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샌드라 불럭의 <미스 에이전트2> LA 현지 시사기
2005-03-18
미인대회로 간 FBI 요원, 그 이후

3월4일 금요일 밤, UCLA 대학가에 자리잡은, 겉보기에 비해 조금은 허술한 맨 페스티벌 시어터(Mann Festival theater)에 도착, 배급사 워너브러더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를 잡았다. 운전하는 동안 길가에서 대체 몇개의 <미스 에이전트2> 영화 포스터를 봤는지. LA에 살다보면 버스, 버스 정류장, 옥외 빌보드 등 도처에 붙은 영화 포스터를 보게 마련인데, 미국 영화 마케팅비 80% 이상이 개봉하는 주 TV광고에 집중된다는 것과 타 도시에서는 이렇게까지 영화나 TV 관련 옥외 광고를 자주 접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의아스럽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어느 스튜디오 전 마케팅 이사의 말을 빌리자면 그건 LA에 사는 영화 관계자의 눈을 위해 마케팅팀이 의도적으로 설치하는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감독의 집 근처나 출퇴근 동선을 따라 설치하기도 한다고 한다.

3, 4편의 신작이 발표되는 미국에서는, 개봉 주말 입장객 수가 영화의 수명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쨋주 관객 수가 50% 이상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 새로 개봉한 영화에 밀려난다는 예상을 하고 개봉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4년 전 개봉한 <미스 에이전트>는 상당히 의외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개봉 2주차에 관람객이 늘어난 것. 이는 기대치보다 내용이 좋아 입소문이 일으키는 효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레이시, FBI 출신 스타로 각광받다

촌스럽고 터프한 FBI 에이전트 그레이시 하트(샌드라 불럭). 미인대회는 사자머리에 짙은 화장에 수영복 차림으로, 세계평화를 공허히 외치는 쇼라고 생각하던 그녀가 미스 USA 패전트에 미스 뉴저지로 분하여 잠입, 테러범을 일망타진하고 미스 USA 선에다 우정상(그래서 원제가 ‘Miss Congeniality’)까지 탄다는 내용의 1편에서 바로 바통을 이어받는 <미스 에이전트2>는 그레이시라는 캐릭터의 변화에 초점을 두고 구상된 영화이다. 페미니스트적 메시지와 미인대회 옹호론의 중도노선을 애매하게 걸으며 여기저기 슬랩스틱코미디를 던지던 1편에서 필자가 의외로 즐거워했던 것은 다름 아닌 샌드라 불럭의 연기였다.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는 코를 킁킁거리고 웃는, 전통적인 미인의 모습과 다른 매력의 연기가 캐릭터와 너무나 잘 맞았다. 특별히 로맨틱코미디 팬이 아닌 필자에게 단순한 줄거리와 중도적인 정치성에도 불구하고 유쾌한 기억으로 남았다.

최근 해적판에 대한 할리우드의 경계태세를 대변하듯 카메라는 물론, 심지어 카메라폰을 가진 죄로 입장이 저지되어 주차장까지 뛰어갔다 돌아오는 불상사를 겪고는 헐레벌떡 달려 팝콘과 콜라를 얻어들고 자리를 잡았다. <매트릭스2 리로디드> 시사회에서 적외선 투시경을 쓴 감시관들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그래도 참아줄 만한 수준. 역시 그레이시의 매력이 다시 불러들인 관객임을 입증이나 하듯이 관객은 그녀의 엉뚱하고도 위트있는 대사에 크게 웃으며 반응을 보였다.

<미스 에이전트2>는 그레이시가 평범하다 못해 사회성이 결여된 못난이에서 공인된 미인이자 국가의 영웅적 위치를 동시에 차지한 스타가 된 상태에서 시작한다. 이미 얼굴이 알려져 유일한 분출구인 FBI 본업에 충실해지기 어려운 그녀는 새로운 사랑이 싹트기도 전에 잘려버려 좌절에 빠진다. 세상이 원하는 그녀의 모습에 충실해지기 위해 아예 새로운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그녀는 토크쇼에 출연하고 자서전 홍보 활동에 열중하는 FBI 대변인이자 대중스타로 탈바꿈한다. 미인대회 잠입을 위해 시작한 겉치장이 이제는 그녀의 인생이 되어버린 것이다.

전편과 같이 샌드라 불럭이 프로듀싱을 하여 많은 입김을 넣은 <미스 에이전트2>는 여성 버디영화다. 전편과 달리 과감히 로맨틱 요소가 전무한 상태에서 변해버린 그레이시와 그레이시의 옛 모습을 증폭한 듯한 그녀의 보디가드 샘(레지나 킹)이 벌이는 해프닝에 초점을 맞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샌드라 불럭은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후문. 그레이시 하트의 캐릭터 속에 샌드라 불럭의 모습이 엿보이는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다. 아름다움과 연기뿐 아닌 여성 프로듀서로서의 행보와 호탕한 그녀의 성격이 스크린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영화인 것이다.

샌드라 불럭 인터뷰

“이 영화는 그레이시의 생존기이다”

실제로 만나본 샌드라 불럭은 영화의 그레이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시원시원한 답변과 푼수 같은 유머와 웃음 사이에 가끔 날카롭고 강렬한 주장들을 듣다보면 배우를 넘어선 제작자로서의 현 위치를 쉽게 납득할 수 있었다.

=2편을 만들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작가 마크 로렌스와 <미스 에이전트> <투 윅스 노티스> 등 4편을 같이 했다. 워낙 같이 있다보니 1편이 끝난 뒤에 그레이시는 어떻게 살았을까, 특이하고 오리지널한 그레이시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대화가 자주 오갔고 결국 속편을 만들기로 했다. 사실 우리 업계(할리우드)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특이한 것을 갈고닦아 결국 획일화하는 현상을 겪는 과정에서 그레이시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당신에게도 그런 획일화 과정이 있었는가?

-나를 변하게 만들려고들 했지만 어디 날 변하게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웃음)

=인기인이 되어 가장 고달팠던 적은.

-시카고에 있는 한 클럽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카메라가 발 밑으로 들어왔을 때. 하지만 별 문제는 없다. 펼쳐진 내 손을 찍어갔을 뿐이니까. 그저 슈퍼마켓에 밤 9시에 가고, 모자를 쓰고 다니는 정도의 불편함이 있을 뿐이다.

=그런 스타의 생활에 적응하는 데 기간이 오래 걸렸나.

-그래서 난 오스틴(텍사스)과 뉴욕에서 보낸다. LA에 오면 난 이제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온다.

=영화 속의 그레이시와 유머감각이 유사하다고 느껴지는데, 아름다운 사람은 대체적으로 유머를 이용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어디서 그런 유머감각이 나오나.

-부모님. 재미있는 아버지. 어릴 적 이사를 많이 다녀 새로운 환경에 처할 때마다 그 어색함을 유머로 커버해나가는 것을 익혔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못하는 독일계 어머니를 웃기려면 슬랩스틱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레이시는 결국 싱글로 남게 된다. 당신은 어떤가? 집에서 결혼을 하라는 압력은 없는가.

-전혀 없다. 우리 부모님, 특히 어머님은 상당히 생각이 트여 있는 분이셨다. 5살부터 남자를 밝히던 나를 걱정할 우리 부모님이 아니다. 결혼은 종이짝에 불과하지 않은가? 두 커플이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사랑한다고 선포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는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결혼은 그저 마케팅의 산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드레스에 파티, 다이아몬드 반지…. 정말 어느 천재 장사치가 생각해낸 행사 같다. 신나게 놀고 싶으면 그냥 파티를 열어도 그만인데….

=이상형의 남자는.

-위트, 덕망, 친절함, 굴하지 않는 사람. 세상을 좀 넓게 볼 줄 알아 알맞게 처신하는 사람. 그리고 거울 앞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남자는 정말 아니다. 신발을 만들든 영화 제작을 하든 직업은 정말 상관 없다.

=그런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모를 뿐이다. 현대사회의 압력은 진실에서 눈을 돌려 주변 현상을 강조한다. 사회는 전체 패키지를 갈망하게 한다. 돈에다, 성격에다, 전부. 문제는 주변에 장난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대체 요새 어린 여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 여자애들은 번쩍이는 것을 원한다. 여자친구에게 2만불짜리 다이아 반지를 사주려고 마약 팔러 다니는 12살짜리 소년을 만드는 것이다.

=당신의 가슴(영화 속의 장면)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하자. 대체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온 건가.

-드래그 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라스베이거스에 뚱뚱한 마돈나 연기를 하던 연기자의 아이디어를 사용한 거다. 팬티 호스에 콩인형을 넣어 할머니로 가슴을 만들기도 했다. 근처에서 촬영을 하는 존 쿠색이 엄청 재미나게 해주었다. 어찌나 느낌이 좋던지 만날 만지고 다녔다. (웃음) 존 쿠색에게도 하나 줬다.

=40대는 새로운 30대라고 생각하나.

-나이는 정말로 숫자에 불과한 것 아닌가? 나에게 돈을 준다고 해도 단 하루도 젊어지고 싶지 않다.

=영화 속의 그레이시는 분노를 다스리는 데 문제가 있는 캐릭터로 나오는데, 당신은 어떤가.

-분노를 조절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 나도 마찬가지. 요번 영화를 찍으면서 감독(존 패스퀸)과 엄청나게 싸운 적이 있다. 하지만 분노의 근본은 두려움이 아닌가? 세상이 나를 공격하려고 덤벼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고, 나의 옛 이미지를 지키려는 생각이 내 분노의 원천이라는 것을 되새기면, 분노는 사그라들게 마련이다.

=영화 속의 그레이시처럼 자서전을 쓸 생각이 있나.

-절대 없다. 내 사생활을 공개할 생각이 없다. 제발 그 정도로 돈이 궁한 상황까지 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LA=남주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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