자가 되고 싶었던 소녀 티나 브랜든이 자기 이름을 브랜든 티나로 바꾸고, 그토록 원하던 여자친구를 마침내 얻게 됐을 때 짓던 그 얼굴의 표정을 기억하는가. 눈동자가 흔들릴 만큼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던 그 표정을 말이다.
남장소녀 역할을 피하는 여배우들 때문에 캐스팅하는 데만 3년의 세월을 소비했던 킴벌리 피어스 감독은 스왱크를 “자신의 본질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캐릭터로 바뀌는 배우”라고 설명하면서 그녀가 가진 본질이란 바로 사랑스러움과 따뜻함이라고 했다. 그녀를 인터뷰한 어떤 기자는 그녀가 걸을 때 그리고 말을 할 때, 잘 교육받은 우아함과 나긋나긋함이 배어나온다고 고백했다. 끌과 정으로 파낸 것같이 섬세한, 조각처럼 다듬어진 스왱크의 골격을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매력적이면서 동시에 굉장히 여성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다른 데 있지 않을 것이다. 힐러리 스왱크는 근육질의 소녀다. 그녀의 육체는 그 자체로 캐릭터가 될 만큼 성격이 뚜렷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그 육체로 세상에 맞서는 여전사가 되기에 너무 따뜻하고 밝아 못 미덥다. 천생 톰보이(남자 같은 여자) 브랜든일 수밖에, 천생 매기일 수밖에. 킴벌리 피어스 감독은 그런 힐러리 스왱크를 “소년으로서도, 소녀로서도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